이스라엘·하마스 충돌 전망은?…“양측 다 강경파 득세, 문제 악화시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무력충돌은 막대한 인명 희생을 수반하며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악순환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는 국내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왔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양측 다 강경파가 득세한 것이 상황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중동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중국 견제에 집중하려던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도 걸림돌을 만났다고 봤다.
“하마스, 이스라엘·사우디 수교 불안”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는 12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 관련 긴급간담회’를 열고 이번 사태의 배경과 국제정세에 미치는 영향 등을 논의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전략지역연구부장이 발제를 맡고, 최우선 국립외교원 국제안보통일연구부장과 이근욱 서강대 교수가 토론자로서 참여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전략지역연구부장은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내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이스라엘에 대규모 공격을 펼쳤다고 봤다. 최근 이스라엘의 일부 극우 각료들이 서안지구 병합을 주장하고 나섰고 올해만 700여건의 폭력 충돌이 있었다. 팔레스타인 파타 자치정부는 무력했다. 극우 시오니스트(유대주의) 성향인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에 팔레스타인을 대변하는 각료의 목소리가 없는 반면 미국 중재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가 논의되는 상황도 팔레스타인 대중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네타냐후 정권의 ‘사법개혁’으로 이스라엘 내부가 분열되고 안보 기관 간 공조가 잘되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됐다.
인 연구부장은 “하마스의 공격은 욤키푸르 전쟁(4차 중동전쟁) 50주년 다음날 벌어졌다”며 “이스라엘인에게 트라우마를 환기시키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욤키푸르 전쟁에서 아랍 연합군의 공격 징후를 놓쳐 패배 직전까지 내몰렸다.
강경파 득세 …출구전략 없는 악순환
간담회에 나온 전문가들은 하마스의 공격은 성공했지만 이스라엘군의 보복으로 팔레스타인 상황은 더 큰 유혈 분쟁의 악순환으로 빠져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인 연구부장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민간인이 대거 희생된 참극에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국내 여론이 용납지 않을 뿐 아니라 테러 공격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반면 이스라엘군의 강한 보복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자도 늘어난다면 국제적 지지를 잃는다. 대하마스 강경 여론이 높아질수록 주변 아랍국가를 적으로 돌려 안보위기가 높아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인 연구부장은 “이스라엘은 주변국의 관계를 고려하면서 국가안보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팔레스타인인 희생이 늘어나고 이스라엘의 보복이 과잉이라는 여론이 번지면 아랍 국가들에는 (이스라엘 지지가)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사회도 지난 주말까지는 하마스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최근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자지구 봉쇄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유엔 등에서 나오는 등 여론이 오가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인 연구부장은 “하마스 역시 일은 크게 저질렀지만 이스라엘의 가공할 만한 공격력을 어떻게 당해낼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유례없는 민간인 살상과 인질 억류까지 벌인 상황에서 사태를 어떻게 종결지어야 할지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잔혹한 보복전 장기화…5차 중동전쟁 가능성은 선 그어
인 연구부장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 전망으로 ① 이스라엘의 하마스 진압 성공 ② 5차 중동전쟁 비화 ③ 이스라엘의 강렬한 보복 이후 인질협상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이 가운데 세 번째를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로 봤다.
인 연구부장은 “이스라엘군이 계획대로 가자지구에 진입해 하마스를 일망타진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네타냐후 주변에 팔레스타인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지금 어떠한 국가도 이스라엘과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이란과 시리아 정도지만 여기도 전면전을 원하지 않으며 이란은 특히 이스라엘의 접경국가도 아니다”라며 이스라엘과 다른 아랍국가 간 전쟁을 의미하는 ‘5차 중동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이스라엘 상황은 크게 악화할 것이라고 인 연구부장은 전망했다. “이집트가 가자지구 난민을 위한 인도주의 회랑을 열어달라는 미국의 여론을 거절했다는 언론 보도 내용이 단적”이라고 인 연구부장은 전했다. 분쟁이 장기화하면 헤즈볼라 등 역외 무장단체들이 개입하고, 하마스의 성취에 고무돼 알카에다, IS 등 소강상태였던 테러리즘 조직이 다시 활개를 칠 수 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모두 주변 정세와 장기적 안목을 고려하지 않는 강경파가 득세했다는 점이 가장 우려된다고 인 연구부장은 지적했다. 인 연구부장은 “한 두 달간의 이스라엘의 강력한 보복전 이후 인질 협상에 들어가는 국면이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마스 강경파와 이스라엘 극우 정치인 등 양측에 상황 안정보다 (이를) 흐트러뜨리며 이익을 얻는 쪽이 있다는 점이 돌발변수”라고 말했다.
최 연구부장은 “하마스는 전술적으로 성공했지만 전략적으로 무모했다”며 “온건한 형태의 정책 결정을 하는 집단이었다면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잔혹한 대규모 군사작전 끝에 하마스가 심각하게 약화되는 결과로 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상 작전이 어떻게 전개되느냐 봐야 한다”며 “엄청난 화력을 동원해 팔레스타인 인명피해를 가져오고 이스라엘의 인명피해도 커진다면 다른 차원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미국이 아프간에서 20년 만에 나왔는데 이스라엘 역시 그런 상황에 몰렸다”고 말했다.
미국의 ‘중국 견제’ 집중 구상 차질…“이란 퍼펙트게임”
이번 분쟁으로 미국의 대중국 견제 구상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인 연구부장은 “중동의 판을 잘 만들어가며 중국 견제를 흔들림 없도록 하는 인태전략 구상에 균열이 갔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내 네타냐후 정권의 극우 행각에 대한 피로도도 높아졌다”며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한 유럽 전선 피로도 높아지고 거기에 중동 전선의 아주 고질적 문제인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전쟁이 터지면 과연 미국의 중국 견제와 아·태지역에 대한 전략적 관심도 얼마만큼 유지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을 압박했던 자신의 외교정책을 치적으로 내세우며 여론몰이를 하려고 하고 있다.
중국 역시 국제적 존재감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됐다. 인 연구부장은 “주권평등과 내정불간섭 원칙으로 세상의 평화를 이끌겠다는 것이 시진핑의 안보 구상인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이 원칙을 적용해 중재하기 어렵다”며 중국은 이번 사태에 크게 개입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국제적 영향력이 다소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인 연구부장은 팔레스타인 지지를 선언한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해서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중국과 가까워지는 게임을 통해 미국에서 얻어낼 걸 얻어내는 담대한 외교게임을 하고 있었다. 사우디·이스라엘 수교를 전제로 미국에 상호방위조약이란 안보협력을 얻고 평화적인 핵 개발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는 것이었는데 (이번 사태로) 지연됐다”며 “사우디는 이렇게 된 바에야 당분간 아랍 지도자 역할을 내세우며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는 호흡을 조절하고 대의를 챙기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개선 여지는 있다고 봤다.
이란만이 이번 하마스의 공격으로 상황이 반전됐다고 평가됐다. 실질적으로 하마스에 영향력을 행사에 분쟁을 그나마 종식할 수 있는 나라가 이란이기 때문이다. 인 연구부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란은 정말 큰 사건이 벌어지니 빌런(악당)에서 해결의 주체가 됐다”고 평가했다. 최 연구부장은 “이란 입장에서는 퍼펙트게임”이라고 말했다.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인 연구부장은 “우리가 중동 역내 국가가 아니니까 직접적으로 받지 않지만 내년 유엔 안보리 이사국으로서 머리를 맞대고 우리 입장을 조율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민간인 희생에 대한 반대를 일관되게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 엑스포 유치에 미칠 영향은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됐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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