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조현철 "세월호 정예진 학생의 18번 곡, 단원고 근처 공원의 거울까지 세심히 담아" [인터뷰M]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D.P.'의 조석봉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각종 시상식을 휩쓴 배우 조현철을 이번에는 직접 각본과 연출을 맡은 첫 장편 영화 '너와 나'의 감독으로 만났다. 조현철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시절 선보인 단편 연출작들을 통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미쟝센단편영화제 등 다양한 영화제에 초청되었을 뿐만 아니라,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한 이후에도 '부스럭', '대문아' 등 틈틈이 단편영화들을 선보여 왔다. 장편 데뷔작 '너와 나' 역시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제10회 마리끌레르영화제, 제11회 무주산골영화제, 제25회 정동진독립영화제, 제23회 가오슝영화제, 제18회 파리한국영화제 등 유수의 영화제를 통해 평단과 관객의 찬사를 이끌었다.
배우로서나 감독으로서나 공식 석상에 서는 건 똑같이 긴장되고 떨린다는 조현철 감독은 "배우님이라고 불릴 때도 오글거렸는데 감독님으로 불리는 것도 그렇다. 그냥 연출자 조현철이 듣기 편하다"며 수줍게 인사했다.
'D.P.'를 통해 배우로서 강렬한 연기를 펼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감독으로 인터뷰하는 것도 조금 어색했다. 그는 "'D.P.'는 굉장히 고맙고 좋은 기회를 준 작품이고, 저조차 몰랐던 저의 모습에 대해 믿음을 갖고 캐스팅해 준 한준희 감독에게 지금까지 감사하다."라면서 "지난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수상소감 이후에도 그렇고 인터뷰 제의가 많이 왔는데 제가 한 연기나 글, 작품보다 제 이름이 더 커지는 것을 경계해서 조용히 살려고 했다"며 연기와 작품에만 매진하며 많은 인터뷰를 피해왔음을 알렸다.
그래서인지 이번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너무 많은 조현철 감독이었다. 이번 영화 '너와 나'를 만들면서 불특정다수나 대중에게 말을 건다기보다 영화의 주인공인 하은이에게 위로를 준다는 마음으로 쓴 글이라는 조현철 감독은 "막상 영화를 만들면서는 이 아이들로부터 되려 위로를 받았다. 제가 그런 것처럼 관객도 똑같이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며 자신이 느낀 감정을 관객들도 비슷하게 느끼기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다.
'너와 나'는 세월호와 관련된 이야기다. 그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아이들이 그 전날 어떤 이야기를 하며, 어떤 모습을 하며 일상을 보냈을지를 상상하며 만들어진 이야기인데 처음에는 그저 고등학생의 이야기인가 라며 보다가 후반부 이들이 그 참사의 주인공이라는 걸 깨닫고 나면 엄청난 감정이 몰려오게 된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까? 조현철 감독은 "사실 이 참사가 벌어졌을 때는 피상적인 재난으로 느껴졌다. 충격적이고 가슴 아팠지만 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2016년 개인적으로 어떤 사건을 겪으며 감정적인 널뛰기가 심했다. 그 과정을 빠져나오고 보니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건, 이야기, 감정에 파묻혀 있기보다는 더 넓은 시선을 갖고 싶었다. 제가 외면하고 잊으려 했던 기억에 다시 끌리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세월호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 삶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사회적 이슈들에 남달리 생각이 되더라"라며 밝힐 수 없는 개인적인 사건 때문에 뉴스로만 보던 사건 사고의 희생자들을 가볍게 볼 수 없는 시선을 갖게 되었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며 "이 아픈걸 왜 끄집어내 기억하냐고 하던데 제 의지를 떠나 제가 이걸 기억하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 작품이 자신에게 필연적이었음을 이야기했다.
7년을 준비한 작품이었다. 2016년에 처음 이야기에 대한 발상이 생겼고, 계속 시나리오를 고치다가 2019년에 제작 PD를 만나고 여러 번 투자도 엎어지고 지원 사업도 많이 떨어졌고, 2020년에 박혜수를 캐스팅하고 2021년 봄에 투자받고, 그러자마자 박혜수의 학교폭력 이슈가 터졌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영화였지만 꼭 만들어질 거라는 예감이 있었다는 조현철 감독은 주인공 박혜수 배우의 학교폭력 논란에 대해서도 확신에 찬 어투로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은 얼마든지 과장되고 왜곡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 걸로 인해 주변에 많은 이들이 죽었다. 더 이상 그런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저는 박혜수가 한 행동, 보여준 모습, 눈물 흘리며 했던 무고하다는 주장을 믿고 싶어서 함께 하기로 했고 그 결정을 한 이후에는 두려움이 없었다."라며 박혜수를 옹호했다.
그러며 박혜수에 대해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다. 배역에 임하는 태도도 그렇고 어떤 진정성을 가지고 인물을 표현할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더라. 자신이 납득이 안되면 연기를 못하던데 그래서 대단했다. 이 사람의 영혼이 영화에 그대로 보이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연기가 증거가 된다 생각한다."라며 칭찬을 했다.
함께 주인공 '하은'을 연기한 김시은에 대해서는 "천재다. 영화계 몇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배우다. 너무 동물적으로 연기를 하고 제가 시나리오에 쓰지 않은 것도 잘 표현해 줬다."라고 칭찬하며 김시은의 애드리브성 대사가 마음에 들어 시나리오도 고쳤다고 밝혔다.
영화 속에서는 세월호와 관련된 직접적인 힌트가 곳곳에 숨어 있었다. 박혜수가 '체념'이라는 곡을 완창 한 것에 대해서도 "세월호에 탔던 정예진 학생의 18번이 '체념'이다. 약간 촌스럽고 통속적인 곡이지만 죽음을 하루 앞둔 사람이 불렀을 때 느껴지는 이상한 아이러니가 좋았고 이 곡을 완창 하는 인물의 얼굴, 눈빛, 손짓에서 느껴지는 물질적인 감각이 얼마나 생생한데 이게 사라지는 게 어떤 건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다 썼다. 또 아이들이 제주도에 가서 신나게 노는 걸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노래방 영상도 만들게 되었다."며 설명을 했다.
또한 극 중에 거울이 등장하는데 이 거울도 단원고 근처 원고잔 공원에서 직접 가져온 것이라고. "세미의 모습이 맺혔던 거울인데 그 거울에는 아마 단원고 아이들의 모습이 맺혀있었을 것"이라며 상징이나 메타포적인 사물을 의도적으로 사용했음을 밝혔다. 이런 사물에는 사과도 있었다. 일부러 갈변되지 않는 사과를 특별히 주문해 촬영했다는 조 감독은 "이 사과를 먹은 사람이 방금 전까지 여기 있었다는 걸 의미하고 싶었다. 화단에 놓인 지점토도 그런 의미가 있다"며 영화에 나오는 소품, 사물, 동물들마다 다 의미를 담아 배치했음을 알렸다.
영화에는 많은 여고생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박혜수, 김시은 외에도 수많은 여고생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다 실제 배우들이었다고. 고등학생인 배우는 없었지만 조현철 감독이 현장 분위기를 자유롭게 해 주고 촬영 앵글과 샷을 구성하는 것에 따라 더 편한 연기가 나올 수 있어서 배려를 했던 거라고 밝히며 "리허설을 많이 했었다. 그때 연기자들이 편하게 내뱉는 말들을 주의 깊게 듣다가 대사를 더 편한 말투로 수정해주기도 했다"며 진짜 여고생들의 대화라 착각하게 했던 연기의 비밀도 공개했다.
영화에는 박정민이 등장해 유일하게 폭소를 안긴다. 하지만 박정민이 연기했던 인물도 사회적인 이슈를 반영하는 부분으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조현철 감독은 "박정민은 대단한 친구다. 그 씬 찍을 때 샷도 많고 등장 인물도 많아 고민했는데 박정민이 다 살려놓고 갔다. 너무 웃겨서 비호감으로 보여야 될 캐릭터였는데 그게 덜 산 것 같아 아쉬웠다. 웃어넘길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닌데 다음에는 이런 걸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동료 배우를 칭찬하면서도 연출적인 부족함을 스스로 자책하기도 했다.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조현철 감독은 "산업적으로 잘 되고 세계적으로 한류가 휩쓸고 지나가도 저는 본질적인 안도감을 주는 이야기가 사라지고 있다 생각해 계속 불안했다. 자극적인 이야기만 넘쳐나지 않나, 본질적 위로를 줬던 이야기는 다 어디 갔냐라는 생각을 했다"며 요즘에 필요한 콘텐츠의 방향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그러며 "예전에는 더 유명해지고 싶고 상업영화에서 스타가 되고 주목도 받고 싶었는데 요즘은 좀 다른 관점, 생각을 하고 있다. 타인의 고통, 비극적인 사고, 죽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산업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죽게 만드는 데 이걸 빠져서 보게 만든 계기가 된 것 같다."라며 '너와 나' 영화의 과정을 통해 변화된 삶의 기준을 이야기했다.
앞으로 '너와 나' 같은 영화를 또 연출할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기보다 '너와 나'는 작품이 저를 부르는 느낌이었다. 살면서 이런 느낌이 드는 게 두세 번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말로 앞으로의 연출 계획을 밝혔다.
인터뷰를 하고 나니 조현철 감독이 갖고 있는 생각에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게 많았다. 뉴스에서 보던 사건 사고들에 애도하고 재발방지를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기억 저편으로 넘겨 놓았던 자신에 대한 반성을 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학창 시절 학폭피해자에 대해 그토록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 공식 석상에서 수상소감으로 밝혔을 정도의 사람이 아직 수사 종결이 되지 않은 학폭논란의 대상을 포용하는 대목에서는 쉽게 공감은 되지 않았다. 짧은 시간 동안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건 힘든 일이다. 이런 면은 이해가 되고 저런 면은 이해가 안 되지만 '너와 나' 영화를 생각한다면 좋은 이야기만 기억해야 할까 싶다.
iMBC 김경희 | 사진제공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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