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산업패러다임 바꾸는 디자인혁신
혁신적인 기술로 찬사를 받았던 구글 글라스(2011년)는 불편한 착용감과 조작 방식, 사생활 침해, 미완성된 스타일 등으로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아마존에서 출시한 스마트폰인 파이어폰(2014년) 역시 고화질의 터치스크린과 3D 효과를 구현하는 특수카메라 등 최신 기술을 선보였으나 사용자의 호응을 얻지 못해 출시 13개월 만에 단종됐다.
기술에는 집중했으나 정작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외면한 결과다.
디자인은 사용자에게 외형적인 만족감을 제공할 뿐 아니라 제품과 서비스 사용에 있어 더 나은 가치와 경험을 주도록 아이디어를 고안하고 실현시킨다. 다이슨은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 날개 없는 선풍기, 열이 아닌 바람을 이용한 헤어드라이어 등을 출시해 선풍적 인기를 누렸다. 이는 제품 개발의 출발을 잘 찢어지는 먼지봉투, 청소하기 불편하고 위험한 선풍기 날개, 열로 인해 손상되는 모발 등 기존 제품 사용자들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에서 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처럼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파악해 제품과 서비스로 나타내는 것을 '디자인 주도 혁신'이라 부른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있다. 삼성전자는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거나 업무를 하는 등 큰 화면을 원하지만 동시에 폰이 크면 휴대하기 불편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큰 디스플레이를 작게 접을 수 있는 폴더블폰을 개발했다. 여기에는 각도를 조절해 가며 본체와 디스플레이를 접었다 펼 수 있는 힌지 기술, 본체와 힌지 사이를 보호하는 스위퍼 기술 등 첨단 기술이 투입됐다. 디자인팀은 이러한 고성능 기술이 발휘될 수 있도록 기기가 접히는 양면의 디스플레이 화면까지 세심하게 디자인했다. 이러한 디자인 주도 혁신의 결과 삼성의 폴더블폰은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여기서 필자는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제품 개발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기업들은 아이디어 발굴 단계부터 제품 기획, 연구개발(R&D), 시제품 제작, 생산까지 전 과정에서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활발히 협업한다. 또 제품이 탄생하기까지 연구개발에 충분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다. 다이슨의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는 개발에 5년, 출시까지 15년의 시간이 걸렸고 5000개 가까운 시제품을 제작했다. 삼성전자 역시 폴더블 제품 개발에 10여 년의 시간과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의 디자인산업통계에 따르면 2021년 사내 R&D 조직의 디자인 활용률은 대기업이 51%인데 중소기업은 13.7%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상 중소기업은 자체 투자를 통해 디자인 R&D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과 자원 그리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실정이다. 실제 디자인 수요 조사에서 중소기업의 20.5%가 정부의 디자인 연구개발과 기술 지원이 절실하다고 응답했다.
올해는 정부 주도로 디자인 R&D가 시작된 지 30년째 되는 해다. 하지만 2023년 디자인 R&D 예산은 550억원으로 산업기술 R&D 총예산(5조6000억원)의 1%, 정부 R&D 총예산(30조7000억원)의 0.18%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한국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혁신의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 디자인 R&D에 대한 정부의 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 대목이다.
[윤상흠 한국디자인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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