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 웨버 대령 손녀 “할아버지, 한국 늘 자랑스러워했다”
故 싱글러브 장군·웨버 대령
추모비 제막… 유족들 인터뷰
6ㆍ25전쟁 미 참전용사인 고(故) 윌리엄 웨버 대령 손녀 데인 웨버(33)씨는 “저한테 할아버지는 진정한 영웅인데 할아버지는 생전에 ‘영웅’이란 표현을 매우 불편해하셨다”며 “할아버지는 ‘내가 아니라 한국인들이 진정한 영웅’이라며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늘 자랑스러워하셨다”고 했다.
12일 경기 파주에서 열린 웨버 대령과 존 싱글러브 장군 추모비 제막식 참석차 한국을 찾은 웨버씨는 전날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휴대전화에 저장된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할아버지는 미국에서 6 ㆍ25전쟁이 ‘잊힌 전쟁’처럼 다뤄지는 데 대해 늘 문제라고 말씀하셨고 6ㆍ25 참전 군인의 희생을 알리는 활동에 평생 헌신하셨다”고 했다.
웨버 대령은 6ㆍ25 때 공수부대 장교로 참전해 인천 상륙작전, 서울 수복, 평양 점령 등의 전투에서 활약했다. 1951년 원주전투 중 오른팔과 오른쪽 다리를 잃는 중상을 입고도 수술ㆍ재활 끝에 현역으로 복귀해 1980년 대령으로 전역했다. 이후 지난해 4월 97세로 별세하기 전까지 6ㆍ25 참전군인들의 희생과 뜻을 알리는 데 온 힘을 쏟아부었다. 지난해 10월 암 투병 끝에 남편 곁으로 간 아내 애널리 웨버 여사도 마찬가지였다. 워싱턴에 6ㆍ25 미군 전사자와 한국군 지원부대(카투사) 전사자 총 4만3000여 명의 이름을 모두 새긴 ‘추모의 벽’ 건립을 주도한 것도 웨버 대령 부부였다. 손녀인 웨버씨는 “할아버지는 미국이 학교에서 6ㆍ25전쟁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데 대해 오랜 기간 분노하고 좌절하셨다”며 “한국이 할아버지를 잊지 않고 추모해줘서 감사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웨버 대령이 생전에 여러 공식 행사에서 왼손으로 경례를 하는 모습은 한미 동맹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이날 파주에 건립된 추모비에도 웨버 대령의 생전 ‘왼손 경례’ 모습이 새겨졌다. 웨버씨는 “저도 할아버지처럼 왼손잡이”라며 “한국에 할아버지의 추모비가 세워지는 모습을 보게 되니 어떻게 감정을 주체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인터뷰 도중 여러 번 눈시울을 붉혔다.
6ㆍ25 당시 미군 대대장으로 참전해 ‘철의 삼각지대’에서 중공군 진출을 저지했던 존 싱글러브 장군의 아들 존 O. 싱글러브와 아내 시드니는 11일 고인(故人)의 얘기를 시작하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부부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싱글러브씨는 “아버지는 공산주의를 무찔러야 한다는 생각으로 평생 군인의 삶을 사셨던 분”이라며 “아버지의 6ㆍ25 때 경험담엔 늘 한국인들과 한국 음식에 대한 추억이 함께했다”고 했다. 싱글러브 부부는 “한국이 아버지를 잊지 않고 추모해줘서 너무 감사하고 영광이라고 생각한다”며 “아버지 덕분에 저희 부부가 이번에 한국에 올 수 있었는데 한국인들의 이런 고마운 마음을 저희도 잊지 않을 것이고 가족들 모두 평생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싱글러브 장군은 1970년대 주한미군 참모장 재직 당시 미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를 막은 일화로 유명하다. 싱글러브 장군은 지미 카터 행정부의 주한 미 7사단 철수 결정을 공개 비판하다 보직해임되고 본국으로 송환됐다. 싱글러브 장군이 ‘제2의 6ㆍ25′를 막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아들은 “아버지께서는 군인으로서의 신념이 분명한 분이셨고 한국은 아버지가 희생한 국가이자 아버지가 평생 자랑스러워한 국가”라고 했다.
한미동맹재단과 주한미군전우회는 올해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이해 이날 두 영웅의 추모비 제막식을 열었다. 웨버 대령 손녀와 싱글러브 장군 아들은 직접 추모비를 제막하고 헌화했다. 행사엔 임호영 한미동맹재단 회장과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전우회장, 6ㆍ25 참전 용사 유가족 및 주한미군 복무 장병 등 90여 명, 추모비 건립을 후원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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