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느끼는 자연의 질서…고래는 거대한 '물고기'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임신한 엄마는 배를 쓰다듬으며 꽃밭을 바라봤다. 특이한 식물들을 좋아했던 그녀의 남편은 수많은 화단을 만들어 꽃을 키웠다. 하루에 몇시간이고 그녀는 꽃을 쳐다봤다.
태어난 남자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울었다. 육아에 지친 엄마는 아이의 손에 꽃을 쥐여주었다. 그러면 거짓말하듯, 아이가 울음을 그쳤다. 아이는 커가면서 꽃을 모으고, 식물 표본을 찾으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식물에 골몰하느라 공부는 나 몰라라 했다. 고교 때 선생님들은 소년이 된 아이에게 적합한 직업은 육체노동뿐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그는 선생님들의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스웨덴 웁살라대학에 입학해 28살에 모든 생명을 총망라해 분류한 논문 '자연의 체계'라는 걸작을 내놨다. 그의 저서는 삽시간에 유럽 지성계를 흔들어놨다.
생물학자 칼 폰 린네(1707~1778) 얘기다.
린네가 생물을 분류한 '종-속-과-목-강-문-계'는 현재도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300년 가까이 된 이 '마법의 주문'을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공식처럼 암기해야 한다.
가령 미국 학생들은 우리의 역순인 계(Kingdom), 문(phylum), 강(class), 목(order), 과(family), 속(genus), 종(species) 순으로 외운다.
어렵다 보니 온갖 암기법이 등장했다. 그중 각 단어 앞 글자를 따 문장으로 만든 'King Philip Came Over From Genoa Spain'(필립 왕은 제노바 스페인에서 넘어왔다)은 대표적인 암기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린네의 뒤를 이어 찰스 다윈(1809~1882)이 등장했다. 다윈은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가져온 따개비를 8년 넘게 관찰했다. 시간과 공간 같은 외부요인에 따라 동식물의 변이(變異)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았지만, 그는 보다 확실한 물증이 필요했다. 다윈은 세계 곳곳에서 1만개가 넘는 따개비 샘플을 가져와 갈라파고스 따개비와 비교 분석했다. 그 과정은 천재라 불린 다윈에게도 무척이나 힘겨운 일이었다.
"어떤 종류들을 별개의 종으로 기술한 후, 원고를 찢어버리고 그것들을 다시 하나의 종으로 만들고, 그걸 다시 찢고 다시 별개의 종으로 분리하고, 그런 다음 또다시 하나로 만들고 나니, 나는 이를 갈며 종들을 저주하게 됐고, 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벌을 받는지 자문했다네."
친구에게 보낸 다윈의 편지에는 디테일에 천착하는 연구자의 고통이 담겨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진화 연구에 발판이 됐다. 따개비 연구를 바탕으로 한 '종의 기원'(1859)은 뉴턴의 '프린키피아'(1687) 이후 가장 영향력이 큰 과학서로 발돋움했다는 점에서다.
다윈이 설파한 진화론은 이제 생물 분류의 근원이 됐다. DNA 발견은 여기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현대 분류학자들은 유기체의 DNA를 수집해 모든 비닐, 깃털, 꽃잎, 이파리를 뚫어져라 들여다보며 생물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무의미한 부풀림과 공기를 모조리 뺀 엄밀한 과학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엄밀한 분류에 따르면 이 세상에 어류, 즉 물고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의 감각 체계와 일치하지 않는다. 세계 어디를 가도 물고기를 나타내는 단어가 있기 마련이다. 물고기는 푸아송(poisson), 바이(vai), 피시(fish), 퓨스(pyus), 이이(yi), 사카나(sakana) 등 다양하게 불린다.
한국계 미국 과학자 캐럴 계숙 윤이 쓴 '자연에 이름 붙이기'(원제 Naming Nature)는 이렇게 물고기를 물고기라고 분류할 수 없는 현대 과학의 비애를 담은 책이다. 우리의 인식체계, 감각세계와 유리돼 가는 과학 얘기를 소개한다.
더는 신비함과 경이와 상상력이 사라진, 오로지 팩트와 과학적 증거(유전자 등)만이 중시되는 자연과학, 마치 인공지능(AI)이 재단하는 정확함만이 진리가 된 세계에 대한 아쉬움이 저자의 글에 깊이 배어있다.
저자는 생명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인간 특유의 시각을 '움벨트'라 부르면서 이 움벨트가 사라져가는 걸 개탄한다. 과학이 움벨트와 결별함으로써 얻은 이득도 있지만, "움벨트 파편과 조각들, 움벨트가 지닌 설명할 수 없는 인간다움의 작은 요소들"이 없어진다며 아쉬워한다.
가령, 고래가 그러하다. 과학이 생명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기 전, 인간은 고래를 물고기로 생각했다. 요나를 벌하기 위해 삼킨 고래부터 멜빌의 '모비 딕'까지, 우리는 이 동물을 '거대한 물고기'라 부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왔다. 그러나 분류학이 자리를 잡은 후, 포유류인 고래는 물고기라는 환상의 세계에서 사라져 갔다.
저자는 움벨트의 상실을 "우리의 가장 깊고 가장 심오한 연결로부터 서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몸을 비틀며 빠져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움벨트의 복원을 주문한다.
"물고기가 헤엄치고 새가 날아다니는 움벨트, 우리의 감각에 특화된 움벨트, 우리가 감지할 수 있고 우리가 알아차리는 경향이 있으며, 봉화처럼 활활 타오르는 움벨트."
윌북. 정지인 옮김. 440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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