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59% ‘EU 공급망 실사’ 준비 안 돼···노동·인권이 가장 걱정

노도현 기자 2023. 10. 12.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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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자료사진

최근 기업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공급망 실사 의무화’다. 특히 유럽연합(EU)은 역내외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원료나 부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인권·환경을 침해한 사례가 없는지 점검을 의무화하는 공급망 실사법(지속가능한 기업 공급망 실사 지침)을 추진 중이다. 프랑스, 독일 등 일부 회원국이 개별적으로 시행해오던 것을 일원화하는 것이다. 올해 말까지 큰 틀에서 타협점을 찾고 내년 입법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이에 EU로 많이 수출하는 자동차·부품업을 비롯한 국내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위반 시 벌금 말고도 공공조달 입찰 배제, 수출금지 같은 행정적 제재가 부과될 수 있어서다. 일종의 ‘비관세 무역장벽’인 셈이다.

그러나 국내 중소·중견기업 10곳 중 6곳은 공급망 ESG 실사를 준비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12일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글로벌 공급망 ESG 실사현황연구’ 보고서를 보면 지난 2~3월 종사자 수 10~300인 미만의 국내 중소·중견 제조기업 500개사를 대상으로 ESG 경영실태를 조사한 결과 59.0%인 295곳이 공급망 실사를 준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연구는 산업부가 한국생산성본부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진행됐다.

공급망 ESG 실사에 대해 ‘별로 준비하고 있지 않다’와 ‘전혀 준비하고 있지 않다’는 응답이 각각 32.8%, 26.2%였다. ‘매우 잘 준비하고 있다’는 응답은 0.4%, ‘다소 준비하고 있다’는 응답은 10.4%에 불과했다. 나머지 30.2%는 ‘보통’이었다.

공급망 실사 의무화를 준비하지 않거나 준비하는 과정에서 겪는 애로사항으로는 ‘실사에 대한 정보 및 내부인식이 미흡’(36.6%)을 가장 많이 꼽았다. ‘실사 전문인력 부족’(27.6%), ‘비용 및 업무 부담 증가’(25.0%)도 지적했다.

특히 기업들은 실사 의무화 시행 시 가장 중요한 공급망 리스크로 ‘협력사 근로자의 노동·인권’(30.0%)을 지목했다. 이어 ‘협력사 사업장의 안전보건’ 29.6%, ‘협력사 환경오염 및 사고’ 23.6%, ‘협력사 임직원의 윤리 및 컴플라이언스(법규 준수)’ 15.8% 순이었다.

공급망 실사 의무화를 준비하는 기업 205곳에 준비 이유를 물어보니 ‘정부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라는 응답이 27.8%로 가장 높았다. ‘공급망 ESG 확산이 사업에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당사에 대한 글로벌 고객사 요구가 있기 때문에’도 20%대를 보였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가 이 의원에게 제출한 ESG 지원내역을 보면 코트라는 ‘찾아가는 ESG 현장 설명회·컨설팅’을 운영하고 있지만 2021년 3건, 지난해 4건, 올해 5건 설명회를 개최하는 데 그쳤다. 지난 5월 정부가 발표한 ‘공급망 실사 대응을 위한 기업 지원방안’에는 업종별 컨설팅, 실사 대응 플랫폼 구축, 원청·협력업체 간 협업체계 구축 등이 담겼다.

ESG 경영이 피할 수 없는 세계적 추세인 만큼 대응에 미흡한 중소·중견기업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칫 공급망 실사 체계 구축을 직접 수출하는 대기업의 몫으로만 여기기 십상이다. 하지만 해당 기업의 공급망에 있는 협력업체들은 실사 대상이기 때문에 중소기업들도 영향권에 든다. ESG 성과가 낮은 중소기업은 향후 거래가 끊기거나 납품량이 줄어드는 등 공급망에서 배제될 위험이 있다. 중소기업 또한 대기업의 실사 요청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 의원은 “올해 초부터 독일 공급망 ESG 실사법이 시행됐고 연내 EU의 최종안이 마련되면 우리 기업의 새로운 수출장벽이 될 것”이라며 “산업부, 중소벤처기업부, 코트라 등 담당 부처와 관련 기관은 공급망 실사 인프라 구축, 정보제공, 교육, 컨설팅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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