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방 넘어 합격”…‘혁신’에 ‘안정감’ 갖춘 리더십 [정의선 회장 3년]

조문희 기자 2023. 10. 1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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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氏일가 ‘뚝심 경영’ DNA 물려받아
‘어린 황태자’ 이미지 벗고 실력 입증

(시사저널=조문희 기자)

2020년 취임한 정의선 현대차 회장을 향한 세간의 평가에는 우려의 시선이 가득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에 사드(THAAD) 보복으로 인한 중국 시장 경색 등 과제가 켜켜이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3대 세습'에 대한 대중의 곱지 않은 시선도 발목을 잡았다.

3년이 지난 현재 정 회장의 리더십에는 '도전'과 '혁신', '안정'이라는 수식어가 달린다. 여전히 중국 시장의 판매 실적은 부진하고 노조 관계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지만, 정 회장 취임 이후 달성한 '글로벌 톱3 안착'이라는 실적에는 찬사가 쏟아진다. 정 회장 산하 현대차그룹은 판매량 세계 3위를 넘어, 전기차 분야에서도 '점유율 톱3'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월3일 경기도 화성시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2023 현대차그룹 신년회'에서 신년사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제네시스로 고급화, 아이오닉으로 혁신

12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오는 14일 정 회장 취임 3주년을 맞는다. 정주영-정몽구-정의선을 잇는 현대가 리더십을 비교하면, 정 회장의 DNA는 '도전'에 방점이 찍혔다는 평가다. 특히 브랜드 고급화를 꾀하기 위해 내부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제네시스 사업을 시작으로 그룹 혁신의 물꼬를 텄으며, 2년 전부터 본격 뛰어든 전기차 전환 사업을 기점으로 '도전'이라는 사명을 안정적으로 새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회장의 이름과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다름 아닌 제네시스다. 제네시스는 2015년 11월 국내 최초의 럭셔리 브랜드로 출범했다. 출시 초기만 해도 제네시스 안착 여부에 물음표가 달렸다. 이미 고급차 시장은 포화 상태였던 데다, 현대차가 기존의 이미지를 벗고 리브랜딩에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정 회장은 당시 세간의 우려를 의식한 듯,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내실을 쌓겠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제네시스 사업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제네시스는 출시된 지 6년 만에 연 20만대 판매 브랜드로 거듭났고, 세단을 넘어 SUV와 전기차 등으로 라인업을 다각화해 고유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에 제네시스는 올해 8월 글로벌 누적 판매량 100만 대를 달성하는 등 현대차그룹 전반의 수익성 개선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정 회장이 다음으로 눈을 돌린 분야는 전기차 혁신이다. 정 회장은 취임 이듬해인 2021년부터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는 목표 하에 현대차그룹의 전동화에 속도를 냈다. 이에 현대차그룹의 전동화는 타 브랜드보다 몇 년은 앞서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게 출시한 모델이 아이오닉이며, 아이오닉 5‧6와 EV6 모델은 '세계 올해의 차', '북미 올해의 차', '유럽 올해의 차' 등을 모두 석권했다. 그 결과 현대차그룹은 올해 상반기 미국에서만 3만여 대의 전기차를 판매, 테슬라에 이어 점유율 2위에 자리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상반기 역대급 실적을 올렸다. 올해 현대차‧기아의 예상 영업이익은 26조5796억원이다. 그룹 실적이 예상만큼 순항한다면, 정 회장은 취임 이후 3년 동안 영업이익을 5배 이상 끌어올리는 셈이 된다. 현대차그룹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응해 설립 중인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 공장 완공을 2024년 하반기로 앞당겨 생산에 박차를 가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6월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 열린 '포니의 시간' 전시장에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모델과 N비전74가 전시된 모습 ⓒ 연합뉴스

'포니'에서 찾은 혁신…노사 관계 '변수'

정 회장이 주문한 '혁신'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룹의 '전통'이 고스란히 담겼다. 정 회장은 고급화 전략과 전동화 전환 투트랙을 추진하면서도, 뿌리는 그룹 유산인 '포니'에서 찾았다. 정 회장은 지난 5월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포니 쿠페를 49년 만에 복원했다. 포니 쿠페는 할아버지인 정주영 창업주가 추진했지만 기술력 부족으로 양산하지 못한 비운의 모델이다. 정 회장은 포니 쿠페 복원을 두고 "과거의 노력을 되살려 새롭게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라고 설명한 바 있다.

정 회장은 3년 전 취임사에서부터 정씨 일가의 경영철학을 계승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정 회장은 할아버지 정주영 창업주와 아버지 정몽구 명예회장을 언급하며 "두 분의 숭고한 업적과 기업가 정신을 이어받아 국가경제에 기여하고, 더 나아가 인류의 행복에 공헌하는 그룹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나가겠다"고 말했다.

회장 취임 당시 세간의 평가는 곱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정 회장은 1993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마쳤다. 1999년 12월 현대자동차 구매담당 이사로 처음 입사했으며, 1년4개월 만에 상무로, 2002년 국내 영업본부 부본부장을 거쳐 이듬해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임직원 사이에서 "어린 아들이 현대차 전통을 이을 수 있겠냐"는 의구심이 번졌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3년 만에 경영 능력을 완전히 입증한 정 회장을 두고, 내부에선 "선방을 넘어 합격"이라는 우호적 평가가 나온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고질적 악재로 꼽히는 노사 문제에 있어서도 정 회장은 늘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기차 생산이 먼저"라는 목표 하에, 노조 측의 요구를 '통 크게' 수용해왔다는 평가다.

다만 올해 기아 노사는 국내 완성차 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임단협(임금 및 단체협상) 교섭을 마무리 짓지 못한 상황이다. 경기 불안 우려와 전동화 혁신으로 인력 감축이 불가피한 국면이라, 향후 노사 관계는 더욱 나빠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여기에 정 회장으로선 국내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순환출자 구조 타파와 3분의 1 수준으로 위축된 중국 시장 재도약 등 과제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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