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K콘텐츠와 금융을 연결하는 투자 생태계, 콘텐츠산업 지속성장을 위한 발판
세계를 놀라게 했던 K콘텐츠 위상은 어느덧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를 요구하고 있다.
2019년 영화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2020년 BTS의 Dynamite가 빌보드 차트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올라서고, 2021년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에 공개되며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킬 때, 이제는 한계 없는 도약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꿈꿨다. 그러나 놀라움에 취한 어제는 금세 지나고, 지금은 한국 콘텐츠산업에는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에 대한 큰 고민이 남았다. 날개를 단 K콘텐츠가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눈부시게만 보였던 기회는 국가간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한순간에 위기로 전환될 수도 있다.
K콘텐츠의 글로벌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장르의 많은 콘텐츠가 끊임없이 창작돼 세계시장에 공급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 핵심요소인 산업 인프라, 재원, 인력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그중 핵심은 재원이다.
최근 정부는 내년 K콘텐츠 예산을 1조 원 이상 편성하고, 나아가 영세업체 자금조달을 위한 정책금융을 1조 7700억원 규모로 책정했다. 건전재정 기조에도 불구하고, 국가 미래성장동력 확보에 K콘텐츠 육성이 꼭 필요하기에 이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투자는 좋은 기획력과 뛰어난 인력을 보유하고 있어도 충분한 제작비를 확보하지 못하는 중소제작사에 보다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다.
최근 콘텐츠 제작비 거대화로 기업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편당 22억 원의 제작비가 사용됐다. 정부 사업의 제작지원비만으로는 단 한편도 제작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에 이미 오래전부터 콘텐츠산업은 민간자본의 투자를 요구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라는 산업적 특징으로 인해 투자가 활성화 되기란 쉽지 않았다. 성공이 예견되는 큰 방송영상 프로젝트도 투자유치가 쉽지 않다면, 다양한 콘텐츠 장르에 퍼져있는 중소제작사의 어려움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콘텐츠에 대한 투자규모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 하더라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창의성을 자원으로 가진 콘텐츠산업은 금융권을 설득하기 어렵고, 금융권은 좋은 콘텐츠에 투자하고 싶어도 무형인 콘텐츠의 가치를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콘텐츠기업은 금융권에 '자금'을 바라고 있지만, 금융권은 콘텐츠시장에 '수익'을 원한다. 콘텐츠산업과 금융권의 수요를 각각 이해하고 이를 연결할 수 있는 가교역할과 콘텐츠기업 성장단계별 맞춤형 금융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정부의 재원 확대가 큰 투자 의지라면,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가능성 있는 콘텐츠기업에 그 자금이 흘러가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으로 성공사례를 뒷받침한다.
콘진원은 창작자부터 중기 스타트업까지 성장단계별 맞춤형 금융지원을 하고 있다. 콘텐츠 창업기업은 전체 산업대비 약 10%로 많지 않은 편이다. 실제 청년 종사율 및 선호 직업군 1위가 콘텐츠산업인 것에 비해 창업기업과 관련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초기기업에 대한 투자연결을 위한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먼저 기업과 금융권이 만날 수 있는 장으로 콘텐츠 전문 투자유치 피칭 플랫폼 '케이녹'(KNock)이 있다.
케이녹은 우수 콘텐츠 IR 컨설팅과 피칭행사를 개최해 맞춤형 투자유치 역량강화를 지원하고 있다. 최근 2년 동안 케이녹에 참가한 34개사 중 12개사가 총 185억 원의 투자유치 성과를 기록했다. 또한 피칭행사를 넘어 투자자들과 기업의 네트워킹을 통해 보다 긴밀한 금융권과의 소통을 지원하고 있다. 케이녹은 콘진원에서 진행하는 정규라운드 이외에도 산업은행 넥스트라이즈와 함께하는 스페셜라운드, 지자체 협력을 통한 찾아가는 투자유치 상담회 등을 운영하며 투자 기회를 다각도로 확대해나가고 있다.
이에 힘입어 21년 케이녹에 참여했던 맞춤형 음악교육 서비스 씨썸!(㈜주스)은 지난해 51억 원 규모로 지니뮤직에 인수되었고, 온라인 영상제작 서비스 비디오몬스터(㈜비디오몬스터)는 지난해 약 3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또한, 콘진원은 투자와 융자지원을 위해 '콘텐츠가치평가'를 실시하고, 매달 금융권에 우수콘텐츠를 추천하고 있다.
콘텐츠가치평가제도는 무형의 아이디어에 대한 가치를 객관적으로 측정함으로써 금융 시장에서 적절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시스템이다. 가치평가된 콘텐츠 프로젝트는 모태펀드 문화계정(가치평가연계펀드) 등을 통해 투자가 진행된다. 2016년 제도 도입 이후 지금까지 65개의 프로젝트에 총 375억 원이, 2023년 상반기에는 약 40억 원의 투자가 진행됐다.
대표적으로 가치평가를 통해 투자된 사례로는 '범죄도시2'가 있다. 현재 8편까지 그 제작을 계획하고 있는 범죄도시는 2편 제작 당시 코로나19로 인한 영화산업 위축으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던 중 가치평가를 통한 투자 유치로 제작의 물꼬를 다시 틀 수 있었다고 전한 바 있다. 그 외에도 영화 '올빼미', '달짝지근해', 애니메이션 '다이노스터', 뮤지컬 '드림하이' 등이 가치평가를 거쳐 투자유치에 성공했다.
콘텐츠가치평가는 투자뿐만 아니라 보증지원에도 활용된다. 콘진원은 신용보증기금 및 기술보증기금과의 협업을 통해 제작 단계별 맞춤형 특화보증과 완성보증을 지원하고 있다. 7년간 총 683개의 프로젝트에 1664억 원의 보증이 지원됐다. 이는 제작비를 지원하는 구조가 아니더라도, 기업 내부 자금 운용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보증지원 상품을 이용하여 제작된 콘텐츠에는 대표적으로 드라마 '국민사형투표', 뮤지컬 '데스노트', 예능 '고딩엄빠3', 웹툰 '사신소년' 등이 있다.
나아가 콘진원은 이렇듯 다양한 형태의 자금 조달을 보다 투명하게 연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문화산업전문회사(문전사) 등록, 변경, 해산을 담당하고 있다. 문전사는 투자금의 투명한 조달과 운영, 회수 절차를 확보함으로써 더 많은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는 특수목적회사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콘진원은 세법 개정을 통해 문전사 투자 기업의 세제지원에도 노력하고 있다. 내년부터 중소·중견기업이 문전사를 출자해 제작된 영상콘텐츠에 투자한 금액에 대해서는 3%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향후 제도를 보다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홍보해 투자사가 콘텐츠기업 투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독려하고자 한다.
최근 투자업계에서는 “일정 성장단계 이상에서는 대출이나 투자와 연계하고 상환금 등 수익 배분을 하는 방식 지원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있다. 콘진원이 케이녹과 가치평가를 통해 민간자금을 유도해 콘텐츠산업 투자 규모를 확대하는 노력과 업계의 수요가 일치하는 부분이다.
앞으로도 콘진원은 투·융자 복합금융으로 가치평가 결과와 신용보증기금을 투자로 연계, 기업의 제작비 조달을 위한 창구를 확장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26개 민간 콘텐츠 투자사와 협의체를 구성해 문전사 세제지원 정책과 함께 민간자금 연계를 활성화하고자 한다. 글로벌 사업 확장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여 콘텐츠기업의 해외 투자 진출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 콘진원은 중장기적으로 스타트업 육성, 제작지원, 신기술 개발 등의 사업과 함께 금융지원제도를 유기적으로 연계, 콘텐츠산업에 특화된 지원을 지속해 나갈 예정이다.
K콘텐츠와 금융을 잇는 빈틈없는 네트워크가 K콘텐츠가 글로벌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든든한 발판이 되길 기대한다.
조현래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
〈필자〉조현래 원장은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제36회 행정고시 합격 후 문화체육관광부의 콘텐츠, 예술, 관광, 소통 등 전 분야에서 정책 경험을 쌓은 문화행정 전문가다. 문체부에서는 콘텐츠정책국장, 관광산업정책관, 국민소통실장, 종무실장 등을 역임했다.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에서 석사 학위와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공공정책학 석사 학위를 받고, 한성대 행정학 박사를 수료했다. 2021년 9월 한국콘텐츠진흥원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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