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은행, 계좌 1662개 무단개설… 연내 시중은행 전환 차질
신청서 사본으로 증권계좌 무단개설
“실적 높이기 위한 목적…내부통제 실패”
“책임 엄중히 묻겠다”…중징계 전망
금융감독원이 대구은행 ‘불법 계좌 개설’ 사고와 관련 현장검사를 실시한 결과 직원 114명이 1662개의 증권계좌를 무단으로 개설한 사실이 확인됐다.
앞서 금감원은 대구은행에서 불법 계좌 개설 정황이 포착돼 지난 8월 9일 긴급 검사에 착수했다. 이후 9월 1일 종료 예정이던 검사 기한을 연장, 지난 22일 현장검사를 마쳤다. 금감원은 사고를 낸 직원과 내부통제 소홀에 책임이 있는 임직원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행위는 금융실명제법 위반일 뿐만 아니라 형법상 사문서 위조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때문에 임원 중징계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해임권고, 업무집행 정지, 문책경고 등 중징계를 받을 경우 앞으로 3~5년간 금융사 임원 선임이 제한된다. 사고를 낸 100여명의 직원들 역시 면직, 정직, 감봉 등의 중징계를 받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 56개 영업점·114명 직원 조직적 가담
12일 금감원에 따르면 대구은행 56개 영업점 직원 114명은 2021년 8월부터 2023년 7월까지 은행 입출금통장과 연계해 1662개의 증권회사 계좌를 불법 개설했다.
예를 들어 대구은행 고객이 실제 A증권사 계좌를 만들기 위해 신청서를 썼는데, 이후 직원이 이 신청서를 복사한 뒤 무단으로 수정해 추가로 B증권사 계좌를 만드는 식이다. 일부 직원은 이런 사실을 숨기기 위해, 계좌 개설 시 고객에게 가는 안내 문자를 차단하기도 했다. 고객 정보란에 휴대전화 번호를 바꿔 기입해 고객이 문자를 받아볼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금감원은 과도한 실적 압박이 이러한 금융사고의 원인이 됐다고 판단했다. 대구은행은 비(非)이자이익 확대를 위해 지난 2021년 8월부터 은행 입출금통장과 연계해 여러 개의 증권회사 계좌를 만들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이 실적을 영업점과 개인의 성과평가지표(KPI)에 반영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영업점 KPI의 증권계좌 개설 만점 기준을 고객당 계좌 1개에서 2개로 늘리고, 직원 개인 실적에도 중복 반영한 것이 불법 계좌 개설의 유인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내부통제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계좌 개설과 관련해 별도의 업무처리절차를 구비하지 않은 데다, 전산 통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금감원의 설명이다. 또 영업점과 본점에서 자점 감사를 실시했음에도 문제가 되는 내용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자점 감사란 각 지점에서 처리한 업무가 규정이나 지침을 지켰는지 여부를 자체적으로 점검하는 일이다.
◇ “중징계 불가피” 관측 무게
금감원은 사고를 낸 직원과 내부통제 소홀의 책임이 있는 임직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중징계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임원의 경우 중징계는 해임권고, 업무집행 정지, 문책경고에 해당한다. 직원은 면직, 정직, 감봉이 중징계에 따른 조치다.
영업점 폐쇄, 영업 정지 등의 기관 중징계도 내려질 수 있다. 금감원은 대구은행의 ‘늦장 보고’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구은행은 지난 6월 30일 불법 계좌 개설 관련 민원이 접수되자 7월 12일부터 전(全) 영업점을 대상으로 자체 검사를 실시했으나, 금융 당국이 8월 제보를 통해 검사에 착수할 때까지 보고하지 않았다. 금감원은 금융실명법 위반 등 금융질서 문란행위 등에 해당하는 금융사고가 발생할 경우 ‘즉각’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8월 금융권에서 발생한 횡령, 배임 등의 금융사고 등을 언급하며 “당사자는 물론이고 관리 미흡, 내부에서 파악한 것이 있음에도 금융 당국에 대한 보고가 늦었던 부분 등 여러 책임에 대해 법이 허용하는 최고의 책임을 물을 생각이다”고 말했다.
앞선 사례들과 비교해도 중징계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 2018년 우리은행은 고객 휴면계좌를 무단으로 활성화해 당시 금융 당국으로부터 경징계인 ‘기관 경고’와 과태료 60억원 처분을 받았다. 당시 우리은행 직원 300여명은 2018년 1∼8월 스마트뱅킹 비활성화 고객 계좌의 임시 비밀번호를 무단으로 바꿔 활성계좌로 만들었다. 고객이 사용하지 않던 계좌가 비밀번호 등록으로 활성화하면 새로운 고객 유치 실적으로 잡힌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대구은행 불법계좌 개설 사고는 이보다 사안이 심각한 만큼 제재 수위가 더 높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 시중은행 전환 차질…올해 물 건너간 듯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인가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전날 열린 국정감사에서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심사 시 금융사고 등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인가를 위해선 최소자본금(1000억원)과 지배구조(산업자본 보유 한도 4%·동일인 은행 보유 한도 10%) 두 가지 요건만 충족하면 되나, 금감원 검사 결과 및 제재 조치를 참고해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인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금감원 제재 조치는 올해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장 검사 표준처리기한은 150일로, 기한은 내년 2월 말까지다. 금감원 관계자는 “검사국에서 현장검사 후 조치안을 만들고 제재심의국을 거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최종 제재 수위를 심의, 의결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며 “조치안 작성에만 한 두 달이 걸리는데 올해 내로 (제재 조치가) 나올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대구은행은 연내 시중은행 전환 목표를 세우고 9월 중으로 인가를 신청할 계획이었으나 신청 시기를 미룬 상태다. 금감원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내부 정비 작업을 거친 후에야 시중은행 인가 신청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구은행 측은 “세밀하게 시중은행 인가 요청서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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