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끄는 사진이 ‘이미지로 기록된 무의식’ 끌어내”
[서울&]
뭔가 이상한 통증 느꼈던 젊은 시절에
그림·사진 통해 ‘스스로 해결’ 노력하다
체계적 공부 위해 ‘상담 석·박사’ 마치고
사진치료 슈퍼바이저 등 자격 갖춰
사진을 보면서 기쁨·슬픔 감정 느끼면
무의식이 사진에 반응하고 있는 상황
“사진으로 사고 못하면 문맹인 시대에
사진 통해 더 창조적인 활동 가능할 것”
“우연히 마주친 사진 한 컷이 뭔가 마음을 잡아끈 경험이 있나요? 혹은 사진을 보면서 슬픔이나 기쁨 등 감정을 느낀 적은요?”
지난 6일 송파구의 한 사진스튜디오에서 만난 정윤경 단국대 천안캠퍼스 인권센터 양성평등상담소 초빙교수(한국사진치료학회 부회장)가 기자에게 던진 질문이다. 정 교수는 이어서 “그렇다면 당신의 무의식이 사진에 반응한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가 한 이 말 속에는 ‘사진치료의 핵심 원리’가 담겨 있다. 정 교수는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언어를 매개로 자신과 타인을 인식하고 관계를 맺어왔지만, 인간의 정신활동은 언어로 기억하기보다는 심상 즉 이미지로 기억하고 저장하는 특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분석적 측면이나 인지적 측면으로 볼 때 언어만 사용하기보다는 사진같은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언어를 배우기 이전의 경험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정신분석이나 대상관계 학자들은 특히 언어 습득 이전의 경험이 인간의 발달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인상에 핵심을 이룬다고 합니다. 특히 어떤 상처들은 해소되지 않은 채 무의식에 남아 있게 되는데 의식적인 자각의 범위를 벗어나 우리에게 어떤 흔적으로 저장되므로 그 영향력이 상당히 큽니다.”
사진의 원리는 기원전 350년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에도 기록돼 있을 정도로 오래됐다. 그 원리란 ‘카메라 옵스큐라’를 가리킨다. 라틴어로 ‘어두운(옵스큐라) 방(카메라)’을 뜻하는 이 장치는 안쪽을 어둡게 만든 상자에 작은 구멍을 뚫어놓은 것이다. 이렇게 하면 그 구멍을 통해 빛이 들어와 반대쪽 막에 바깥의 정경이 거꾸로 맺힌다.
정 교수는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의해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가 원근법 실험에 활용되기도 하면서 이후 점차 회화의 보조수단으로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초의 사진은 1826년에 탄생했다. 조제프 니세포르 니엡스(1765~1833)라는 프랑스 발명가가 은으로 도금한 금속판에 아스팔트를 칠한 뒤 이를 카메라 옵스큐라 벽면에 세워 ‘인화지’로 만든 것이다. 그는 서재 밖 풍경을 8시간 노출한 끝에 ‘르 그라 창문에서 본 풍경’이라는 최초의 사진을 탄생시켰다.
이후 사진기술은 계속 발전했다. 이에 따라 사진가 라슬로 모호이너지(1895~1946)는 이미 1920년대에 “사진에 대해 아는 것은 알파벳을 아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이에 대해 “글을 쓸 줄 모르는 것 못지않게 사진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것도 미래에는 문맹으로 취급될 것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점차 사진기술이 발달하고 사진이 대중화되면서 197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사진을 심리치료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79년 제1회 국제 사진치료 심포지엄이 개최됐고, 1982년 캐나다 밴쿠버에 ‘포토 테라피 센터’를 설립한 주디 와이저(1945~ ) 등 사진치료 전문가들이 활발히 활동을 시작했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제3회 심포지엄에 참여한 심영섭 현 ‘심영섭 아트테라피 & 심리상담센터 사이’ 대표가 주디 와이저의 저서를 국내에 번역하면서 처음으로 소개됐다”고 설명한다.
“당시에는 사진을 상담 영역에서 활용하는 것 자체가 국내에서는 생소한 분야였는데 상담 영역의 전문가와 사진 전문가들이 상당히 관심을 보였어요. 그리고 심영섭 대표가 주최한 워크숍에서 실제로 참여하고 느끼면서 매력을 알게 된 사람들이 더 전문적으로 임상에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2012년 한국사진치료학회가 출범하여 국내 사진치료 분야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정 교수도 이즈음에 사진치료와 인연을 맺게 됐다고 한다. 정 교수는 대학에서는 사진이나 심리상담과 무관한 것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러다 “남들처럼 살았지만 뭔가 마음에 이상한 통증 같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그런 경험을 하면서 처음에는 그림을 그리며 또 사진을 찍으며 그런 방식으로 해결해보려고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마음의 고통감이 일순간 괜찮아지는 느낌도 있었지만, 조금 더 체계적인 공부를 하기 위해 상담심리학과로 편입했다. 이후 숙명여대 일반대학원 석·박사를 거쳐 지금까지 상담학회 전문상담사 1급과 청소년상담사 2급, 사진치료학회 슈퍼바이저 등의 자격을 갖추는 ‘긴 여정’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정 교수는 이런 경험을 거치면서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사진치료가 더욱더 보편화할 것으로 예상하게 됐다고 말한다. 현재는 라슬로 모호이너지가 “사진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것도 미래에는 문맹”이라고 밝혔던 그런 미래의 시점이기 때문이다.
“현대는 이미지로 소통하는 세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술 발달에 따라 시대마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고 그 매체는 우리가 세상과 소통하고 세계를 사고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뿐만 아니라 현대인은 그 매체를 통해 자신의 다양한 면들을 표현하는데요, 그만큼 사진은 이제 너무도 익숙한 매체이고 또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사진을 통해 더 창조적인 활동이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사진 자서전’ 만들면 자기 내면 재발견
정윤경 교수가 추천하는 사진치료
정윤경 교수는 일반인들이 사진을 통해 자기 치유를 할 수 있는 방안으로 ‘사진일기’와 ‘자전적 사진작업’을 제안했다.
‘사진일기’는 블로그 등에 자신의 하루를 자유로운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면서 그 가운데 인상적인 것을 한 장의 사진으로 담아두는 것이다. 이렇게 매일 사진을 이용해 하루를 표현하다보면 “내가 어떤 것들을 많이 보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이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라 설명한다.
‘자전적 사진작업’은 사진으로 만드는 자서전이다. 기존의 앨범에서 자신이 특히 기억할 만한 인생의 장면이라고 생각하는 사진을 모은다. 필요하다면 사진을 새로 찍어서 포함해도 된다. 이렇게 본인 사진을 시간대별로 모은 뒤 자신의 인생 사건들을 새롭게 해석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때 자기 자신은 스스로 고백하는 사람이 되거나 아니면 목격자가 될 수도 있다.
글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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