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은행, '몰래 계좌개설' 1662건…금융실명법·내부통제 책임 묻는다
대구은행, 증권계좌 실적 반영 비율 높이면서도 내부통제는 부실
[서울=뉴시스] 김형섭 기자 = 대구은행에서 직원들이 고객 몰래 개설한 주식계좌가 총 1662건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은행이 증권계좌 개설 실적을 영업점 및 개인 실적에 크게 반영키로 하면서도 내부통제는 미흡했던 게 이번 사고의 원인인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당국은 대구은행의 불법 계좌개설이 금융실명법 등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내부통제 실패와 함께 엄중한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8월9일부터 9월22일까지 실시한 대구은행 금융사고 관련 현장검사 결과를 12일 이같이 밝혔다.
대구은행, 고객 1552명에 대해 증권계좌 몰래 추가 개설
정상적인 절차라면 증권계좌를 2개 개설할 경우 A증권사 계좌 개설신청서와 B증권사 계좌 개설신청서에 고객이 각각 따로 자필서명을 하고 전산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대구은행 직원들은 고객이 직접 서명한 A증권사 계좌 개설신청서의 사본을 출력해 증권사 이름을 B증권사로 수정해 계좌개설신청서를 만드는 등의 비정상적 방법으로 증권계좌를 추가 개설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 관계자는 "해당 직원들은 고객에게 사본 활용을 설명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물적 증빙이 없다"며 "예금계좌와 연계된 증권계좌 개설 서비스를 운영 중인 주요 시중은행에서는 이러한 방식의 증권계좌 추가 개설도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이 계좌개설신청서를 확인한 결과 해당 직원들은 증권사 이름이나 주식·선물옵션·해외선물 등의 증권계좌 종류를 수정테이프로 고쳐서 다른 계좌 신청서로 재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수정을 제대로 하지 않아 신청서상의 증권사 이름이나 증권계좌 종류, 계좌 명의인 정보가 실제 개설된 증권계좌 정보와 불일치하는 경우도 669건에 달했다.
특히 7명의 직원은 고객 연락처 정보를 가짜 연락처로 바꿔 놓아 고객이 증권사로부터 증권계좌 개설 사실과 약관 등을 안내받지 못한 사례도 23건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부당하게 개설된 증권계좌들에서 발생한 자금이체나 주식 매매 등의 실제 거래 내역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승진·성과급 등에 증권계좌 개설 실적 반영 확대…일탈 여지 줬다
증권계좌 개설 실적을 승진이나 성과급 책정에 반영하는 비중을 무리하게 늘림으로써 일탈행위가 벌어질 여지를 줬다는 것이다.
대구은행은 비이자이익 확대를 위해 지난 2021년 8월 '증권계좌 다수 개설 서비스'를 개시했다. 대구은행 입출금계좌와 연계해 고객이 신청하는 복수의 증권계좌를 개설하는 서비스다.
해당 서비스 출시를 계기로 대구은행은 2022년 영업점 KPI의 증권계좌 개설 만점 기준을 고객당 1계좌에서 2계좌로 강화하고 개인 실적에도 중복 반영했다. 실제 부당하게 개설된 계좌 1662건중 90.5%가 KPI 변경 시점인 2022년에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 관계자는 "주요 시중은행도 예금과 연계한 다수 증권계좌 개설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지만 KPI에 반영하지 않거나 1계좌 또는 계열 증권회사의 계좌만 인정하는 등 영업점 직원들이 증권계좌 개설 업무를 무리하게 취급할 유인은 적다"고 설명했다.
대구은행, 전산 등 내부통제 미비…당국 "엄중히 책임 물을 것"
금감원 검사 결과 대구은행은 증권계좌 다수 개설 서비스를 신규로 시행하면서 관련 내규 등 별도의 업무처리절차는 마련하지 않았다.
고객이 전자서명한 서류를 직원이 임의로 출력해 다른 증권사 계좌개설신청서로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전산통제도 미비했다. 예금거래 등 다른 금융거래에서는 막아놓았으면서도 증권계좌 개설시에는 담당 직원이 고객 휴대폰 번호를 변경할 수 있도록 해놓은 점도 문제였다.
증권계좌 다수 개설 서비스를 신규 시행하고 이를 KPI 등에 확대 반영함으로써 불법 계좌개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서도 자점감사 기준 등에 반영하지 않은 점도 지적됐다.
금감원은 "이번 사고와 관련된 내부통제 소홀에 책임이 있는 임직원들에 대해 관련 법규에 따라 엄중히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며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가 있는데도 금감원에 이를 지체없이 보고하지 않은데 대해서도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했다.
대구은행은 지난 6월30일 증권계좌 임의 개설 민원이 접수돼 7월12일부터 전 영업점을 대상으로 자체 검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금감원이 8월9일 검사에 착수할 때까지 관련 내용에 대한 보고는 없었다.
한편 금감원은 최근 잇따른 지방은행의 금융사고와 관련해 지방금융지주의 자회사 내부통제 기능 전반에 대해서도 별도 점검을 진행할 예정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phite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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