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9개사보다 3배 더 벌게 한 이재용의 '아마겟돈' 승부수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3. 10. 1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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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가 판다]2009년과 2022·2023년 삼성전자 실적, 일본 9개 전자 업체와 비교해보니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삼성사기가 펄럭이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DB


14년전 일본이 열광했던 삼성전자 지금은?

삼성전자가 지난 3분기(7~9월)에 매출 67조원에 영업이익 2조 4000억원의 잠정 실적을 올렸다고 11일 발표했다.

시장은 기대보다 좋은 실적이라며 '어닝 서플라이즈'라고 외치지만 '놀라기'에는 면구스러운 실적이다. 시장에선 애널리스트들이 실적전망을 잘못한 것에 대해 '면피'하기 위해 '놀라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시선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매출은 12.74%, 영업이익은 77.88% 줄었으니 좋은 의미로 놀랄 일은 아니다. 다가올 기업설명회에서 세부 실적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삼성전자의 기둥이었던 메모리는 여전히 대규모 조단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스마트폰과 TV 등도 정체의 늪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와 하만이 캐시카우 역할을 해 연결기준으로 영업이익을 보태면서 2조 4000억원의 흑자를 겨우 유지한 듯하다.

14년전 이맘 때쯤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이다.

'4조 2300억원 vs 1519억엔(약 2조원, 100엔당 1363.73원 기준)'

2009년 3분기(7~9월) 삼성전자의 실적이 발표된 직후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 비즈니스는 당시 일본 9개 주요 전자 기업 이익을 모두 합쳐도 삼성전자의 절반도 안된다며 '전자왕국 일본의 몰락'과 새로운 강자의 탄생을 대서특필했다.

소니, 파나소닉, NEC, 후지쯔, 샤프, 미쯔비시, 히타치, 도시바, 산요전기 등 9개사의 2분기(7~9월, 회계연도 기준월이 우리나라와 다름) 영업이익은 다 합쳐봐야 2조원 남짓이었다. 이에 비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무사히 넘긴 삼성전자는 이보다 2배 이상인 4조 23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일본을 충격에 빠트렸다.

그 후에도 일본 기업의 실적은 좀처럼 회복되지 못했다. 회계연도의 차이로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일본기업의 2009년(2009년 4월~2010년 3월) 영업이익합계는 2865억 5000만엔(한화 약 3조 9100억원, 원엔환율 100엔당 1363.73원)에 머물렀다.

같은 회계연도(2009년 1월~12월)에 삼성전자는 11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일본 9개 기업의 이익을 합친 것보다 3배 많은 압도적 차이를 보였다. 이때부터 일본 내에서는 삼성전자의 성공비결이 무엇인지, 또 일본의 실패 원인이 어떤 게 있는지를 찾기 위해 분주한 움직임이 있었다.

삼성전자의 선전은 반도체에 빠른 투자결정을 내리는 강력한 오너 리드쉽과 세계 시장을 무대로 한 제품혁신, 발빠른 조직과 인사 혁신 등에 기인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디지털과 인터넷, IT의 3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발빠르게 대처하고 변화한 것이 삼성전자의 성공비결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2010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현 회장)이 광저우 아시아게임 참관차 중국을 방문한 후 김포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는 모습. 이 회장은 이보다 앞선 2008년과 2009년 반도체 치킨게임을 승리로 이끈 일명 '아마겟돈' 프로젝트를 승인해 D램 치킨게임을 승리로 이끄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그 해 10조원을 넘어서는 등 급격하게 늘었다./사진=머니투데이 DB


2008년 의도된 삼성 반도체 1조 적자…일명 '아마겟돈 프로젝트'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였던 2008년 6조원대로 떨어졌던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1년만인 2009년 11조원대로 80% 이상 급증한 것은 삼성전자 전략의 승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특히 2008년 4분기와 2009년 1분기 반도체 부문의 적자가 삼성전자 회생의 기반이 됐다.

일반인들 사이에선 삼성전자의 2008년 4분기 적자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악영향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삼성전자가 의도한 전략적 적자의 성격이 짙다. 캐시카우인 D램 시장에서 적자를 감내하는 치킨게임을 통해 경쟁자를 몰아내는 강수를 두면서 스스로도 일정부분 위험한 감수한 것이다.

때는 2007년7월 이건희 삼성 회장이 하이닉스(SK에 인수되기 전임)에게 일부 경쟁력이 밀렸다는 이유로 황창규 반도체총괄 사장을 크게 질타했고, 그 해 연말 경영일선에서 물렸다. 대신 권오현 사장에게 반도체의 바통을 넘기면서 대만 D램 업체들과의 본격적인 치킨게임이 시작됐다.

치킨게임의 지휘봉은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현 회장)가 잡았다. D램 저가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이 전무는 반도체 임원들을 불러 모으고는 "D램 시장 재편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물었다.

이 자리에서 A 임원은 "우리가 1조원 정도의 손실을 보더라도 이 참에 D램 시장에 후발주자들을 정리하는 게 향후 시장의 혼란을 줄이고 미래에 더 큰 이익이 될 것"이라며 적자전략을 제시했다. 사실 전문경영인이 자신이 맡은 사업에서 일부러 적자를 내는 전략을 쓰기는 힘들다. 그 해 실적 평가가 자신의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재용 전무는 후일 삼성 반도체 내에서 '아마겟돈(최후의 전투라는 뜻)'이라고 명명된 D램 시장 치킨게임 프로젝트를 승인했고, 반도체 부문에서는 이를 과감하게 실행에 옮겼다. 치킨게임은 특성상 어느 한쪽이 겁을 먹고 나가 떨어지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 게임이다.

삼성전자가 당시 D램 가격을 원가 수준까지 내리면서 원가경쟁력이 떨어지는 대만과 일본 기업들은 생산을 하면 할수록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조가 됐다. 삼성 반도체도 그 과정에서 1조원 이상의 적자를 감수해야 했다. 이것이 2008년 4분기 (6900억원 적자)와 다음해 1분기(7100억원 적자) 삼성 반도체 적자의 진짜 이유다.

10개 가량이었던 D램 업체 중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은 곳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3개사 뿐이었다. 시장 참여자가 줄어든 메모리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높은 이익을 올렸다. 그 성과는 연말에 약 11조원의 영업이익으로 돌아왔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사진 오른쪽)이 2013년 11월 3일 미국으로 출국해 일본을 들른 후 같은달 27일 오후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현 회장), 최지성 미래전략실 부회장/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일본의 삼성 배우기에 으쓱해 하는 임원들에게 "건방 떨지 말라"던 이건희 회장

당시 일본 내에서는 삼성을 배우자는 열풍이 불었다. 삼성이 절대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일본 소니를 TV 판매에서 2006년 제친데 이어 3년만에 소니를 비롯해 내로라하는 일본 9개 전자 회사들의 이익을 합친 것보다 3배를 더 번 것 때문이다.

일본 기업들이 앞다퉈 삼성전자에 탐방이나 벤치마킹을 요청하자 으쓱해진 삼성 임원들이 이를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했던 모양이다.

이를 들은 이 회장은 "일본 기업에 정중히 벤치마킹 요청을 거절하라"고 한 후 임원들에게 "시류를 잘 타서 반짝하고 실적이 조금 좋아졌다고 어깨에 힘들어가고 건방 떨지마라"며 "아직도 우리는 일본에서 배울 게 한참 많다"며 경영진을 질타했다고 한다.

2008년말과 2009년초 반도체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대만과 일본 D램 업체들을 압박해 시장경쟁자를 줄인 덕분에 2009년 이후 반도체는 봄날을 맞았다. 당시 치킨게임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적절한 전략과 후발주자들보다 앞선 기술경쟁력에 기반한 원가 우위를 점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2008년의 반도체 적자와 현재의 반도체 적자의 차이다. 지금은 D램 3사의 경쟁에 더해 낸드플래시 시장에 10여개 플레이어가 각축전을 벌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문제는 삼성전자가 예전처럼 가격경쟁력 우위를 기반으로 후발주자들과 치킨게임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이 못된다는 점이다. 일부 부문에선 후발 주자들이 기술경쟁력에서 앞서 힘으로 밀어붙일 경우 오히려 삼성전자가 더 큰 내상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영화와 TV 콘텐츠를 홍보하고 있는 소니 홈페이지 초기화면 캡쳐.

◇일본 기업들은 부활했나?

14년전 삼성전자에 밀렸던 일본 기업들은 어떨까. 최근 들어선 일본 기업들의 부활에 대한 얘기들이 솔솔 나오고 있다. 2009년 꺼져만 가던 일본 기업들이 환골탈태하며 부활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처럼 보인다.

이 기업들의 14년 전 실적과 현재를 보면 '부활'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다.

삼성전자를 예로 들면 2009년(매출 136조원, 영업이익 11조원)과 2022년(매출 302조원, 영업이익 43조원)을 비교하면 13년 동안 매출은 222%, 영업이익은 397% 늘었다.

이에 비해 일본 8대 기업(소니, 파나소닉-산요전기 흡수합병, NEC, 후지쯔, 샤프, 미쯔비시, 히타치, 도시바)은 같은 기간 매출이 3.3% 늘어나는데 그쳤다. 지난 십수년간 전혀 성장을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업부문의 분리와 매각 등 변화로 인한 영향도 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잃어버린 10년을 여실히 보여준다.

영업이익은 기저효과로 인해 2865억 5000만엔(한화 3조 9100억원, 원엔환율 100엔당 1363.73원)에서 3조 1976억엔(한화 약 31조 5040억원, 100엔당 985.24원)으로 크게 늘어 위기에서는 탈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평균영업이익률은 6.6%에 머물러 있어 과거의 영광을 논하기에는 부족하다.

게다가 8개 회사의 영업이익총계가 여전히 삼성전자(2022년 43조 3800억원)의 73% 수준에 머물러 있다. 8개 회사를 합쳐도 삼성전자 하나의 이익에 못미친다. 또 2009년 9개 회사의 매출을 모두 합친 것이 삼성전자의 5배 수준이었으나 그간 삼성전자의 급성장으로 그 격차는 2022년에 1.5배 정도로 줄었다.

일본 기업들은 100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으로 살아남았지만 그 성장세는 멈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 전환을 모색하고 있지만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눈에 띄지 않는다. 소니는 TV와 워크맨 기업에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사업과 카메라 모듈, 엔터테인먼트 매출을 늘리고 있고, 파나소닉은 PDP를 버리고 2차 전지 사업 등 새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여전히 대단한 삼성전자...이제 가야할 길은

삼성전자는 올해 최악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올해 1~3분기 반도체 부문의 적자를 모두 합치면 1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이 어려움은 내년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전쟁 등 위기 국면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구촌이 전쟁의 포화에 휩싸일 경우 소비심리는 위축될 수밖에 없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회복은 더뎌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시점에서 삼성전자가 가야할 길은 과거의 성공방정식은 잊고,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고 미래준비를 하는 것이다. 최근 만난 삼성전자 전직 최고위 임원은 "2010년대 초반 잘나갈 때 미래를 준비 못한 아쉬움이 크다"며 그 부분에 대해 후배들에게 미안함과 함께 앞으로의 선전을 당부했다.

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COEX)에서 개최된 '갤럭시 언팩' 행사에서 삼성전자 MX사업부장 노태문 사장이 '갤럭시 Z 플립5'와 '갤럭시 Z 폴드5'를 공개하고 있다./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 반도체의 경쟁력 우위기간이 잠시 연장된 것은 2017년경 미국의 대중국 제재의 영향이 컸다. 트럼프 행정부가 시진핑 정부를 압박하면서 반도체 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막은 것이 중국 반도체 굴기의 속도를 늦춘 것이다.

그 영향으로 삼성 반도체가 어부지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다른 방법을 통해서 미국의 규제를 피해나가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매년 수십조원씩 대규모 투자를 수반하는 장치산업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심도있게 논의해야 한다. 범용화된 메모리는 버리고 이재용 회장이 강조했던 파운드리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고, 하드웨어는 버리고 소프트웨어로 전환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전세계 산업 생태계의 톱에 있는 애플이나 구글 등의 기업들은 제조업이 아닌 플랫폼과 데이터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다. 삼성전자도 전세계 수억대 깔려 있는 갤럭시폰과 수천만대 이상 깔려 있는 삼성TV와 가전 제품의 토대 위에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드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현대자동차나 LG전자 등이 하드웨어를 넘어 소프트웨어 중심의 회사로 가겠다고 외치고 있다. 하드웨어의 경쟁력이 언제까지 유지될 지 의문이다.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의 등락에만 엮매이는 천수답경영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게 삼성전자의 현실이다. 이제 삼성전자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이 무엇이 됐든…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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