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망하면 수원이 망해" 중개사 믿었는데…돌아온 건 '전세 사기'

수원 전세 사기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되는 정모씨(59) 일가와 이들이 설립한 법인은 경기 일대에 수십 채의 건물을 사들이며 부동산업에 나섰다. 정씨가 대표이사로 자리한 법인 소유 건물은 수원에만 50여채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수원 권선구 세류동 소재 정씨 법인 소유 건물./사진=이병권 기자

"집주인이 망하면 수원이 망하는 거라며 저를 안심시키더라고요. 근저당 금액이 건물 전체 시세의 20% 수준이라 괜찮다고도 했고요. 그래서 부동산 말을 믿고 계약했는데…이렇게 돼버렸습니다."

경기 수원, 화성, 용인 일대에서 발생한 이른바 '수원 전세 사기 사건' 피해자 30대 A씨는 지난 11일 경기 수원시에서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A씨는 사회초년생이던 2020년 11월 당시 모아뒀던 돈과 대출을 받은 돈을 합친 1억9000만원으로 수원의 한 35㎡(약 11평)짜리 빌라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계약 만료를 1개월쯤 앞둔 현재,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처음 계약 당시에는 큰 문제가 없는 듯했다. 그러다 수원 지역 전세 사기 대란이 발생하면서 지난해 11월 1년 연장한 계약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건물주 소유 법인이 아는 공인중개사를 통해 계약서를 준비해 두겠다고 말했다"며 "알고 보니 해당 공인중개사 사무소는 '페이퍼 부동산'이었고 현재까지 아무 소식이 없다"고 말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A씨는 최초 계약 때부터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고 했다. 당시 여러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던 그는 가장 적극적으로 응대했던 N 공인중개사 사무소에서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해당 빌라 건물 등기부등본상 근저당이 잡혀있는 걸 본 그는 사무소에 관련 내용을 문의했다.

A씨는 "공인중개사가 건물을 보여주면서 이 건물이 어떻게 그 금액에 다 팔리겠냐는 식으로 말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건물 전체 시세에 비해 근저당 금액이 크지 않았다. 추후 확인 결과 15세대인 해당 빌라 근저당은 5세대, 10세대로 따로 묶여 있었다.

A씨는 "저에게는 5세대에 해당하는 근저당 금액만 설명해 준 것"이라며 "계약 당시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5세대짜리 근저당인 걸 알았으면 들어갈 리가 없지 않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 A씨를 전세사기 논란의 핵심 지역인 권선구 세류동에서 만났다.경기남부경찰청에 따르면 12일 오전 10시 기준 정씨 일가와 법인이 소유한 건물과 관련한 고소·고발이 73건 접수됐고 피해액은 90억 상당으로 집계됐다. /사진=이병권 기자

A씨는 처음 체결했던 전세 계약서 복사본을 받기 위해 최근 N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방문했다. 그러나 부동산 측은 "전세 사기 우려 때문에 오셨냐"고 의연하게 답했다고 한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말하는 걸 듣고 실소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된 정모씨(59) 일가와 이들이 설립한 법인은 경기 일대에 수십채 건물을 보유하며 전세금을 가로챈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남부경찰청에 따르면 12일 오전까지 정씨와 관련된 고소·고발이 73건 접수됐다. 피해액은 90억원 상당이다. 아직 고소장을 접수하지 않은 피해자들이 더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A씨는 "경찰에서 더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길 바란다"며 "정씨 일가와 법인 말고도 일부 부동산과의 관계도 파헤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정씨에 대한 고소·고발장을 작성하고 있다. 또 다른 피해자들도 건물별로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다. 수원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는 오는 13일 기자회견을 개최한다.

수원(경기)=이병권 기자 bk223@mt.co.kr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