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어떻게 사모펀드 매니저가 되는가 [김태엽의 PEF썰전]
김태엽 어펄마캐피탈 한국대표 taeyub.kim@affirmacapital.com
숨겨둔 일기처럼 투자자들을 위한 길라잡이 글을 쓴지 이제 만 2년이라니 깜놀이다. 남의 애가 제일 빨리 큰다더니, 욕심없이 야금야금 썼던 글이 쌓여서 벌써 24번쨰가 되었다. 예상 보다 오랜 기간 글을 쓰게 된 것도 열렬히 졸작을 사랑해 주신 독자 여러분 덕분이다. 사랑한다 여러분!
평소와 달리 센티멘탈하게 시작한 이유는, 이번달을 마지막으로 1년 정도 연재를 멈추고 잠수를 탈 예정이기 때문이다. 인스타에서도 밝혔지만, 뭐 이민, 삭발, 이직, 출가 이런 건 아니니 걱정 마시라. 일이 너무 바빠진 핑게도 있고, 몇 년째 준비하던 것이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겸사 겸사 칼럼은 좀 쉬기로 했는데, 뭐 이러다 1년 뒤에 안 불러 주심 바로 짤리는 거다. 그게 인생 아니겠는가? (아님 틱톡에서 만나ㅇ…)
여하튼 각설하고, 오늘은 지난 18년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 그 중에서도 우리 한국을 이끌고 나갈 꿈나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주제를 논해보고자 한다. 대망의 1부 마지막 글로서, 그 주제는 다름아닌, “어떻게 하면 사모펀드 매니저가 될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하면 내 아들 딸을 사모펀드 매니저로 키워 볼까?) 그 비법과 민낯을 바로 까 드리겠다. 두둥!
먼저 사모펀드 (Private Equity Fund, 혹은 PE) 매니저들에 대한 가장 큰 오해들을 모아서 각개 격패 해보자.
“김사장, 사람은 얼마나 짤랐어?”
“요즘 뜨는 사업 좀 찍어줘”
“꺠끗한 상장사 하나 있는데, 떠가서 튀겨봐, 김대표”
“딜 축하해 뗴돈 벌었겠네 한턱 쏴”
사모펀드 = 구조조정?
제일 먼저, 사모펀들가 기업을 인수하면 사람들 부터 자르고 알짜배기 사업은 다 팔아먹는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노조원들 뿐 아니라 심지어 알만한 필자의 지인들 조차 이렇게 생각한다!). 이는 옛날 옛적부터 내려오던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벌처캐피탈 (Vulture Capital)의 강렬한 기억 때문인데, 아마 영화 “프리티우먼”의 리자드 기어가 (아, 연식이 나온다) 좋은 예이다. (나도 그런 줄 알았…)
물론 부실화된 사업을 자산가 이하 (PBR <1)로 인수해서 회사의 청산 혹은 자산 매각을 통한 수익을 추구하는 벌처 캐피탈도 크게 보면 사모펀드의 범주에 들어간다. 애당초 사모펀드라는 정의 자체가 국내에서는 50명 이하의 소수의 투자자들로 부터 자금을 모집해서 펀드를 조성하여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적 (Private)으로 모집 (Funding)한 모든 투자 구조는 넓은 의미의 사모펀드이겠다.
하지만 필자가 하는, 통상적으로 불리는 사모펀드(PE)는,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하거나 기업에 투자 한 후, 그 자금을 활용해서 신사업을 진행하거나, 기존 사업을 확장해서 성장시키거나, 곪은 부분을 도려내거나 고친 다음 통으로 다 매각하거나 아니면 상장 후 부분 매각을 하는게 일반적인 개념이다. 때문에 “사모펀드가 인수 혹은 투자를 한다 = 대규모 인력 감축”은 기업가치 성장만이 유일한 돈버는 길인 사모펀드들에게 아주 억울한 누명이다. 실제 필자가 지난 18년간 투자한 기업들에서도 투자 전후 회사 임직원 수가 줄었던 적은 단언컨대 한번도 없다!!!
물론 칼럼에도 여러 번 썼지만, 필요 없는 인력들, 혹은 사업들, 혹은 자산들을 매각하는 일은 부지기수 이다. 조직 내 똥차도 치우고, 남는 땅, 창고들도 부시고 공장으로 바꾸는 일들, 즉, 이른바 ‘밥값 못하는 자산’들을 팔아서 밥값으로 바꾸는 거는 사모펀드의 필수 업무이다. 그러니깐, 사모펀드가 주주로 들어왔다고 잠이 안 오는 분이 계신다면, 이는 내마음 한 구석에 나는 조직의 똥차임을 인정하는 양심의 소리인 것이다.
사모펀드 = 주식투자 전문가?
산업 공부도 많이 하기 때문에 뜨는 사업에 미리 투자를 해두고, 이를 조직적으로 띄운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사모펀드는 가치투자, 즉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기회를 찾아내서 4-5년간 관리하면서 가치 개선의 기회를 도모하는 장기 투자자이다. 그러니, 내년에 뜨는 사업, 주도주/대장주를 1-2년 전에 미리 찍은다음 투자한다는 것은 절대 오해이다. 오히려 필자같은 펀드 매니져들은 주식투자가 금지되어 있거나 극도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기술적 분석이 중요한 단기 주식 투자에는 멍텅구리에 가깝다. 그리고, 주식투자에서 제일 중요한, ‘대중의 심리’를 읽는 것 보다 ‘소수의 거래자’에 대한 협상에 특화된 뇌 구조 때문에 ‘화끈한 한방’보다는 ‘꾸준한 우량주’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크다. 즉, 사모펀드는 재미없는 주식 투자자이다!
사모펀드 = 떼돈?
마지막으로 돈도 참 할 말이 많은데, 성공적인 투자회수 (발굴-투자-매각까지 사이클이 끝난 딜) 혹은 엑시트 (exit)를 이루어 내면 일반 월급장이가 생각할 수 있는 금액 보다 훨씬 큰 수익을 얻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exit가 끝났을 때를 전제한 것이지 ‘인수’ 시점 (즉, 투자 집행)에서는 그냥 돈만 시원하게 쓴 것이다. 통상 GP commitment라고 해서, 사모펀드가 투자를 집행 할 경우, 그 전체 투자금의 1-2%를 사모펀드 매니저 그리고 그 사모펀드 운용사 (GP라고 불린다)가 직접 현찰을 넣어서 투자를 하도록 의무하는데, 예를 들어 2000억원짜리 기업을 인수하는 프로젝트 였다면 인수 시점에서 1000억원은 빌린다고 치고, 1000억원의 에쿼티 자금 투자에서 1-2%, 즉 10-20억원은 현찰로 갖다 박아야 한다. 딜 하나 할 때마다 심하면 자기돈 10억씩 박으면서 해야하는 것이다, 여러분!! 그러니, 팔기 전까지 사모펀드 매니저들은 탈탈 영혼과 마이너스 통장을 갈아 넣어서 4-5년 넘게 운용한다. 필자도 경기도 모 저축은행 오너 형님의 도움을 종종 받아 탈탈 털어 넣곤 했다. 딜을 할때마다 현금 방석에 올라 앉기는 커녕 두툼한 마이너스 통장을 깔고 앉는 것이다. 자자, 여러분, 주변에 어려운 사모펀드 매니저들에게 따뜻한 컵라면 한사발씩 돌려보자.
대충 오해를 풀면서 사모펀드 매니저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대충 감을 잡으셨을 듯 하다. 자, 부럽다, 하고 싶다, 돈을 다오 뭐 이러기 전에 정리 한 번 하고 가자. 이제 잠실 김선생의 독자라면 사모펀드의 핵심 업무는 줄줄 외워야 한다!!
<사모펀드 매니저들의 핵심 업무 5가지>
1) 돈 모으기 (Fund raising) – 2) 투자 기업 찾기 (Origination) – 3) 투자 실행 하기 (Execution) – 4) 투자 관리 하기 (Portfolio Management) – 5) 매각 하기 (Exit)
여기서 그럼 제일 쉬운 것은 뭘까? 둥둥둥
정답은 3)번, 투자 실행하기 (Execution). 이는 사모펀드 뿐만이 아니고 통상의 기업투자에 기본이 되는 스킬들이 필요한데, M&A를 실행할 때 앞뒤로 있는 많은 자문사들, 특히 투자은행 (IB), 회계법인, 컨설턴트, 독립계 자문사, 대기업 인수 팀, 로펌 M&A 팀 등에서 1-3년 정도 빡세게 트레이닝을 받으면 기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엑셀로 벨류에이션 모델을 만들고, 산업 분석 리포트를 내고, 기업 실사를 가고 등등 멋있게 보이는 대다수의 노가다성 육체 작업이 여기에 속하고 (뇌도 내 몸의 일부다), 사모펀드에서의 주니어들이 처음 들어와서 시간을 쏟아 붓는 업무가 되겠다.
그럼, 제일 어려운 건 뭘까?
필자 생각에는 1) 돈 모으기 (funding)이다. 사모펀드에 투자를 해주는 기관들을 통상 LP (limited partner)라고 부르는데, 일반적인 사모펀드 매니저들에게는 하나님 와이프느님 급으로 중요하다. LP들은 펀드매니저, 혹은 GP (general partner)를 믿고 짧게는 7년 길게는 10년씩 돈을 맡겨주는데, 우리 같은 펀드에서도 LP 기관별로 최소 100억원, 통상 300-1000억원씩 맡아 오고 있으니 그에 따른 책임감과 또 신용의 중요성은 지금부터 내일 모래 새벽까지 계속 이야기 해도 모자람이 없다. (감사합니다, LP 여러분 – 제가 사랑하는 거 아시죵?)
더 더욱이 이런 투자 자금을 모집할 때 특정 투자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하는 펀딩을 Project Fund 혹은 Target Fund라고 해서, 그나마 운용역 (GP)의 신뢰도가 좀 거시기 해도 프로젝트가 좋으면 투자해 주는 LP들이 있는 반면, Blind Fund라고 해서 과거의 성과가 미래의 성과를 예측해줄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해서 어디에 투자할 지 정해지기 전에 미리 투자를 확약 (commit)해주는 유형이 있는데, 이 후자의 Blind Fund야 말로 사모펀드의 진정한 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투자가 확정되기 전”에 조성된 펀드는 그 운용역 (GP) 혹은 매니저들에게 조성금엑의 1-2% 정도를 관리 보수로 지급한다. 즉, 2000억짜리 펀드를 만든다고 치면, 운용역들은 20-40억원을 자기 주머니에서 투자 해야하고, 대신 관리 수수료로 매년 20-40억원을 받아 직원들 월급도 주고, 월세도 내고, 출장도 다니고, 깨진 딜 실사비도 까먹고 하는 것이다.
통상 돈이 되는 투자 건을 발굴하는 것 (Origination)이 제일 어렵다는 오해를 하는데, 인생을 바꾸는 한 방을 발굴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으나, 우리 같은 사모펀드는 10년이나 되는 펀드 만기 동안 통상 연 수익률 기준 18-25% 정도 되는 투자 건을 “꾸준히” 발굴 하는데에 초점을 둔다. 즉, 쌔뻑으로 발굴하는 구조는 애당초 연속성이 없기 때문에 불가능 하고, 오히려 ‘안전한 놈’을 잡아서 꾸준히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도 종종 회사 직원들한테Origination이 제일 쉽다고 잔소리를 하는게, 막말로 남들보다 5-10% 만 더 줘도 들어오는게 딜이기 때문이다. Origination의 압박감 때문에 비싼 딜을 눈감고 덜컥 싸인하거나, 애매한 딜을 꿀꺽하면 앞으로 5년 이상의 고생 길이 열리기 십상이다. 개고생을 미리 피해갈 수 있는게 실력이고, 이 때문에 세기의 주식투자 대가들이 주장하는 ‘감정의 통제’가 사모펀드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자, 그럼 서론은 이 정도로 하고 (악 벌써 4페이지라니, 칼럼이 곧 끝날지경이다!) 도대체 사모펀드 매니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니면 도대체 누가 사모펀드 매니저가 되는지, 극도로 편협한 시각에서 접근해 보자.
외국계와 국내계 사모펀드를 모두 경험해본 필자의 시각에서 보면, 최소한 인터뷰 혹은 join 시점에서의 중요도나 기본기 측면에서 기준은 다음과 같다.
<사모펀드에서 성공할 수 있는 매니저의 자질 – 요약본>
기본 요건
1. (최우수 등급의) 학벌
2. 벨류에이션 기술 (회계, 엑셀, 재무관리)
우대 요건
3. 투자 경험 (투자자 or 사업가)
4. EQ (대인관계 + 조직 관리)
5. 호기심 (산업 트렌드)
성공 요건
6. 사업가 기질 (투자자 < 사업가): 비판적 사고 + 베팅
7. 의리와 끈기
기본 요건
기본 요건의 경우, 아주 간단한데, 극소수의 사람들이 대규모 자금을 장기로 묶어놓고 운영하다 보니 태생적으로 사모펀드 업계는 아주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다. 우리도 매니저 1명당 대충 2-3천억원 정도 운영하니 사람을 마냥 늘릴 수만은 없다. 그나마 필자가 처음 투자를 시작했을 때에 비하면 국내에서 활동하는 펀드들의 숫자들은 30배 이상 늘었으니 예전보다는 훨씬 사모펀드 운용역의 수가 늘었고, 경영권 인수 말고 단순 투자를 하는 기관과 부동산, 인프라 같은 것까지 포함하면 사모펀드의 저변은 그래도 많이 확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도로 보수적인 산업 성향은 통상 SKY 혹은 미국 top 20 학교 출신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보는게 일반적이다. 알음알음 추천을 통해 들어오는 업의 특성상 학교 선후배간의 끈이 더 단단한 편이고, 이런 경향이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 유럽, 하물며 일본까지 동일해서 앞으로도 쉽게 풀리지 않을 듯 하다. 투자자 입장으로도, 장기간 막대한 자금을 묶어두는 투자를 하다 보니, 보수적으로 바뀔 수 밖에 없고, 이 때문에 이름있는 학교, 오래된 펀드, 오랫동안 함께한 팀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기술의 측면에서 보면, 회계사(CPA)나 CFA가 가장 써먹을 만한 자격증처럼 보이지만, 필자를 포함한 대다수 사모펀드 매니저들이 운전면허증 하나 달랑 들고 (아, 그래도 필자는 1종 수동이다 험) 이 산업에 뛰어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면 의외인데, 그래도 기술의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한 점이, (a) 재무제표를 읽는 법, (b) 엑셀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법, (c) 기업가치를 측정하고 추정하기 위한 벨류에이션 모델링을 하는 법을 미리 배우고 들어온다.
이런 의미에서 M&A 뱅커 혹은 이른바 IB (Investment Bank) 출신들이 사모펀드에 많은 편인데 위와 같은 관련 기술들을 아주 빡쎄게 커리어 첫 1-2년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IB 출신들을 본인도 선호하고 특히 주니어 레벨에서는 아주 잘 적응하는데, 물론 단점이 없진 않다. 투자한 회사들을 경영하다 보면 마케팅, 인사/노무, 생산 같은 재무 이외 토픽들이 중요하게 되는데, 거래 (transaction) 위주로 트레이닝을 받은 IB 출신은 이런 요소에서 위로 올라 갈수록 어려움을 느낀다. 이런 점에서 컨설턴트나 구조조정 전문 회계사들이 시니어가 되면 역량을 발휘하는데, 반대로 컨설턴트들은 기초적인 숫자에 약한 경우가 많고 자본시장 (상장 및 자금 조달)에 대한 경험이 적어 그 나름대로 이빨이 하나 둘 빠져있는 상태이긴 하다.
소수 정예로 움직이는 산업 특성상 사모펀드에 와서 기술을 배울만한 시간적 여유는 많지 않다. 기업의 가치를 추정하고 파악해 볼 수 있는 기초 기술을 이미 익힌 상태에서 들어와야만 산업을 분석하는 법, 경영하는 법, 조직을 관리 하는 법, 기업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법, 공장 라인 보는 법, 노조와 이야기 하는 법, 세법, 상법, 증권거래법, 상장규정, 상속 및 증여세법, 자본시장법, 폭탄주 마는 법, 노래방 에코 조작하는 법, 대리운전 기사 잽싸게 부르는 법, 필드에서 좌탄우탄 오징어 게임 법 등을 경력 첫 3년 내에 모두 배울 수 있다. 반대로 경력직으로 들어오고 싶다면 이런 눈높이에 본인을 맞추어 보고 내 위치는 어디에 있는지 뒤돌아 봐야 한다.
참고로 필자도 사모펀드 업계에 몸을 담그기 전 BCG이라는 전략 컨설팅 회사에서 국내외 그룹들을 대상으로 자회사 구조조정과 매각, 인수 그리고 인사 조직 개편 관련 일을 경험 하였고, 잘 훈련된 음주가무 능력과 노래방 히트곡 숫자 리스트, 그리고 현란한 폭탄주 제조력을 탑재한 후 사모펀드 업계로 이직했다. 같이 일하던 동료 컨설턴트들 중 지금은 펀드 매니저가 된 사람들이 꽤 있는데, 필자도 C모 그룹의 벨류에이션 및 엑셀 모델링 선생으로 교재까지 만들면서 수년간 알바를 뛰었고 (물론 개인적이 아니고 BCG 소속으로서), 필자의 사수 역할을 하던 두명의 선배 중 한명은 엑셀로 일기까지 쓰던 양반이었으니 엑셀과 친해지는 게 기술 중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회계사/세무사 자격증 보다도 더)
우대 조건
일단 기본을 갖추었다면 대충 인터뷰 기회 정도는 잡을 수 있을 터인데, 여기서 본인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은 (a) 투자자로서의 경험이 있는지, (b) 새로운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쉽게 맺을 수 있는지 (즉, 말이 술술 통하는지), (c) 호기심과 인사이트가 있는지에 따라 초기 당락이 결정된다.
위의 세가지 중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투자자로서의 적성”이다. 기본 조건을 맞추다 보면 M&A 기술자들이 많이 후보로 올라오는데, 이 중에서 진짜 투자자로서의 본능과 인성이 갖추어진 사람은 반의 반도 안되기 때문이다. 이 때의 투자는 거창한 창업이나 주식투자일 필요 없다. 5평짜리 오피스텔이 되었던, 비트코인이 되었던, ETF 펀드가 되었던, 하물며 게임 아이템나 기념 주화가 되었던 뭐든 자기 주관을 갖고, 자기 돈을 담궈 보고, 투자의 쓴맛과 단맛을 맛본 이라면 가장 장기의 가장 위험한 투자인 사모펀드에 잘 적응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기술은 많이 아는데, 정작 실전 경험이 없는 떠벌이도 필자는 극도로 기피한다. 이 경우, 우리 회사에서의 ‘실수’를 바탕으로 다른 회사에서 더 잘하거나, 응가만 싸둔 채 아에 투자업을 떠날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막말로 자기돈 1억도 투자 안해본 초짜가 소중한 고객님 돈 수천억을 받아서 굴린다는 게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런 후보자는 절대로 경력자로 뽑지 않는다.
필자의 경우도 수년전 애널리스트 출신을 한번 고용해 보았는데, 개인 투자를 전혀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사모펀드업에서 요구되는 강력한 팀워크와 투자에 대한 부담, 그리고 과도한 야근을 견디지 못하고 한달도 못되어 퇴사한 경우가 있다. 이 일을 겪은 후 애널리스트 출신은 친하게 지내되 팀으로는 절대 뽑지 않는다 (단, 경영진으로는 종종 써봤고 아주 괜찮다).
필자는 또 IQ보다는 EQ를 훨씬 선호하는데, IQ는 학벌로 그냥 갈음하고, EQ는 대면 미팅과 레퍼런스 체크로 확인해 본다. EQ가 왜 중요 하냐면, 대인관계가 좋은 후보들이 투자자 (LP)들과도 쉽게 인연을 맺고, 새로운 딜을 발굴할 때도 뻔뻔하게 창업주를 찾아가서 팔아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어려운 시점에서 경영진들과 소주 한 잔 하면서 공감하고 이를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EQ는 사모펀드의 핵심업무인 funding, origination, management에 모두 필수적인 자질이다.
특히 소수 정예인 팀 특성상 남을 배려하지 않는 독불장군이나, 눈치 없는 천재는 팀워크를 좀먹는 원인이 된다. 이런 천재들은 어쩌면 상대적으로 자기 book을 운영하는 트레이딩에는 효과적일 수도 있으나 경영권을 인수해서 장기로 끌고 나가야 하는 바이아웃 사모펀드에는 독약같은 존재가 되다.
필자의 경험을 봐도, S대 출신에 미국 탑스쿨 MBA를 졸업하고 전세계 최고의 IB, 컨설팅 회사를 경험한 천재 매니저들이 재대로 딜하나 못하고 회사를 떠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비슷한 피드백은 하나같이 ‘어깨 뽕이 너무 심해서’ 딜을 주기 싫었다는, 참으로 들으먼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이유가 대부분이다. 자고로 벼와 사모펀드 매니저들은 알이 실할수록 고개를 숙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호기심과 상상력은 투자업에서 이른바 알파 (Alpha)를 만들어 낼 ‘수도 있는’ 특징이다. 반드시 호기심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것을 지속적으로 배우고 흡수하려는 태도는 비슷비슷한 시도를 하려는 사모펀드들 사이에서 경쟁할 때 빛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우리도 극장체인을 투자하면서 한국영화가 뜨는 걸 보고 한류 (K컬쳐)를 뒤져보고, 한국음악 회사에 투자를 했다. 이후 10년 뒤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가 1위를 하는 것을 보고 이미 해외 진출에 성공한 웹툰 회사에 다시 투자한 것도 이런 호기심들이 투자로 이어지는 사례가 되겠다.
반면 호기심이 반드시 필수적인 투자업이 있는데 그건 바로 벤처 캐피탈 (VC) 분야이다. 벤처캐피탈 역시 사모펀드의 형태로 자금을 모집해서 투자할 수 있기 때문에 사모펀드의 큰 범주에 들어가지만 필자가 하는 경영권 인수와는 투자의 숫자나 투자하는 기업의 규모, 그리고 그 기업의 성장 속도 등에 따라 확연한 차이가 있다. 통상의 사모펀드가 펀드당 10개 이하의 기업에 투자하는 반면 VC는 펀드별 20개 이상을 투자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투자 판단 또한 복잡한 모델링이나 재무분석 보다는 산업의 성장성과 창업주의 비전에 더 중점을 둔다. 그래서 분석력보다는 호기심이 더 월등한 친구들은 사모펀드보다 VC를 추천한다.
성공 요건
여기서 부터는 사회 초년생 혹은 30대 초반을 지난 경력자들이 사모펀드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을지 그 자질을 결정하거나, 기존에 사모펀드에서 경력을 시작한 꿈나무들이 이 길이 진짜 자기 길인지 판단을 할 때 중요한 요소이다.
앞서 이야기한 투자자로서의 경험 여부의 연장선 상에서 경영권 인수를 주로 하는 사모펀드의 경우 이른바 사업가 기질이 큰 성공을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사업가 기질이라고 정의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면,
• 사업 아이템을 찾으며 했던 고민들
• 실제 창업을 하면서 겪었던 규제, 세금, 인력 관리 등 골칫거리의 오케스트라
• 직원들에게 월급을 줘야하는 압박감
• 월급을 버리고, 내 돈으로 새로운 것에 베팅하는 과감함
등이 사모펀드에서도 매우 매우 중요하게 요구되는 자질이다. 사실 이러한 사업가 기질을 갖고 있으면서 다양한 산업에 호기심이 있고, 따뜻한 월급은 또 포기하기 싫은 어중간한 중간자들이 사모펀드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곤 한데, 그래서 펀드 매니저들끼리 모아놓으면 그 주제의 다양성이나 자기 자랑의 길이가 상당하다 (덕분에 아주 재미있다). 이런 의미에서 대기업 사업개발팀이나 신사업팀 출신 주니어들도 종종 인터뷰를 하는데, 전반적으로 나쁘진 않으나 사모펀드 업계의 빈번한 야근과 과도한 멀티 태스킹에 좀 질려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호기심 보다는 좀 더 특정 산업에 머물러 있으면서 멀티태스킹/부페 보다 단품 요리를 즐기는 사람은 사모펀드가 고용하는 전문 경영진으로 빠진다. 필자 생각에는 이 또한 커리어로서도 투자자로서도 매우 좋은 옵션이며, 실제로 필자도 사모펀드 매니저 출신 전문경영진들을 수년 전부터 고용하면서 아주 만족해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모펀드에서 진짜 성공을 하고 싶은 사람이면, 엉덩이가 무거워야 한다. 펀드 특성상 설립부터 청산까지 짧으면 6년 길면 10년 씩 걸리는데, 보너스로 꼬마빌딩 정도 올릴려면 펀드 청산까지 진득하게 기다리면서 투자를 다 회수해야 (exit) 비로소 나오는 성과보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사모펀드의 성과 보수는 통상 최소 투자 수익률 (hurdle rate, 7~10%)을 초과하는 이익의 15~20%를 가져가는 구조인데, 연 20% 정도 수익을 거두는 펀드라면 3000억원 짜리 펀드를 운영하고 대략 300억원 정도의 성과 보수 (carried interest)가 생긴다.
필자 주변에도 지금은 아시아에서 top 10에 들어가는 펀드로 성장 한 사모펀드사의 극초기 직원으로 들어갔다가 아시아 사모펀드 시장이 성장하면서 승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4년 단위로 회사를 옮긴 P모 대표님이 계셨는데, 종종 술자리에서 그 분이 자기 첫 펀드에서 그냥 쭉 눌러앉아 있었으면 아마 지금 월급장이 대표이사를 하고 계시는 회사의 시가총액 정도는 보너스로 모았을 거라고 푸념아닌 푸념을 하신 게 잊혀지지 않는다.
또한 IB 출신 운용역 중에서 특히나 승진이나 월급 욕심에 회사를 비교적 자주 옮겨다니려는 경향이 있는데, 팀워크 측면이나 성과보수 측면에서 이 또한 본인한테 큰 이득이 안된다. 필자도, 국내 펀드에서 2년반 동안 있으면서 업무에 대해 많이 배우고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났지만, 결국 3년도 안되어 옮기는 바람에 첫 사모펀드에서는 자본보다 신용카드 영수증을 더 많이 모았다.
결국, 좋은 씨를 뿌리고 엉덩이를 들썩 거리면 결국 남아있는 생존자들에게 보너스를 헌납한 꼴 밖에 안되는 거다.
반대로 기업을 인수해서 장기로 운영을 하다보면, 절대 하기 싫지만 위기의 순간이 오고 투자한 회사가 어려움에 빠지는 일들이 발생한다. 필자 주변에도 이런 시기를 이기지 못하고 낼름 옮기는 매니저들을 종종 발견하는데, 세상이 워낙 좁아 터져서 어려우면 도망간다는 꼬리표가 조만간 붙게되고, 이런 꼬리표가 달려있는 매니저에게는 투자자들 (LP)이 절대 돈을 맡기지 않는다. 결국, 콩알만한 자기 펀드를 지인들 통해 조금씩 모아 운영하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처럼 사모펀드의 긴 회수기간, 큰 리스크, 많이 들어가는 노가다성 노동력 등등을 막상 들어와서 알게되면 사모펀드를 괜히 들어왔나 하면서 후회하는 메니져들도 종종 보이는데, 특히 욕심많은 펀드 오너가 성과보수를 나눠주지 않고 독식하는 일을 몇 번 당하면, 심한 경우 커리어를 접고 이민을 가버리거나, 빡돌아서 소송까지 불사하는 사례도 발견 된다. 여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모펀드는, 투자자라면 한 번쯤 꼭 꿈꿔볼 만큼 재미있고 보람차고 스릴있다고 확신 드릴 수 있겠다!
사람에 대한 투자는 사모펀드가 하는 가장 불확실한, 그리고 어려운 투자이다. 때문에 필자는 팀원들을 볼 때 10년 이상의 비전을 갖고 ‘투자자’로서의 싹수를 판단하려는 경향이 매우 매우 강하다. 반대로 같은 투자업 중에서도 트레이더들의 경우, 시즌제로 움직이는 스포츠 선수들 처럼 거액의 계약금을 주고 이직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있다.
투자에는 정답이 없다. 어떤 쪽이던 자기와 적성에 맞는 방향을 찾고 그에 따라 뚜벅뚜벅 자기의 길을 걸어가면 된다. 반대로 투자를 아직 생각해 보지 않은 독자분들이라면 오늘 당장 자리를 박차고 시작하기를 권한다. 100세 시대, 출산율 0.7의 국가에서 우리의 미래 언젠가에는 반드시 투자자의 시기가 오게 되어 있다. 그 때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오늘 당장 투자자가 될 준비를, 공부를 해야한다. 여기서 한 번 더 오지랖을 피자면, 필자는 우리나라에, 내 주변에 더 많은 훌륭한 투자자가 나왔으면 하는 꿈이 있다. 지난 2년간, 필자가 업무 시간, 휴일을 쪼개서, 만취상태에서 허벅지를 꼬집으며 장문 잔소리 글을 써온 것도 이 때문이다. 투자업계의 후배들이 많이 나와서 저변도 더 넓히고, 성공해서 돈도 많이 벌고, 또 다시 새끼도 쳐서 아시아 시장을, 나아가 전세계 시장을 꿀꺽 삼키고 K-PE 열풍을 한 번 불러 일으켰으면 하는 작은 상상을 나는 하고 있다.
이제 내일부터 시작할 필자로서의 1년간의 잠수를 마음껏 즐기고 오겠다. 공력을 더 쌓고, 공부를 더 하고, 한단계 더 성숙한 투자자가 되어서 다시 만나자. 그래도 잠실 김대표가 너무 그리운 분은, 뭐 인스타나 종로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으니 아쉬워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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