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자체 충돌 부른 '정율성 이념논쟁' 현장들
일부는 철거 검토…"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시민 혼란
(광주 화순=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정부가 정율성 기념사업을 중단하고 이미 설치된 시설도 철거하라는 권고를 내리면서 광주와 전남 화순군에 조성된 관련 사업·시설들에 눈길이 쏠린다.
12일 해당 지역 지자체 등에 따르면 중국 3대 음악가로 꼽히는 정율성은 1988년부터 한중 우호교류의 연결점으로 여겨지며 광주 동구 불로동·광주 남구 양림동·전남 화순군 등 세 지역에 기념시설이 설치됐거나 계획됐다.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생가와 유물 유품 등을 모아놓은 전시관 등과 기념 시설 등이다.
정율성이 학교에 다니며 거주했던 전남 화순군 능주면 관동길에는 초가 모양의 전시관(고향집)이 조성돼 있다.
정율성이 지낸 1920년대 당시 일반적인 가옥의 형태를 재현한 것인데, 내부에는 음악가를 상징하는 축음기와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이불 책상 가마솥 등이 놓여있다.
중국 명소화 사업의 하나로 문화체육관광부가 6억원을 지원하고 군비로 6억원을 보태 2019년 완공했다.
최근 이념 논란이 일자 화순군은 전시관 문을 닫고, 그의 업적이 담긴 영상 콘텐츠 상영도 중단한 상태다.
정율성이 2년간 재학했던 것으로 알려진 능주초등학교에는 그의 흉상과 대형 초상화 등이 설치돼 있다.
학교 측은 논란이 일자 이 시설을 철거해 달라고 화순군에 요청했고 화순군도 철거하는 방향으로 논의하고 있지만, '고향집 전시관'은 없애기보다는 활용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광주 동구 불로동과 남구 양림동에 있는 정율성 생가 2곳은 모두 기념 시설화가 추진 중이었다.
호적상 본적지인 불로동 생가와 친인척 증언에 따른 양림동 생가를 두고 어느 곳이 진짜 생가인지 논란이 일자 광주시는 2010년 고증위원회를 통해 두 곳 모두 생가로 인정했다.
이념 논쟁의 시작점이기도 한 불로동 생가는 내부를 리모델링해 전시 공간을 조성하고, 주변에 야외무대를 설치하는 등 역사공원으로 조성 중이다.
당초 이 집에 살던 주민을 위한 보상비 35억원과 공사비 13억원을 더해 48억원이 투입됐다.
늦어도 올해 말까지 공사를 마친다는 목표로 막바지 공사가 이뤄지던 중 이념 논쟁이 불거졌고 공사는 중단됐다.
남구 양림동 생가는 바로 옆 한옥을 매입해 전시관을 만들기 위한 설계 용역 중이다.
정율성 유품을 전시하고 그의 업적을 소개하는 홍보판 등을 전시할 예정이었지만 계획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양림동 생가 인근 257m 가량의 도로는 '정율성로'로 지정됐고, 이 길을 따라 그의 사진과 곡, 업적 등을 소개하는 '거리 전시관'도 만들어졌다.
이 길이 시작되는 곳에 민간단체가 기증한 흉상이 설치돼 있었는데 보수단체 회원이 강제로 쓰러트려 훼손했다.
관리주체인 남구는 훼손된 흉상을 복원할지 아니면 철거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기념시설은 아니지만 해마다 열리는 '정율성 음악축제'도 광주에서 이뤄지는 정율성 기념 행사다.
2005년 '정율성 국제음악제'라는 이름으로 처음 행사가 시작될 당시 중국 내에서도 큰 관심을 끌며 교류협력 및 관광객 유치 사업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돼 지금까지 이어졌다.
정율성 이념 논쟁을 지켜본 시민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정율성 화순 고향집 인근 마을주민 50대 A씨는 "누구는 독립투사였다고 치켜세우고, 누구는 공산당이라고 욕하는 상황을 보며 뭐가 맞는 것인지 혼란스럽다"며 "왜 이제야 이런 논란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불로동 생가 공사장 주변을 지나던 40대 시민 B씨는 "이미 수십억원을 들여 공사 해놓고 다시 철거하라는 것은 낭비"라며 "각자의 생각에 따라 정율성에 대한 평가에 갈린다면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알리는 시설로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고 조언하기도 했다.
국가보훈부는 전날 광주시와 화순군 등에 정율성 기념사업을 중단하고 이미 설치된 흉상 등 기념시설 철거를 권고하면서 따르지 않으면 법적 조치인 시정 명령을 발동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행정안전부도 이날 양림동 '정율성로' 도로명을 변경하라고 남구에 권고했다.
광주시는 입장문을 통해 "위법한 사안에만 정부가 시정명령을 할 수 있다"며 "위법한 사업이 아닌 만큼 권고를 수용할 수 없다"고 맞섰다.
남구는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았고, 화순군은 시설 철거를 염두에 둔 논의를 하고 있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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