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투자포럼] SM 지배구조 바꿔놓은 이창환 “행동주의 나서면 저평가 문제 개선돼”
행동주의 투자자인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12일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이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기업 지배구조(거버넌스) 문제를 꼽았다. 대주주 1명이 지분 30%만으로도 회사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는 한국 특유의 기업 지배구조가 비합리적이란 것이다. 이 대표는 일반 주주가 주주제안 등의 행동주의 활동을 통해 주식 저평가 문제를 단계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 대표는 국내 대표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를 상대로 주주 행동주의 활동을 펼쳐 창업자 이수만 없는 멀티 프로듀싱 체제 ‘SM 3.0’을 주도한 인물이다. 얼라인파트너스는 2021년 SM 지분 약 1%를 확보한 후 회사 수익이 주주에게 분배되지 않고 자회사(라이크기획)를 통해 이수만에게 흘러들어가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SM이 얼라인 측 요구 사항을 수용하면서 총괄 프로듀서였던 이수만이 물러났다. SM이 자신을 몰아내고 카카오와 손을 잡자, 이수만은 이에 반발해 BTS 소속사 하이브에 자신의 SM 지분을 매각했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 지형을 바꾼 일대 사건이었다.
이 대표는 이날 조선비즈가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개최한 ‘2023 글로벌경제·투자포럼’에서 국내 주식 투자자 1400만명 시대가 열림에 따라 주주 행동주의 활동은 더 왕성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생긴 배경을 북한이라고 많이 이야기했지만, 사실 지배구조 문제가 크다”며 “앞으로 한국 시장에서 투자를 결정할 때 주주 행동주의와 거버넌스가 중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국내 대형 상장사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을 밑도는 상황을 비정상이라고 진단했다. 지난달 22일 기준 코스피 200 기업의 PBR은 0.9배에 그쳤다. 그는 “PBR이 1보다 낮으면 청산 가치보다 회사 주식 가치가 낮다는 의미”라며 “사실상 상장할 이유가 없는 수준으로, 정상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한국과 주식시장이 유사하면서 중국과 긴장 관계에 놓인 대만의 PBR도 2배 가까이 된다. 이 대표는 “일본 증권거래소는 PBR 1배 이하 회사들에 ‘정신 차려라’라는 메시지를 낼 정도”라고 했다.
이 대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일어나는 근본적 원인으로 상장사 이사와 대주주가 소액주주를 위해 노력할 유인이 없는 점을 꼽았다. 그는 “한국은 지분 30%인 대주주 1명이 이사 100%를 임명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사들은 임명권자인 대주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지주회사 아래 핵심 계열사 지분은 2~3%에 불과한 상황에서 대주주가 (핵심 계열사에) 배당이나 자사주를 매입하게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앞으로 거버넌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주 행동주의 활동이 왕성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주식 투자자가 1400만명까지 늘면서 개인 투자자의 관심이 커졌고, 유권자를 의식해 국회에서 법 개선 논의도 이뤄지고 있어서다. 2022년 한 해 한국에선 47개 기업을 대상으로 행동주의 캠페인이 진행됐다.
이 대표는 “올해 상반기 기준 우리나라의 행동주의 활동은 미국, 일본에 이어 3위까지 올라왔다”며 “주주가 주주제안 등을 통한 행동주의에 나서면 주식이 저평가되는 문제를 단계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주주가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투자자의 인식이 높아진 만큼, 갈수록 행동주의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행동주의 활동 후 주주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결코 실패한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주주총회에서 이겨야만 행동주의가 의미 있다고 보는 것은 본질을 오해하는 것”이라며 “주총에서 주주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경영진과 주주 간) 표 대결 과정에서 경영진은 더 나은 경영 성과를 약속하고 소액주주를 더 신경쓰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행동주의가 예상되는 기업을 선별해 투자하는 것이 불확실성이 큰 시장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 기준으로 ▲대주주 지분이 높지 않은(지분율 50% 미만) 기업 ▲주주 중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 비중이 큰 기업 ▲기업 가치 대비 주식 가치가 저평가된 기업 등을 제시했다. 이 대표는 “가치주 가운데 자산을 제대로 쓰지 않으면서, 거버넌스가 개선될 여지가 있는 상장사를 찾아 투자하면 효과적인 투자 전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다만 행동주의 관련 투자가 ‘장기전’이란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일부 주주가 행동주의에 나섰다고 해서 회사가 바로 확 바뀌진 않는다”며 “장기 투자로 접근할 때 효과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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