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선의 풀무질] 방탄노년단을 아시나요
[전범선의 풀무질]
전범선ㅣ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지난 10월6일 금요일 오후, 서울 중구 ‘문학의 집’에 방탄노년단(BTN)이 등장했다. 멤버들의 군 입대로 활동을 중지한 방탄소년단(BTS)을 이어 대세가 될 것을 천명한 그들은 통기타와 피아노 반주로 신명 나게 노래했다. “이 땅은 너의 땅, 이 땅은 나의 땅, 백두산에서 제주도까지.” 농담 같지만 사뭇 진지했던 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방탄노년단은 ‘60+ 기후행동’ 회원들이 “표현하고 향유하는 노년”을 위해 만든 문화예술 동아리다. 60+ 기후행동은 2022년 1월19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창립발대식을 한 이후 “청년 기후행동 뒷배 행동”, “아기 기후소송 연대” 등 여러 활동을 이어왔다. 이번에는 노인의 날(10월2일)을 맞아 “생태문명 전환을 위한 신노년 선언”을 했다. 산업화 주역이자 기후생태위기 원인 제공자로서 스스로 성찰하고 책임지고 연대하는 새로운 노년상을 제시했다. 어슬렁 행동, 사회적 상속, 노장청 연대 등 구체적인 행동계획도 발표했다.
나는 청년세대 입장에서 환영하고 격려하는 말씀을 올렸다. 통상적으로 나이 불문하고 붙이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그날은 특히 민망했다. 나보다 훨씬 먼저 태어난 선생님들이 모여 나와 같은 ‘미래세대’, 즉 후생님들의 뒤를 보아주겠다고 선포하는 자리였다. “인생 전환, 녹색 전환”이라고 쓰인 스카프를 두르고 옹기종기 앉아 계시는 모습을 보니 새삼 뭉클했다. 감동했고 감사했다.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2020년 8월24일, 나는 이 코너에 ‘멸종저항은 세대전쟁이다’라는 칼럼을 썼다. 코로나19의 절망 속에서 가속화하는 기후생태위기를 목도하면서 분노가 들끓었다. 뉴욕 유엔본부에 가서 세계 정상들을 향해 “어떻게 감히!”라고 외쳤던 그레타 툰베리를 본받아 전투를 개시했다. 산업화 세대, 즉 노년과 중년이 저지른 과오를 우리 청년과 청소년이 바로잡겠다고 외쳤다. 위 세대가 싼 똥은 위 세대가 치워야 하지 않나?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었다. 저항하고 반란하고 제동 걸고 균열 내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무너진 것은 오히려 나의 또래 동지들이었다. 전쟁터에서 전우가 쓰러지듯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극심한 기후우울증과 소진(번아웃) 증후군을 겪었다. 생명, 생태, 녹색운동, 동물, 기후, 여성운동을 하는 청년들은 기본적으로 마음이 답답하기 마련이다. 세상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붙잡고 있기 힘들다. 해를 거듭할수록 기후재난이 잦아지고 생태계가 황폐해진다. 도대체 어디서 꿈과 희망을 찾을까? 핵가족마저 분열된 핵개인 시대다. 자취방에 같이 사는 강아지, 고양이가 유일한 위안이다.
과격하고 급진적인 것 같은 청년 활동가에게 꿈이 무엇인지 물으면 생각보다 아기자기한 답이 돌아온다.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바닷가에 살고 싶다.” 사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문명전환 같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다. 그저 아름답게 늙는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지구라는 한집에 사는 모든 식구가 그럴 수 있길 바란다. 그 길이 보이지 않아 분노하고 저항하고 우울하고 소진된다. 그런데 신노년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선생님들 앞에 서니, 한줄기 빛이 보였다. 그 어떤 말글보다 그분들의 존재 자체가 선언적이고 전환적이었다.
원래 아이는 노인에게서 미래를 보고 노인은 아이에게서 미래를 보는 법이다. 닮고 싶은 어르신과 그를 닮은 어린이의 순환. 그것이 공동체의 본질이다. 우리는 세대 간 단절된 사회에서 각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기후생태위기 대응은 노장청이 다 같이 달려들어도 될까 말까다. 세대를 갈라치기하는 기후운동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고로 생태문명 전환은 공동체 회복에서 비롯된다. 노장청이 연대하여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되찾아야 한다. 모두를 위한 모두의 대축제를 꿈꾸며 삶을 지속해 나가는 것이 곧 문명전환이다.
방탄노년단의 무대에서 나는 미래를 보았다. “저렇게 늙고 싶다!” 신중년에 이어서 신노년이 한국 사회에 등장했다. 그렇다면 신청년의 모습은 무엇일까? 나이, 성별, 인종, 종을 가리지 않고 모두와 조화로운 청년, 뭇 생명을 공경하는 청년 아닐까? 나는 한반도에서 새로운 화랑운동을 점친다. 문화예술을 통해 신노년, 신중년, 신청년이 서로를 모시고 살리는 한마당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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