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콰르텟 리더 윤은솔과의 노마드 인터뷰 [양형모의 만터뷰]

양형모 기자 2023. 10. 12.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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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예요!”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 1층 로비에서 낯익은 홍보 담당자를 보고 손을 번쩍 들었다. 그의 뒤로 단발머리에 검정색 옷차림의, 한 눈에도 “나는 바이올리니스트!” 싶은 느낌의 사람이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터뷰는 스포츠동아 인터뷰 ‘1호실’에서 진행되었다. 스포츠동아에는 세 개의 인터뷰룸이 있다. 하나는 꽤 큰 방이고 나머지는 사이좋게 똑같은 크기의 작은 방 두 곳. 나는 내 마음대로 가장 큰 방을 ‘1호실’이라고 부르고 있다. 10인조 아이돌그룹 인터뷰도 할 수 있을 만큼 크지만, 거대한 테이블과 의자 외에 달리 가구가 없어 소리가 울리는, 일명 목욕탕 사운드가 나는 곳. 바이올리니스트를 모시기엔 ‘음향적’으로 좀 송구한 장소인가 싶지만.

바이올리니스트 윤은솔씨는 요즘 클래식계에서 이름값이 치솟고 있는 아벨콰르텟의 멤버이자 리더다. 14일 토요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아벨콰르텟의 멤버가 아닌 솔리스트로 리사이틀을 앞두고 있다. 리사이틀의 제목은 ‘뮤직 노마드(Music Nomad)’. 이름에서 자유의 냄새가 물씬하다. 지난해에 이어 단독 리사이틀은 두 번째다.

이 인터뷰는 제법 길다. 긴 글을 선호하지 않는 분들께는 죄송한 마음이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 애호가로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와 연주자에 대해 평소 많은 질문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것저것 염치 불구하고 질문했다. 그 탓에 무책임할 정도로 긴 인터뷰가 되어버렸지만, 나름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리사이틀 얘기부터.

-이번 리사이틀의 타이틀이 ‘뮤직 노마드’입니다. 최근 나온 아벨콰르텟의 앨범은 하이든이었죠. 그런데 독주회는 하이든은 커녕 완전 근·현대 작곡가들의 작품들로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단 말이죠.

“우리나라 정서가 서유럽보다는 동유럽에 더 잘 맞을 것 같았거든요. 바르톡은 제가 사랑하는 작곡가이기도 하고요. 사실 다음 리사이틀은 러시아 쪽을 할까 하는데요. 그래서 예고하는 느낌으로 프로코피에프까지 넣어봤어요.”

-동유럽에 이어 러시아라 …. 이른바 ‘윤은솔의 동진(東進)’이네요.

“네네. 그렇게 한번 가 보려고요.”

-동구권 작곡가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하셔서 그쪽 나라에서 유학하신 줄 알았습니다. 보통 그렇게들 많이 하시잖아요. 프랑스에서 유학하신 분들은 프랑스 레퍼토리를 선호하시는 식으로. 그런데 의외로 독일과 스위스에서 유학을 하셨더라고요.

“비엔나에도 잠깐 있었거든요. 비엔나에서 살아보니까 거의 동유럽과 많이 가깝더라고요. 동유럽에서 오신 분들도 많고. 또 제가 헝가리 음식을 너무 좋아해서(웃음).”

-이번 리사이틀에서 연주하시는 작품의 작곡가는 세 명이죠. 바르톡, 야나체크, 프로코피예프. 사실 어지간한 클래식 마니아가 아니면 바르톡은 ‘공포의 이름’ 아니겠습니까(웃음). 그래도 이번 작품들은 지나치게 난해하지 않아 편히 감상할 수 있는 곡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곡들과 ‘노마드’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민속 음악을 많이 연구한 작곡가들이죠. 고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 갔다가 돌아오기도 했고. 음악의 세계를 한 곳에 두지 않고 조국의 민속 음악을 통해 자신들만의 색깔을 표현하는 데에 중점을 뒀던 작곡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전 세계를 유랑하듯 돌아다닌 작곡가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거군요. 그래서 노마드.

“미국을 다들 한 번씩 다녀왔기 때문에 그런 부제를 붙여 볼까도 싶었죠.”

-그럼 연주하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들어볼까요.

(윤은솔은 이번 리사이틀에서 바르톡 ‘루마니아 민속 무곡, Sz. 56 BB 68’, 야나체크 ‘ 바이올린 소나타 JW Ⅶ/7’, 바르톡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랩소디 제1번 Sz. 87’,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소나타 제2번 라장조, Op. 94a’를 연주한다)

“바르톡은 생전에 수 천 곡의 민속 음악을 직접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녹음했거든요. 작곡가이자 민속음악 학자였죠. 야나체크는 음악을 딱 들어보면 드뷔시처럼 확실한 색채감이 있어요.”

-드뷔시와 비교하면 어떤 점이 다를까요. 드뷔시는 그 색채감이란 게 딱 떠오르잖아요.

“야나체크는 지방색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더라고요. 저도 지방 사람(마산 출신이라고 합니다)이지만 서울에 와서 살다 보니 서울 때가 묻고 그렇게 되어 가는 건데, 그 사람은 모국어인 체코어, 심지어 각 지방 사람들의 말에서 오는 운율 같은 것들을 다 음악에 담았다고 해요. 새 소리 하나까지도 자기네 동네 새 소리. 그러다 보니 확실히 색감이 세련되었다기보다는 딱 지방의 느낌이 있어요. 그림에 비유하자면 마치 초가집 그림을 보는 것 같거든요.”

●예정된 운명 같기만 했던 연주자의 길 “아벨을 만나 달라졌어요”

-아벨콰르텟 얘기 좀 하고 넘어갈까요. 아벨콰르텟의 리더이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아벨콰르텟이 독일 유학시절에 결성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리더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한데요(웃음). 사실 콰르텟을 처음 해보자고 했던 친구는 비올리스트 김세준 씨였고, 그 친구는 독일에서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게 되면서 지금은 콰르텟에서 나가게 되었죠. 그 친구가 있을 당시에도 ”뭐 그냥 해볼래?“ 해서 그냥 한 거라 그 친구가 리더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저희는 사실 민주주의적으로 해오고 있습니다(웃음).”

-리더의 역할은 뭔가요. 괜히 밥값만 많이 나갈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웃음).

“팀원들의 의견을 하나로 잘 통합하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목표에 대해 잘 설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똑바로 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런데 다들 각자 자기 역할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 같은 거는 (조)형준(첼로)이가 다 관리를 하고 있는 식이죠.”

-‘아벨’이라는 이름은 누가 지은 건가요. 딱 봐도 구약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가인과 아벨 같은데 말이죠. 심지어 히브리어이기도 하고.

“그것도 다 민주적으로 이름을 하나씩 놓고 투표를 한 거였죠. 히브리어로 그냥 ‘숨’이라는 의미에요. 사실 저희는 그걸(가인과 아벨) 생각도 안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이렇게 생각들 많이 하시겠다 싶더라고요. 그냥 외국인들도 부르기 편했으면 좋겠고, 너무 길지 않은 이름이었으면 좋겠고, 약간의 우아함과 부드러움이 담겨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숨’, ‘호흡’이라는 의미라고 하길래 조금 의아했거든요. “엇, 이건 현악 콰르텟이 아니라 관악기 콰르텟 느낌인데?”하고 말이죠.

“현악기도 숨을 쉽니다!”

-실내악과 솔리스트 활동을 병행하고 계시는데요. 이게 양쪽의 연주와 활동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

“사실은 실내악의 경우에는 제의를 받아서 시작을 하게 됐지 진짜 하고 싶다는 마음은 아니었거든요. 실내악 음악도 잘 몰랐어요. 그렇게 무지하게 시작했는데, 하면 할수록 빠져들더라고요. 음악적으로 어떻게 더 상대방에게 배려를 해야 되고, 이런 밸런스적인 부분을 배우게 되는 거죠. 제 소리만 낼 게 아니고.”

-실내악은 아무래도 그렇겠죠.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고 거기에 맞춰주고, 받쳐주고, 더 살 수 있게. 그런 유연함이 좀 는 것 같아요. 그런데 결정적으로는 실내악을 하면서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악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부모님 영향이 컸거든요. 부모님께서 음악을 하셨어요. 어머니가 바이올린을 하셨고 아버지가 작곡을 하셨죠.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바이올린을 했어야 했던 …. 예원을 가고 예종을 가고. 그렇게 그냥 살고 있었는데 유학을 가면서, 그리고 실내악을 시작하게 되면서 완전히 생각이 달라지게 된 거죠.”

-그 전까지는 그러면 운명적으로 정해진 길을 그냥 가고 있었다는 ….

“요즘에는 학생들이 실내악 활동도 하고 오케스트라 활동도 하고 이러는데 제가 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모든 친구들이 솔리스트를 꿈으로 삼았거든요. 근데 솔로 음악이란 게 맨날 하는 것들만 하고. 그게 어떻게 보면 좀 지겨웠기도 했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새로운 실내악 음악을 함께 해 나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런 재미가 있구나’ 싶어진 거죠. 오케스트라 하는 친구들도 그들만의 재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도 점점 (제가 방금도 레슨을 하고 왔지만) 학생들이 솔리스트만 꿈 꾸는 게 아니고 진짜 다양한 분야를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좋은 현상인 것 같아요.”

-이렇게 된 데에는 아무래도 노부스콰르텟이나 아벨콰르텟 같은 선배들이 해외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활발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 음악(실내악을 의미하는 듯)을 들을 기회가 사실 잘 없었죠. 이젠 국내에서도 실내악 페스티벌이 많아졌고, 심지어 솔리스트들도 요즘에는 실내악을 무조건 하잖아요. 이제 솔리스트, 실내악 연주자, 티칭만 하시는 분. 이런 구분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솔로 때와 실내악 연주 때의 소리가 달라지는 이유-궁금한 게 있는데요. 연주자들 특히 현악기 연주자들 같은 경우는 자기만의 음색을 다 갖고 있잖아요. 마치 자신의 목소리처럼 말이죠. 그런데 솔리스트로 연주할 때의 음색을 콰르텟 연주를 할 때에도 그대로 가져가는 건가요.

“달라요. 일단 저희만 해도 그래요. 저희는 1바이올린을 서로 바꿔 가면서 하는데 1 바이올린에 맞는 소리를 내줘야 돼요. 사실 박수현씨랑 저는 소리가 많이 달라요. 성향도 그렇고. 그 친구는 심지어 외국에 오래 살기도 했고요. 생각하는 것부터 많은 것들이 (저와는) 굉장히 멀었어요. 근데 같이 하는 시간이 늘어 갈수록 저도 그 친구를 더 이해하게 되고 그 친구도 저를 이해하게 됐거든요. 서로 잘 알게 되니까 더 배려하게 되고. 그 친구가 가진 색깔의 소리를 제가 잘 받쳐주려면 그와 비슷한 음색으로 표현을 해줘야 되기 때문에 저의 테크닉도 많이 변했죠. 그 친구도 마찬가지고요.”

- 아벨콰르텟을 통해 서로 닮아간다는 거군요. 흥미롭습니다.

“언젠가 한 번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요. ”이러다 우리가 언젠가는 진짜 한 가운데서 만나는 날이 오겠지“. 서로 다른 점을 가지고 있는 만큼 서로에게 배우는 것 같아요.”

-이번 연주회 레퍼토리들은 평소에 연주를 자주 하시는 곡들인가요.

“제가요? 아니요. 프로코피예프는 뮌헨에 있을 때 한 번 한 적이 있는데, 나머지는 다 새 곡입니다.”

-새로운 곡이었군요. 프로들이 새 곡에 접근하는 방식이 궁금하단 말이죠. 학생들이 새 교과서를 받은 거하고는 아무래도 다르지 않겠습니까. 연주자마다 다르기도 할 텐데요. 처음부터 끝까지 쭉 그냥 한번 연주해보고 그 다음에 세부적으로 파고드는 사람도 있을 것 같고, 우선 악보부터 철저히 파고드는 타입도 ….

“저는 일단 한번 들어봅니다. 요즘에는 찾으면 다 나오니까. ”

-악보를 보면서 들어보시는 거겠죠?

“네. 피아노 반주까지 있는 총보를 보면서 한번 들어보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악보에 적어요. 그리고 단락을 나누죠. 제시부, 발전부, 재현부 이런 거 있잖아요. 이런 것을 좀 나눠놓고, 어느 지점에서 빵 터뜨렸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을 미리 생각하죠. 들으면서 이런 데는 이렇게 하고 싶은데 저렇게 하고 싶은 데 하는 것들을 다 적어요. 저는 잘 적어놓는 스타일이어서(웃음). 그렇게 적어놓고, 비로소 해보는 거죠. 내가 원했던, 생각했던 그 색감이 나올 때까지 반복 연습을 하는 겁니다.” -악보를 앞에 놓고 덥석 바이올린부터 드는 것이 아니었군요. 물론 처음부터 악보를 보며 연주하는 사람도 있겠죠?

“많은 사람들이 그냥 일단 해볼 것 같아요.”

-이번 리사이틀에서 연주할 곡 중 대부분이 처음 접하는 곡들이라고 하셨는데요. 한 곡을 완성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나요? 음대생들은 한 곡 갖고 한 학기를 보내기도 하는데요.

“그럴 수 있어요. 근데 야나체크는 제가 해보니까 테크닉적으로 어려운 건 없어요. 그렇다고 음이 많지도 않고요. 다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작곡가의 지방색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죠.”

-연주자들은 소리의 색깔도 색깔이지만 소리의 온도가 있잖아요. 어느 쪽이세요?

“전 좀 따뜻한 쪽 같은데요. 이건 악기와도 관련이 있어요. 연주를 하다 보면 이 악기를 쓸 때도 있고, 저 악기를 쓸 때도 있잖아요. 분명히 처음에 저한테 올 때는 이 악기가 굉장히 쌩쌩하면서 차가운 느낌이 있었는데, 제가 쓰다 보면 소리가 따뜻해지거든요. 악기도 사람 따라 간다고 하잖아요.” -악기 중에서도 바이올린은 특히 예민한 악기로 알려져 있죠. 프로들이 사용하는 고가의 악기는 더 할 겁니다. 그러다 보니 악기가 연주자를 따라올 때도 있지만, 연주자가 악기의 기분이나 비위를 맞춰줘야 할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이번 리사이틀에 연주하실 악기는 어떤 건가요?

“170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악기고요. 이탈리아제이며 이름은 몬타냐냐라는 악기입니다. 이 악기는 제가 1년 전에 만났어요. 많은 악기를 써봤는데 이것만큼 소리가 저한테 꽂히는 게 없었거든요. 이게 마음에 탁 꽂혔다고 해야 되나요?”

-이 몬타냐냐가 아까 말씀하신 차가웠다가 지금은 따뜻해진 악기일까요.

“이 악기도 그렇게 가고 있네요. 그래서 전 오히려 조금 더 차가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여러 줄을 갈아 보기도 하는데요(웃음).”

-개성이 강한 악기인가 봅니다.

“네. 씨바우트 쪽이 다른 바이올린에 비해서 조금 좁아요. 이런 악기들은 소리가 조금 ‘옹~’ 하면서 멀리 가거든요. 저는 무대에서 멀리까지 가는 악기가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을 해서 선택하게 됐습니다.”

-소리와 특성에 따라 악기를 바꾸기도 하나요? 예를 들어 솔로 연주 때와 콰르텟 연주 때 ….

“같은 걸로 합니다. 그래서 제가 악기를 구매할 때도 솔로만 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거에 잘 맞는 악기를 필요로 했거든요. 콰르텟할 때 멤버들과 색깔이 맞아야 되고. 이게 근데 참 어렵더라고요. 왜냐하면 악기라는 게 사람 목소리처럼 다 다르거든요. 콰르텟의 경우 비슷비슷하게 색감이 가야 하는데, 어느 한 악기가 튄다거나 하면 곤란하겠죠.”

-지금 쓰시는 몬타냐냐는 콰르텟 연주 때에도 잘 어울리는 모양입니다.

“제 악기가 아무래도 조금 ‘꽂히는’ 쪽이다 보니까 콰르텟을 할 때는 굉장히 힘을 빼고 해야 돼요. 그러다 보니 주법도 많이 바뀌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쓰던 악기가 손에서 해야 될 일들이 많았다면 이 악기는 오히려 더 힘을 빼야 되는 거죠.”

●김남윤 선생님은 ‘사랑’, 포펜 선생님은 ‘음악을 크게 보는 법’

-지금까지 많은 훌륭하신 선생님들을 모셨잖아요. 특히 국내에서는 고 김남윤 선생님의 제자로 유명하시죠. 한국, 외국 선생님들께 배우면서 기억에 남는 가르침은 어떤 것일까요.

“이 얘기는 좀 슬프네요(이 질문을 받은 윤은솔씨의 눈가에 물이 맺혔고, 인터뷰에도 살짝 쉼표가 있었다). 김남윤 선생님께는 사랑. 음악적인 테크닉을 얘기하는 것보다는 사랑이었어요. 진짜 엄마 같으셨거든요. 뮌헨 국립음대에서 크리스토프 포펜 선생님께는 음악을 크게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학생들이 사실 그게 부족하잖아요. 학생 때는 그냥 하나하나 하기 바쁘니까요. 어떻게 하면 크게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셨던 것 같아요.”

-이쯤에서 잠시 곁다리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다루는 유명 유튜브 채널을 보니까 음대 교수님들을 모셔다 놓고 블라인드로 학생들의 연주를 평가하는 콘텐츠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학생들 중에 진짜 유명한 프로 피아니스트를 한 명 슬쩍 집어 넣는 거죠. 그런데 교수님들이 딱 알아채시더라고요. 제가 인상 깊었던 것은 한 교수님이 “이 친구는 마치 거장처럼 쳤어”라고 한 부분이었습니다. 이 ‘거장처럼 친다’라는 감상의 포인트는 무엇일까요.

“맛 살리는 거요. 맛을 살린다. 모든 게 다 일상생활에서 나오잖아요. 음식도 그렇고. 식당을 가봐도 맛을 살리는 곳이 확실히 있잖아요.”

-예를 들어 평양냉면으로 치면 수 십년 전통의 냉면 전문점과 마트에서 파는 인스턴트 냉면의 차이?

“그렇죠. 퀄리티의 차이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선생님이 종종 하시는 말씀이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피아노 반주자는 영혼의 동반자와 같은 관계”라는 것이거든요. 그만큼 잘 맞는 반주자를 만나기가 어렵다는 얘기이기도 하고요. 이번에는 피아니스트 박영성씨와 호흡을 맞추시는데, 이전에 함께 연주하신 적이 있나요?

“한 번요. 트리오로 했었죠. 제가 크리스텔 리(바이올리니스트)의 음악 색깔을 좋아해서 유튜브를 봤는데 박용성씨가 같이 하고 있더라고요. 그땐 몰랐어요.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봐서 어떤 피아니스트인지 알게 되었고, 또 트리오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같이 해보니까 굉장히 거침이 없는 친구더라고요.”

-아하, 원래 잘 아는 분은 아니었군요.

“네. 제가 여쭤봤죠. 같이 해주실 수 있는지. 마침 이 곡을 해보셨다고 하시더라고요. 한 번 해봤으면 더 여유가 있잖아요. 그래서 같이 하면 좋겠다 싶었죠. 트리오했을 때 음악적인 부분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요. 그때 곡이 라흐마니노프였는데, 긴 피아노 솔로 카덴차가 있거든요. 그걸 거침없이, 굉장히 잘 연주했어요”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개인마다 선호하는 스타일의 반주자가 있을 텐데요. 개인적으로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세요?

“저도 실내악을 하고 있으니까 같이 갈 때 잘 가고, 잘 받쳐 주기도 하고, 센스가 있는 스타일.”

- 그 ‘센스’라는 게 어떤 건가요?

“역시 맛을 잘 살리는 거죠. 다 연관이 있어요. 제가 좀 돋보여야 될 때는 약간 빠져 주기도 하고. 빠져줬다가 또 같이 함께 했다가. 또 제가 원하는 색채를 같이 잘 구현해 줄 수 있는 그런 친구. 밀당을 잘 해야 해요. ”

-피아노 반주에 따라 바이올린 연주가 달라지기도 하나요?

“완전 달라지죠. 정말 그래요. 옆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음악을 지금 하고 있는지에 따라 영향이 있으니까요. 서로 들으면서 가는 거니까 있을 수밖에 없죠.”

-최근 아벨콰르텟이 낸 앨범이 화제가 되었죠. 하이든의 4중주 작품 네 곡을 녹음한 앨범이었습니다. 들으면서 우선 두 가지가 인상 깊었어요. 하나는 템포가 빠르고 싱싱하다. 젊은 사람들의 연주라는 느낌이 ‘확’ 오더라고요.

“저도 그렇고 (박)수현이도 그렇고 말이 조금 빨라요. 음악도 사람 말하는 속도랑 비슷한 것 같아요. 억양도 그렇고. 목소리 톤, 높낮이, 뉘앙스 … 이런 게 그대로 음악에 나오거든요. 야나체크도 그런 것에서 굉장히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하이든도 마찬가지로 언어적인 면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 작곡을 했다고 해요.” -또 한 가지는 좀 뜬금없지만 앨범의 음질이 굉장히 좋았어요. 어디서 녹음한 건가요?

“비엔나에서 녹음했어요. 비엔나의 국립학교 안에 새로운 홀이 생겼거든요. 이 홀에서 학교 교수님과 녹음을 했어요.”

-녹음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녹음만 딱 5일. 사실은 4일이었는데, 약간 문제가 있어 가지고(웃음).”

-이번 리사이틀의 해설을 보면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이 음악의 길 위에도 있습니다. 뮤직 노마드라는 제목으로 꾸며지는 이번 독주에서는 동유럽의 세 작곡가를 통해서 나는 지금 어디쯤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음악의 언어로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이렇게 하셨더라고요. 그렇다면 과연 윤은솔씨의 음악적 인생은 어디쯤 와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아 … (이런 질문을 받을 줄은). 딱 중간인 것 같아요. 아직 한참 더 남았지만. 음악은 진짜 끊임없이 악기를 놓는 날까지 공부하고 연습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이런 무대를 통해서 나를 한 번씩 점검하고, 내 음악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그분들도 공감해 주고. 이런 작업들이 저는 좋은데요. 콰르텟도 마찬가지죠. 내 음악을 그들이 하기도 하고 그 친구들 음악을 제가 하기도 하고. 그래서 하나의 아벨이 되는 것처럼 저도 제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 중이죠. 뭐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해야 되는 것 같아요.”

-이번 리사이틀은 자신들이 어디쯤 와 있는지, 관객들이 음악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리임과 동시에 연주자도 자기 자신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자리가 될 수도 있겠네요.

“마무리 감사합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사진제공 : Shin-joong Kim, 목프로덕션

▲바이올리니스트 윤은솔은?

바이올리니스트 윤은솔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한 후 2004년 부산음악콩쿠르 1위, 2006년 중앙음악콩쿠르 1위, 2008년 KBS한전음악콩쿠르 등의 국내 저명 콩쿠르들을 석권하며 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독일 앙리 마르토 콩쿠르에서 2개의 특별상 수상, 이탈리아 제19회 포스타치니 국제 콩쿠르 우승, 토룬 국제 콩쿠르 3위 수상으로 국제무대에서도 입지를 드러내며 차세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자리매김했다.

KBS교향악단,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인천시향, 부산시향,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 중국 텐진오케스트라,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코리아쿱오케스트라 등 국내외 유수 오케스트들과 협연하며 솔리스트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선보임과 동시에 실내악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으로 독일 유학 중 2013년 아벨 콰르텟을 결성했다.

윤은솔이 팀 결성 당시부터 멤버로 활약하고 있는 아벨 콰르텟은 아우구스팅 에버딩 국제 실내악 콩쿠르에서 2위, 하이든 국제 실내악 콩쿠르 1위, 리옹 국제 콩쿠르에서 2위와 청중상을 수상하며 5개월 안에 3개의 국제 콩쿠르에서 순위입상을 하는 놀라운 콩쿠르 킬러로 세계무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2016년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현악사중주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 순위입상(3위)을 하며 또 한번 우리 음악계에 쾌거를 전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윤은솔은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며 성장하여 예원학교를 졸업하고(김복현 사사) 2004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조기입학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사와 전문사과정(김남윤 사사)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독주자과정 중에 도독하여 뮌헨 국립음대에서 마스터·마이스터 과정(크리스토프 포펜, 하리올프 슐리히티히 사사)을 마쳤다. 스위스 바젤 국립음대에서 하겐 콰르텟의 라이너 슈미트를 사사했다. 후학양성에 대한 열정으로 윤은솔은 현재 연세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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