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Z세대·기후변화, 와인 시장 흔드는 3개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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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북쪽으로 220km 떨어진 아베이루 지방의 한 마을에 레드와인 220만L가 콸콸 쏟아졌다. 골목길이 마치 강물이 범람한 것 같았다. 팔리지 않아 폐기하는 와인을 모아 재처리하는 업체의 저장고가 터지는 바람에 발생한 일이었다. 업체측은 “와인 소비 급감으로 공급 과잉 사태가 빚어진 탓에 와인 저장고가 가득 차 있었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소식을 전하며 글로벌 와인 시장이 몰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포르투갈뿐 아니라 주요 와인 생산국에서 요즘 팔지 못한 와인이 쌓여 곤욕을 치르고 있다. 올해 프랑스 정부는 팔리지 않은 와인을 향수·세정제로 바꾸기 위해 거액의 보조금을 투입했다. 보르도에서 와인 업자들이 포도밭을 갈아엎자 ‘보르도 대학살’이란 말까지 나왔다.
고급 주류를 상징하는 ‘신의 물방울’이 어쩌다 골칫 덩어리가 됐을까. 글로벌 와인 산업을 체계적으로 분석해온 호주 애들레이드대 와인경제연구센터를 이끄는 킴 앤더슨 소장은 WEEKY BIZ와 화상 인터뷰에서 “수십년 호황을 누린 와인 시장이 불황 사이클에 진입했다”며 “중국, Z세대, 기후변화라는 세 가지 변수가 세계 와인산업을 흔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와인 업계가 훨씬 더 민첩하고 유연하게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앤더슨 소장은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로, 통상·무역·농업 정책에 정통한 경제학자다.
◇“중국에 의존한 호주 와인 직격탄”
요즘 호주에는 수영장 859개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와인 28억병이 팔리지 않은 채 쌓여있다. 호주 와인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이 2021년 3월 외교 갈등을 이유로 최고 218%에 달하는 보복관세를 부과해 수출 길이 막히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앤더슨 소장은 “이미 2017년쯤부터 세계 와인업계를 중국이 흔들어왔다”며 “호주는 수출을 지나치게 중국에 의존했다가 직격탄을 맞았다”고 했다. 중국의 몽니가 와인 시장에 미치는 타격이 작지 않다는 얘기다. 세계 와인 시장의 ‘큰손’이 된 중국에서는 ‘궈차오(國潮•애국 소비)’ 열풍이 불어 와인 대국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중국의 수입 와인 시장은 5년 연속 감소했다. 지난해 중국의 프랑스 와인 수입량이 전년보다 21% 급감했을 정도다. 중국 정부는 와인 수입이 줄어드는 사이 정책적으로 자국산 와인 생산을 늘리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35년까지 중북부 닝샤후이족자치구를 프랑스 보르도에 버금가는 와인 산지로 육성할 계획이다.
앤더슨 소장은 “지금은 중국이 횡포를 부리고 있지만 중국 내 와인 소비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하면 돌파구를 열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호주의 대형 와인업체 펜폴즈가 무역 마찰에 대응하기 위해 아예 중국에 들어가 지난해부터 윈난성에서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것을 예시로 들었다. 앤더슨 소장은 “펜폴즈가 중국인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중국 전통 술 바이주를 넣은 와인을 출시했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며 “글로벌 와인 업계는 중국 시장에 계속 투자하면서 다른 아시아 신흥국으로도 수출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인 가구 Z세대는 와인 외면
앤더슨 소장은 중국의 횡포보다 Z세대가 와인을 멀리하는 현상이 보다 근본적인 위협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요즘 젊은 세대는 와인보다 맥주나 증류주를 선호하거나, 아예 술을 마시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와인업계가 이들을 끌어들이지 못한 것이 패착”이라고 했다.
맥주를 비롯한 다른 주류가 무알코올·저도수 같은 Z세대 취향에 맞춘 상품을 출시하는 것과 달리 와인은 알코올 농도가 일률적이다. 앤더슨 소장은 “현재 기술로는 알코올을 제거할 때 와인 풍미가 크게 떨어지고 포도 주스처럼 느껴질 수 있다”며 “최근에 무알코올 와인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성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와인 한 병 용량(750mL)이 너무 커 대세가 된 1인 가구에 부담스럽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앤더슨 소장은 “소용량 와인을 출시하며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180mL나 375mL짜리 작은 와인을 만드는 시도가 이뤄졌지만 생산 비용이 늘어나는 문제로 자리잡지 못했다”며 “와인병 사이즈를 보다 다양하게 하는 노력이 계속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일본에서 인기있는 캔 와인, 가격을 낮추고 재미있는 상표를 붙인 이탈리아 프로세코(탄산 와인) 같은 상품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와인 산지 덮친 이상 기후
이제는 일상이 된 이상 기후도 큰 변수다. 앤더슨 소장은 “캘리포니아, 칠레, 호주와 남유럽의 일부 산지는 포도 재배 시기가 40년 전보다 3~4주씩 앞당겨지고 있다”며 “기온이 더 오른다면 와인 품질을 유지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했다. 화이트 와인이 주력이던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선 요즘 레드와인을 생산하고, 영국에선 샴페인을 만든다. 프랑스 보르도에서는 낮 기온이 45도까지 오르자, 농부들이 포도 수확을 한밤 중에 하고 있다.
대신 앤더슨 소장은 북반구에서 위도가 높은 지역들에서 와인 생산이 늘어나는 변화도 눈여겨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북미에서 미국 뉴욕주와 워싱턴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와인 산업이 확장하고 있다”며 “기온이 높아진 북유럽도 수혜를 얻는 중”이라고 했다.
앤더슨 소장은 “와인 업계가 빠르고 유연하게 소비자 취향을 따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70년대 호주 와인이 유럽에서 ‘샤토 천더(chunder·구역질)’라며 혹평을 받았지만, 다채로운 상표와 병 디자인을 선보인 덕분에 유럽인들의 새로운 소비층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며 “지금의 위기도 관행을 넘어선 마케팅 혁신과 수출 다변화로 돌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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