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은 나중에 거장이 됩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미디어에는 성공한 사람들의 후일담이 넘친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접하다보니, 그들에 비해 내가 너무 작고 하찮은 거야.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에는 성공한 사람들의 후일담이 넘친다. 인터넷은 아주 빛나거나 아주 어두운 것에 클릭이 쏠린다. 매일 스크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뱁새가 황새 따라가는 기분이 들고는 한다. 도전의 시작은 대부분 작고 하찮을 수밖에 없는데, 성공담에 길든 우리는 이것을 시시하게 느낀다.
평범한 존재들의 기록도 필요하지 않을까? 지인이 즐겨 보는 유튜브를 인터뷰해서 소개하는 ‘남들의 플레이리스트’(남플리)야말로 사소한 기록의 시작이다. ‘남플리’ 열 번째 연재를 맞아 사소한 셀프 인터뷰 시간을 가져본다.
―요즘 ‘셀카(셀프카메라) 모드’로 촬영하며 출근하는 이유가 뭐야.
“거창하게는 ‘1인칭 다큐멘터리’를 찍는다고 말하는데,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하찮은 실패들과 아주 가끔 찾아오는 성취감을 기록하고 있어. 사실 누구나 시작은 별것 없기에 거절의 연속이잖아. 그럴 때 순간 쭈글해졌다가 ‘그래도 다시 해야지’ 하고 다짐하는 모습의 연속이야.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접하다보니, 그들에 비해 내가 너무 작고 하찮은 거야. 최근엔 내가 이미 하고 있던 일을 규모가 더 큰 회사에 억울하게 뺏겼는데, 그걸 미디어로 지켜보는 것도 힘들더라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나중에 성공했을 때 이 기록을 공유하고 싶어. 이 하찮은 구간을 잘 기록하는 게 이 세상에 용기를 줄 방법이라고 생각했어.”
―가장 용기를 얻었던 ‘하찮은’ 기록이 있다면.
“20대는 삶의 빈 도화지라서 가장 불안하잖아. 그래서 롤모델에 의존하는데, 가장 동경했던 젊은 여자 교수님이 10년 전 취업을 준비하며 흔들리던 모습을 공유해줬을 때 용기를 얻었거든. 그때의 교수님과 비교하면 지금 내 모습이 썩 나쁘지 않구나,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20대 때 젊은 천재로 각광받는 사람들도 사실 그 전에 수년의 단련 시간이 있는데,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는 잘 전달되지 않더라고.
앤디 워홀도 하찮은 기록을 잔뜩 남겨서 세상에 용기를 주고 간 사람 중 하나야. 그는 독백이나 지인들과의 대화도 다 녹음해두는 기록광이라는데, 이 기록이 <앤디 워홀의 철학>이라는 책으로 발전했어. 물론 아직도 그는 신비주의 천재 화가로 포장돼 있긴 하지. 근데 이 책을 읽어보잖아? 이 사람도 결국 변덕스럽고 관심받고 싶어 하는 한낱 인간이더라고. ‘지금의 나라고 나중에 거장이 안 될 건 뭐 있어?’ 하며 용기를 얻게 돼.”
―앞으로 기록으로 뭘 하고 싶어?
“많은 사람이 누가 취재해주지 않아도 지금 나처럼 스스로 ‘1인칭 다큐멘터리’를 찍는 모습을 상상해. 게임 속 성장형 캐릭터를 키우듯 내 인생 캐릭터를 키워가는 느낌으로 말이야. 그걸 여러 형태로 공유하거나 사고팔 수도 있을 거고. 나중에는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아 챗봇 형태로 발전하면, 거장의 올챙이 적 시절과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일기보다 진화한 형태의 장르를 개척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이걸 주목해주는 사람이 없기에 지금도 나 혼자 인터뷰하고 있지만 말이야.”
김수진 컬처디렉터
김수진(인스타그램 @stay_keen_)의 플레이리스트
❶이 아이들은 커서 최고의 춤꾼이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DIGXgslIS8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를 통해 댄서들에게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주는 최정남 피디 같은 기획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댄싱9>부터 춤으로 기획한 프로그램을 꾸준히 했는데, <스우파>에서 사람 이야기를 가장 잘 풀어줬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상에는 댄서들의 어린 시절부터 담아줘서 감동이었고요.
❷ODG 채널
https://www.youtube.com/@odg.studio
오디지? 어린아이가 귀엽게 물어보는 말투에서 따왔다고 해요. 어른에게 당연해진 무언가를 아이의 시선에서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채널입니다. 예전에 이 채널 감독의 영상 수업을 들은 적 있는데, ‘구독자 0’일 때 작성한 기획노트를 갖고 와서 올챙이 시절 어떻게 시작했는지부터 알려주는 수업 방법이 인상 깊었어요.
❸태어나 베이컨을 처음 맛보고 취해버린 아이
https://www.youtube.com/watch?v=XxintVRTMDQ
유튜브에서 우연히 발견한 영상인데요. 첫 도전의 기록이 처절한 실패담만 있는 건 아니겠더라고요. 영상 속 아이처럼 짜릿한 감정도 기록으로 잘 남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