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가자지구 원천 봉쇄 “인질 석방 때까지 수도·전기 차단”
팔 “민간인 학대 최악의 범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모든 인질을 석방할 때까지 가자지구의 물·가스·전기 등 생필품을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220만여명에 이르는 가자지구 주민들은 “피할 곳도, 탈출할 곳도 없다”는 한탄을 쏟아내고 있지만, 전시 비상 내각을 꾸린 이스라엘 정부는 봉쇄 강화를 외치고 있다.
이스라엘은 12일(현지시각) 인질들이 석방될 때까지 가자 봉쇄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에너지부 장관은 12일 엑스(트위터)를 통해 가자지구에 “어떠한 전력 스위치도 작동하지 않을 것이고, 어떠한 물 공급 파이프도 열리지 않을 것이고, 어떠한 연료 트럭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스라엘과 세계에 위협이 되는 하마스가 제거될 때까지 봉쇄를 계속 강화할 것”이라며 “누구도 우리에게 도덕을 설교할 수 없다”고 적었다.
가자지구 에너지청은 이날 성명을 내어 “가자기구에 있는 유일한 발전소가 이날 오후 2시 가동을 멈췄다”고 밝혔다고 알자리라 방송 등이 보도했다. 에너지청은 “발전소 가동 중단으로 가자지구 전체가 암흑에 빠져들고 전력에 의존하는 생활 필수 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해질 것”이라며 “이런 재난 상황은 가자지구 주민 전체를 인도주의적 위기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에너지청은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은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을 집단적으로 학대하는 현대사 최악의 범죄”라며 국제 사회에 “인륜에 반하는 범죄와 집단 학살”을 중단시키기 위한 행동을 촉구했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가자지구와 자국 사이에 분리 장벽을 설치하고 주민들의 통행을 제한해왔다. 지난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엔 주민의 통행을 아예 금지시켰다. 이어 9일에는 전기·가스·수도·식량 공급을 차단하는 등 완전한 봉쇄를 선언했다.
전력 공급이 완전히 중단되면서 병원들이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됐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국경없는 의사회’의 현지 활동 요원 마티아스 케네스는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병원인 알시파 병원의 발전용 연료가 3일치밖에 남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국경없는 의사회가 가자지구에서 운영하는 두개의 병원 모두에서 수술 장비와 항생제 등 의약품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병원의 재건외과 의사인 가산 아부 시타는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가 50명에 이른다며 “우리는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주중으로 의료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구호단체 적신월사는 다른 병원들의 발전기들도 앞으로 5일 내에 연료 부족으로 가동이 중단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사업 기구(UNRWA)의 타마라 알리파이 대변인은 25만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피란처를 찾아 유엔이 세운 학교들로 몰려들고 있다면서 구호 시설은 이미 포화 상태라고 전했다. 현재 유엔에겐 약 18만명에게 12일 동안 식량과 식수를 제공할 여력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구호사업 기구의 현지 부 책임자 제니퍼 오스틴은 “도로가 막히고 전화도 끊겼으며 통신망도 폭격으로 차단돼,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파악하기 어렵다”며 “난민들을 돕기 위해 다른 난민들의 손에 의존하는, 그야말로 전례가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은 학교로 몰려든 주민 가운데 일부는 건물이 폭격으로 무너질 것을 우려해 밖에서 뜬눈으로 지새우는 등 주민들의 공포감이 극에 달했다고 전했다. 4명의 자녀를 둔 야멘 하마드(35)는 “과거에도 전쟁과 급습을 겪으며 살았지만, 이번 전쟁만큼 끔찍한 사태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국경에 가까운 북부 지역에 살던 알라 알카파르네흐(31)는 안전한 곳이 어디에도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지난 7일 임신한 아내와 자신의 아버지 등 가족들과 국경에서 더 먼 해변가 난민 캠프로 갔으나 그곳도 폭격을 당해 또 다시 피란에 나섰다가 10일 폭격으로 모두 숨졌다고 말했다. 그는 “위험을 피했다가 죽음을 맞았다”고 한탄했다.
유엔과 이집트는 인도주의적 지원에 필요한 통로 개방을 촉구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생명을 구하는 데 중요한 필수품 공급이 허용되어야 한다며 “즉각적이고 방해 받지 않는 접근이 당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시민들은 보호받아야 한다. 가자 주민의 대규모 탈출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집트 보안 담당 관리는 가자지구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라파흐 검문소 근처에서 식량과 연료 수송대가 대기하고 있지만,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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