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의 정치사기] 유서깊은 정치권 욕설의 역사
한국 정치권에서 위정자들이 내뱉는 욕설은 참으로 유서가 깊다. 흔히 개XX와 호환되는 욕은 백제시대부터 사용됐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대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욕의 사례는 조선시대부터 조금씩 등장한다.
공식기록도 남아있다. 바로 인조실록이다. 인조는 재위 24년(1646년) 2월 9일 조정에서 신료들을 앞에 두고 1년 전 죽은 첫째 아들인 소현세자를 두고 "개새끼(狗雛) 같은 것을 억지로 임금의 자식이라고 칭하니, 이것이 모욕이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했다. 소현세자의 부인인 강빈을 죽이려는 결정을 신하들이 반대하자, 죽은 아들을 '개새끼'로 칭한 것이다. 당초 인조는 소현세자가 적국인 청나라와 외교에서 뛰어난 역할을 하자 왕권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다. 사관은 그날 임금의 입에서 나온 거친 욕설을 은폐하지 않고 그대로 적었다. 결국 인조는 자신이 한 욕설이 기록으로 남은 유일한 왕이 됐다.
영상기술과 기록문화가 발달한 현대시대에는 더 적나라한 기록들이 많이 남아있다. 참으로 낯 뜨거운 정치권의 자화상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2008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국정감사장에서 카메라 기자를 향해 했던 욕설은 23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당시 유 장관은 "사진 찍지마! XX찍찌마!"라며 적나라한 숫자 욕설을 했는데, 이는 2023년 10월 5일 인사청문회에서도 소환이 됐다. 유 장관은 "당시에도 여러번 (아니라고) 말했지만 계속 XX로 나갔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국민들이 유 장관의 호소에 얼마나 공감할 지 의문이 든다. 공교롭게도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날 유 장관이 있는 자리에서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거론되자 "증거 많다고 장담하고 지x 염x을 하더만 아무렇지도 않다"며 욕설 논란을 일으킨 것은 덤이다.
김 의원이 엄호하던 이 대표 역시 욕설 논란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이 대표는 2014년 성남시장 시절 형수에게 "씨XX"등의 욕설을 퍼부으면서 설전을 벌인 통화 녹취록이 유출되면서 논란을 빚었다. 당시 친모에게 폭행·폭언을 한 친형과 이를 편드는 형수에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동정여론이 생겼지만, 한 번 새겨진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지난 11일 신원식 국방부 장관 임명을 둘러싼 갈등에 파행을 빚은 국회 국방위 감사장에서 여야 간사가 신경전을 벌일 때도 이 대표가 소환됐다. 여당 간사인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신 장관 막말 얘기하는데, 그 얘기하면 우리는 할 얘기가 없겠는가"라며 "성남시장 하면서 형수 쌍욕한 사람도 있다"고 했다.
국회 상임위원장을 역임한 의원이 위원장석에서 상대를 향해 욕설을 한 사례도 있다. 3선까지 하고 정계를 떠난 여상규 전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2019년 10월 7일 당시 법제사법위원장이었던 여 전 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패스트트랙 수사에 관한 자신의 외압성 발언을 두고 김종민 민주당 의원과 설전을 벌이다가 "병X 같은게"라고 했다.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1시간 만에 사과했지만, 욕설은 국회 속기록과 포털에 남아있다.
이튿날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인 이종구 전 자유한국당 의원이 욕설을 하다 카메라에 포착됐다.국감 참고인으로 출석한 중소기업살리기협회장이 검찰의 이마트 고발건 수사에 의문을 제기했는데, 이를 두고 이 전 의원이 "지X, XXX같은 새끼들"이라고 말한 것이 마이크에 담겼다. 이 전 의원은 혼잣말을 한 것이 마이크를 탔다고 변명했다.
같은 당 후보의 보궐선거 지원유세를 하면서 욕설 표현을 사용한 경우도 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10일 김태우 후보의 지원유세에서 "정말로 XX하고 자빠졌죠"라며 웃었다. 현장 영상을 보면 유세차 앞에 있던 한 시민이 "XX하고 자빠졌네. 개XX"라고 욕설을 던진 데 대해, 유머로 승화시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만 정치인이 유권자 앞에서 욕설 표현을 쓰는 게 적절하다고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전에 따르면 욕설은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표현'이다. 다만 보통사람의 욕설은 경우에 따라 스트레스의 해소 방식이나 친근감의 표현일 수 있다. 최근 국립국어원이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도 22%가 '친근감의 표현'으로 욕설을 쓰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보통사람의 욕설과 정치인의 욕설은 다르다. 대중들에게 일거수 일투족이 노출되는 정치인의 욕설은 자신의 얕은 소양이나 천박한 인식을 드러내는 계기로 작용한다. 보통사람이 술 마시며 특정 정치인을 육두문자로 욕해도 정치인이 이들을 비판할 순 없지만, 정치인이 이른바 '쌍욕'을 내뱉으면 구설수를 탄다. 게다가 그 흔적은 평생을 따라다닌다.
정치인들은 신경쓰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다른 의원이 욕설로 곤욕을 치러도, 반면교사하지 않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이 정도면 의도적이다. 오죽했으면 "정치인은 자신의 부고빼고는 언론에 나오는 게 좋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결국 정치인들 사이엔 욕설이 전염병처럼 퍼지고, 보통사람들은 이를 손가락질한다. 욕설은 또 다른 욕설을 부르고 새로운 논란을 배태하는 씁쓸한 현실이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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