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크 "일본 탈취 고종황제 내탕금 되찾자"…환수 캠페인 전개

왕길환 2023. 10. 1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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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1908년 일본이 탈취한 고종황제의 내탕금(內帑金)에 대해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고 이를 다시 찾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한다고 12일 밝혔다.

헐버트 박사는 일본의 내탕금 불법 인출 관련 서류들을 모아 '고종황제 예치금 진상 보고서'를 작성해 자신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후대가 예치금을 꼭 찾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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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 내탕금을 다시 환수하자는 내용의 포스터 [반크 제공]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1908년 일본이 탈취한 고종황제의 내탕금(內帑金)에 대해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고 이를 다시 찾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한다고 12일 밝혔다.

내탕금은 임금 및 왕실이 오늘날의 금고와 같은 내탕고에 재물을 넣어 두고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사유재산을 말한다.

반크에 따르면 고종황제는 서울 주재 독일 공사관의 주선으로, 1903년과 1904년 금괴·엔화 등 자신의 내탕금을 중국 상하이 덕화은행에 예치했다. 이 은행장은 직접 고종 황제의 지시에 의해서만 예치금 인출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영수증을 작성해 전달했다.

일본의 감시를 받던 고종 황제는 직접 예치금을 인출할 수 없자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1863~1949년) 박사에게 위임장과 예치금 관련 서류를 주면서 내탕금을 찾아 나라를 위해 사용하라는 밀명을 전달했다.

헐버트 박사는 밀명대로 상하이에 가서 내탕금을 찾아 독립운동가들을 돕고, 멕시코에서 고생하는 한국인들을 다시 데려오고자 했다.

하지만 고종황제가 예치한 내탕금은 이미 1년 전 일본이 찾아갔다는 사실을 헐버트 박사는 뒤늦게 알았다.

일본은 1907년 고종황제가 네덜란드 헤이그 특사의 여비를 마련해 줬다고 판단해 비밀 자금에 대해 탐문했고, 내탕금의 존재를 알았다고 한다.

일본은 1908년 4월 독일 공사에게 '고종황제의 어새가 찍힌 인출 청구서가 확보됐으니 내탕금을 통감부로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이 청구서를 받은 덕화은행은 고종 황제의 확인 절차 없이 일본이 조작한 서류만 확인한 채 예치금을 2차례 나눠서 지급했다.

헐버트 박사는 일본의 내탕금 불법 인출 관련 서류들을 모아 '고종황제 예치금 진상 보고서'를 작성해 자신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후대가 예치금을 꼭 찾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이 보고서는 "도둑맞은 내탕금을 이자와 함께 꼭 돌려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1948년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이 대통령은 이 보고서를 외무부(외교부)에 전달했지만,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조사 과정 및 결과, 후속 조치에 관한 기록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반크는 헐버트 박사가 되찾고자 한 고종황제의 내탕금에 대해 알리고 환수 조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포스터를 제작해 소셜미디어(SNS)에서 알리는 동시에 국민 정책 사이트인 울림(www.woollimkorea.net)과 글로벌 청원 사이트인 브릿지 아시아(www.bridgeasia.net)에 청원을 게시했다.

포스터에는 1909년 10월 20일 고종황제가 헐버트 박사에게 내린 "상하이에 있는 덕화은행에 예치한 내탕금을 찾아 나라를 위해 요긴하게 써야 한다"라는 고종 황제의 친필 위임장 내용이 담겨있다.

ghw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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