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견제' 공급망 이슈 놓고 국제기구 내 복잡한 역학관계[세종백블]
회원국 간 특정 이슈 놓고 입장차 극명한 대조 보이기도
[헤럴드경제(마라케시)=이태형 기자]‘적색의 도시’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연차총회장은 각 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정글’과 같다.
대표적인 이슈가 글로벌 공급망 강화 파트너십(Resilient and Inclusive Supply-chain Enhancement Partnership, RISE) 출범이다.
RISE는 광물채굴, 가공, 상품제조 등 청정에너지 품목 공급망 전과정에서의 중·저소득국 역할을 확대해 개도국에는 성장 기회를 부여하고, 글로벌 공급망 탄력성을 강화하려는 파트너십이다.
지금까지 자원 채굴을 중심으로 한 신흥국이 가공·정련에서 조립 등 수익성이 높은 공정도 담당할 수 있도록 기술과 자금면에서 지원한다는 것이 RISE의 뼈대이다.
문제는 광물채굴이 일부 국가 중심으로 이뤄지고, 이후 가공 등의 과정은 특정국가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특히 현재 전기차(EV) 등에 사용하는 희토류와 리튬 등의 가공은 전 세계가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 재무부에 따르면 리튬 채굴의 중국 점유율은 10%에서 가공정련은 55%에 치솟는다. 배터리 제조 점유율은 75%까지 차지한다
태양광 패널도 기판은 90% 이상을 중국에서 제조한다.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수출 제한 등을 받으면서 타 국가에서 공급 위기가 일어날 위험이 높아진 상태다.
이에 WB와 주요 7개국(G7) 등을 중심으로 공급망 강화를 위해 RISE는 개도국의 광물 채굴 등을 지원하는 다자신탁기금인 EGPS(Extractives Global Programmatic Support) 산하에 설치됐다.
G7 정상회의 후속조치의 하나로 WB, G7이 추진하던 RISE에 올해 G7 의장국인 일본의 2500만달러 등 총 4000만달러의 자금이 모였다. 한국은 일본의 참여 요청으로 300만달러를 공여키로 했다.
개도국에 성장 기회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경제 사다리’를 놓아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사실상 독점적인 지배력을 가진 중국이 이에 반대하면서 RISE 참여국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1일 ‘일영한, 세계은행과 탈중국 의존을 염두에 둔 RISE 출범’이라는 제목의 인터넷판 기사를 출고했다.
신문은 “5월 열린 G7 히로시마 정상회의의 정상선언에서 중국과의 ‘디커플링’이 아니라 ‘디리스킹’을 지향할 방침을 명기했다”며 “경제안보의 관점에서 특정 국가로의 생산체제의 편향을 해소하고 중요물자를 안정적으로 조달한다”고 RISE 출범의 의미를 소개했다. ‘일부 국가’, ‘특정 국가’라는 표현에 더해 ‘중국’을 직접 언급, RISE 출범이 중국을 타깃으로 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편 이날 오후에는 10여개 한국 언론사로 구성된 마라케시공동취재단이 WB의 RISE 담당국장과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니혼게이자이신문의 기사가 노출되자 중국을 의식한 WB가 한국 언론에서도 비슷한 내용으로 기사화할 것으로 보고 인터뷰를 돌연 취소했다. 약속 시간을 불과 10분을 남겨놓은 시점에서다.
현장에 있던 기획재정부와 WB 한국측 관계자들이 조율에 나섰지만 결국 인터뷰는 취소되고 WB 고위 관계자는 사과문을 보내왔다.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due to unforeseen circumstances)’ 인터뷰 참여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세계 경제의 18%를 차지하는 중국의 IMF 쿼터는 6.08%로, 제3의 경제국(5.4%)인 일본의 6.14%보다 낮지만, 미국, 일본에 이어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인터뷰 취소가 중국을 의식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들 국제기구로선 큰 지분을 가진 중국과의 관계를 해치고 싶지 않은 유인이 작지 않다. 현안에 대한 국가간 엇갈린 입장차로 인해 국제기구 내부 논의와 의사결정과정에서의 역학관계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세종백블]은 세종 상주 기자가 정부에서 발표한 정책에 대한 백브리핑(비공식 브리핑)은 물론, 정책의 행간에 담긴 의미, 관가의 뒷이야기를 전하는 연재물입니다. 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공무원들의 소소한 소식까지 전함으로써 독자에게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전달합니다.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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