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회가 식스타임즈?...황당한 한식 메뉴판

2023. 10. 1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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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파오차이, 김밥-스시, 곰탕-베어탕
국내외 한식당 표기 오역 사례 수두룩
“K-푸드 인기 시작, 명칭부터 바로잡아야”
국내 식당에서 ‘파오차이(泡菜)’로 표기된 김치만두 메뉴판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 페이스북 캡처]

‘여섯 번(Six Times)’.

분명 한식 메뉴판인데 음식이 아닌 ‘여섯 번’이라는 횟수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 음식은 숫자와 전혀 관련이 없다. 쫄깃한 식감에 시원한 배 맛이 일품인, 그저 맛있기만 한 ‘육회’다. 한식 표기 오역의 대표 사례다.

황당한 육회의 표기는 시작에 불과하다. 돼지주물럭은 주물럭을 마사지로 번역한 ‘Massage Pork’로, 훈제오리는 ‘Smoking Duck’이다. 매생이 전복죽은 갑자기 삶(生)이 언급된 ‘Every life is ruined’로, 방어구이는 방어 수단을 취하는 ‘Fried Defence’로 적힌다. 곰탕은 예상대로 곰이 등장하는 ‘Bear Soup’다. 모두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유행어가 절로 외쳐지는 황당 사례들이다.

특히 ‘파오차이(泡菜)’로 표기된 김치는 가장 시급한 수정이 필요한 분야다. 중국이 김치 원조에 대해 중국 쓰촨성 지역의 채소절임 음식을 뜻하는 ‘파오차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에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는 김치의 중국어 번역을 ‘신치(辛奇)’로 명시했다.

한국 홍보 전문가로 알려진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5월 페이스북을 통해 “김치찌개, 김치만두 등 김치가 들어간 음식을 보면 아직까지 김치를 ‘파오차이’로 번역한 곳이 많았는데, 이런 상황은 중국에 빌미를 제공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당시 서 교수가 표기를 지적한 곳은 해외가 아닌 우리나라 식당이었으며, 국내 유명 베이커리에서도 김치전 모양의 메뉴에 파오차이를 표기했다.

사실 한식은 중식이나 일식에 비해 해외에서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미국의 경우 아시안 음식점 중 대다수가 중식당과 일식당이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5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 아시아 음식점 중 가장 많은 곳은 중식당(39%)이며, 일식당(28%)이 두 번째를 차지한다. 뒤를 이어 ▷태국 식당(11%) ▷인도 식당(7%) ▷베트남 식당(7%) 순이었다. 한식당(6%)은 이들 식당보다도 비중이 낮았다.

미국 뉴욕에서 판매 중인 떡볶이와 김밥 [aT 뉴욕지사 제공]

최근 들어 K-푸드의 인기를 다룬 현지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있으나, 이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현재 미국에서는 한식 메뉴명을 정확히 모르는 이들이 더 많다. 최근 방송된 JTBC 예능 ‘한국인의 식판’에서도 미국인이 김밥을 먹으면서 이를 ‘스시’라고 표현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유럽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국의 두부와 된장 명칭은 몰라도 일본의 ‘토푸(tofu)’와 ‘미소(miso)’는 알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육회가 ‘Six Times’로 오역되고, 김밥이 ‘스시’의 한 종류로 불려지는 일은 단순히 웃어 넘길 수 없는 문제다. 현재는 한류 덕분에 이제 인기를 끌기 시작한 K-푸드가 자리를 잡아가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aT 뉴욕지사 관계자는 “미국에서 한식은 코로나 이후 K-콘텐츠의 영향력,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한 레시피 전파, 건강한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최근 전성기를 맞이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외국인이 처음 접하는 한식 메뉴판에서 황당한 표기부터 시급히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행히 8월에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이 한식명을 영어·일본어·중국어로 번역한 ‘한식메뉴 외국어표기법 길라잡이 800선’을 제작해 보급했다. 현재 한식포털 사이트에서 ‘순두부’ 등 한식 메뉴를 검색하면 정확한 외국어 표기명이 나온다.

한식진흥원 관계자는 “국내외 한식당에 방문하는 외국인이 잘못된 외국어 메뉴명으로 혼란을 겪는 일을 방지하고, 정확한 한식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서울시도 나섰다. 서울시는 음식점 메뉴판에서 김치의 중국어 표기를 ‘파오차이’에서 ‘신치’로 바꿔쓰도록 정비에 나선다고 9월 27일 밝혔다. 중국의 한국 단체관광 허용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나온 조치다.

서경덕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해외 관광객이 한국으로 대거 몰려오고 있다. 한식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다함께 관심을 갖고 올바른 표기를 위해 힘을 모아야만 할 때”라고 당부했다.

한식진흥원 관계자도 “국내외 한식당 2000여 개에 직접 제작한 올바른 외국어 메뉴판을 보급했다. 매년 ‘외국어 표기법 길라잡이’를 개정 및 발간하고, 이를 한식포털을 통해 공유하고 있으므로 식당 업주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육성연 기자

gorgeou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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