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發 중국 경제 논쟁과 풍선 효과 [여한구 글로벌 호라이즌]
‘경제 코로나’에 걸린 중국?
지금 세계 정치·경제중심지인 미국 워싱턴DC에서는 중국 경제의 위기에 관한 논쟁이 뜨겁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장인 애덤 포젠(Adam Posen)은 최근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지(誌)에 발표한 ‘중국 경제 기적의 종말(The end of China’s Economic Miracle)’이라는 글을 통해 이 논쟁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였다.
중국 경제 관련 상반기 지표들이 발표되면서 많은 전문가는 애초 예상에 못 미치는 소비, 투자, 수출입 등 경제지표 분석과 함께 중국 경제가 언제 바닥을 치고 회복할지 기술적 분석에 초점을 맞췄다.
이에 반해 포젠은 권위주의 정치 체제하의 극단적 ‘제로 코로나’ 정책을 거치면서 중국 사회의 저변에서 일어난 개개인의 소비심리와 투자심리의 변화가 투영된 정치·경제 분석을 통해 중국 경제의 역동성과 성장 가능성이 ‘코로나 이전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국면(Point of No Return)에 들어섰다’는, 다소 도발적인 분석을 통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1980년대 이래 ‘개인이나 기업이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한, 당도 개인의 경제활동 자유에 관여하지 않는다(No Politics, No Problem)’는 암묵적 원칙을 통해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며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구가해 왔는데 2013년 시진핑 주석 집권 후 이 원칙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초기에 반부패 척결을 내걸며 정적(政敵)인 보시라이(薄熙來)를 제거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2020년 들어 알리바바 창업주인 잭 마(Jack Ma)가 정부 정책을 비판한 이후 갑작스레 소속 기업 앤트그룹(Ant Group)의 상장(IPO)이 무산되고 공식석상에서 사라진 것이 기업들에 불안감을 주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도 코로나19 기간을 거치면서 몇 시간 만에 도시 전체가 폐쇄되기도 하고 갑자기 개인의 비즈니스가 보상 없이 문을 닫아야 하며 가족과 떨어져 수주 간 격리되기도 했다. 2022년 말에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다 일반 시민이 시위에 나서자 갑작스레 유턴(U턴)해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포기한 것 등 당의 무한 권력과 자의적 조치가 개개인의 경제활동과 자유를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제약하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이렇게 사회·경제 전반의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커지다 보니 개개인은 소비보다는 현금을 보유하거나 은행에 저축하는 것을 선호하고, 기업들도 당장 투자보다는 지켜보자는 심리가 완연해지면서 GDP에서 차지하는 은행 저축의 비중이 50% 이상 증가하고 내구재 소비도 2015년 대비 3분의 1가량 감소했으며 투자 역시 2015년 1/4분기 대비 3분의 2가량 감소하며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에도 약 25% 감소했다. 개인 단위에서의 경제적 결정과 행위가 모여 이렇게 거시경제에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포젠은 이러한 현상을 소위 중국이 ‘경제적 장기 코로나(Economic Long COVID)’에 걸렸다고 표현하면서 현재 중국 경제의 문제는 각종 경제지표 수치가 몇 퍼센트포인트(%포인트) 오르고 내리는 문제가 아니라 중국의 권위주의 정치 체제와 리더십, 그에 따른 경제 주체들의 경제심리와 행위가 근본적으로 변함에 따른 현상, 즉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가 설파한 경제 주체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아니다. 중국 경제를 과소평가하지 마라
흥미롭게도 포젠의 주장에 대한 반론은 몇 주 내에 같은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중국 경제의 대가인 니컬러스 라디(Nickolas Lardy)에게서 나왔다. 중국의 개방 전부터 50여년을 중국 경제 연구에 매진해 왔던 그는 중국 경제가 예전과 같은 두 자릿수 고속성장을 구가하지는 않겠지만 현재의 경제지표로 볼 때 중국 경제의 기적이 끝났다고 하기에는 시기상조이거나 오류라고 반박하며 다음의 주장을 근거로 내세웠다.
우선 2023년 전반기의 소득은 50% 이상이 증가했고, 은행 저축이 늘기는 했으나 가계소득에서 은행에 저축하는 비중은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거시지표를 봐도 1인당 가처분소득은 6.5%가 증가했고, 1인당 소비는 8.4%로 더 크게 증가해 소비심리가 크게 타격을 입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 올해 7월 소비자물가가 0.3% 감소한 것에 대해 중국 경제의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우려하지만 이는 전년 동기에 식량과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한 것에 따른 기저 효과라는 것이다. 몇 품목을 제외하면 오히려 핵심 소비자물가는 0.8%가 증가했기에 이를 가지고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투자심리 위축을 둘러싼 시각에 대해서도 코로나19 기간에 개개인에게 재정 지원을 했던 미국 등 서방과 달리 중국은 개인에 대한 재정 지원 대신 기업들에 세제 혜택을 주며 고용을 유지토록 하는 정책을 폈고 코로나 와중에도 계속 생산을 했기에 재고가 쌓여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현 상황에서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지만 쌓였던 재고가 점차 소진되면 투자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코로나 이후 중국 경제 회복이 예상보다 더디고 약하지만 아직 근본적으로 중국 경제의 기적이 끝났다고 단언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것이 결론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수석경제평론가인 마틴 울프(Martin Wolf)도 아직 ‘피크 차이나(Peak China)’로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주장하며, 한국의 사례와 비교한다. 한국은 1960년대 초기에 1인당 GDP가 미국의 9% 수준이었으나 1988년에는 현재 중국의 1인당 GDP 수준인 28%에 도달했고, 그 후에도 성장을 계속해 2007년에는 57%, 2022년에는 70% 수준에 도달했는데 ‘과연 중국도 한국과 같은 경로를 밟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해 그는 중국이 왜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직접적 논거보다는 ‘한국도 해냈는데 왜 중국이 못하겠는가’라는 간접적 논거로 결론을 대신한다. 한국은 1982년의 채무위기와 1997년의 아시아 금융위기를 잘 극복하며, 1950년대에 1인당 GDP가 일본의 3분의 1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랐다. 거대한 중국 경제의 잠재력을 고려할 때, 특히 해마다 140만명의 엔지니어 전공 대학생이 쏟아지고 세계에서 특허권 출원이 압도적으로 가장 많아 기업가정신이 활발하며 배터리와 전기차, IT 등에서 세계를 리드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 기적이 끝났다고 보는 것은 시기상조이자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이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을 극복하고 지금의 기술과 혁신 주도의 선진 경제로 도약할 수 있었던 데에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뼈 아픈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기업, 금융, 노동, 공공 등 전 분야에 걸친 구조조정과 개개인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교훈을 울프가 현재의 중국 경제 상황에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현장에서 만난 투자가들의 시각
전설적인 미국의 헤지펀드투자가 밀켄이 설립한 ‘밀켄 아시아 서밋(Milken Asia Summit 2023)’ 참석차 지난달 중순 싱가포르에서 만났던 다양한 기관투자가와 벤처캐피털, 사모펀드 등의 주된 관심도 중국 경제 전망이었으나 워싱턴의 싱크탱커들과는 다소 온도 차가 있었다. 우선, 아·태 지역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투자가들의 중국 경제에 대한 시각은 그리 비관적이지 않았다. 그동안 중국 경제가 투자와 부동산 분야의 성장에 의존해 양적으로 성장해온 것이 이번의 구조적 위기를 초래했다고 하면, 향후에는 소비 위주의 경제로 전환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중국 경제의 경기순환적·구조적 문제로 투자심리가 냉각된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과 기업가정신, 2030년까지 약 10억명의 중산층 소비자의 부상 전망 및 고급화 추세 등을 고려할 때 언제든지 분위기는 전환될 수 있다는 시각들이었다.
지난 8월 발표한 미국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털 등의 핵심 기술 분야 대(對)중국 투자 금지 조치 등 미-중 지정학적 리스크는 분명 첨단 기술 분야의 대중 투자를 위축시키며 글로벌 투자의 흐름에 큰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세쿼이아캐피털(Sequoia Capital)이나 GGV캐피털 등 발 빠른 일부 투자가는 중국 비즈니스를 다른 글로벌 비즈니스와 분리(insulate)하면서 중국 시장과 기타 글로벌 시장을 다 같이 가져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최근 글로벌 투자회사와 컨설팅회사 등이 지정학적 리스크 관리를 위해 미국 등 전반적 글로벌 비즈니스와는 완전히 분리, 차단해 중국 시장은 법, 자금, 인사, 데이터 관리 등에서 독립적인 형태로 가져가려는 추세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추세는 미-중 갈등이 중국 기업과 투자가들에게 중국 내에 안주하기보다는 오히려 미국 이외의 동남아나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해외 비즈니스를 적극적으로 넓혀가는 ‘중국 기업들의 글로벌화(China Going Global)’ 가속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었다.
풍선과도 같은 글로벌 경제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삐져나오게 마련이다. 위기에도 항상 기회는 있고, 패자가 있으면 승자도 있게 마련이다. 중국 경제에 대한 세계 최고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리지만 중요한 것은 그 위기에도 기회를 포착해내는 노력이다. 중국 경제의 위기는 주변국들에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도 있다. 전 세계 기업이 미국 기업과 비즈니스를 하려면 중국 관련 거래처를 꺼리고, 중국 기업과 비즈니스를 하려면 미국 관련 거래처를 꺼리다 보니 양쪽에 다 통할 수 있는 제3의 거래처를 찾고 있다. 미국 등 서방에서 중국으로 향하던 대부분의 투자가 길을 잃으니 중국을 대신할 ‘안전한’ 투자와 비즈니스 파트너를 물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세계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이 일본을 방문해 종합상사 등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고 하자 글로벌 투자가들이 일본으로 몰리고 있다. 또한 중국, 홍콩 등의 기업이 싱가포르로 이전하며 집값이 크게 오르고 있다. 애플, 폭스콘 등 글로벌 기업이 중국에 집중된 공급망을 ‘차이나 플러스원(China Plus One)’으로 다변화하면서 동남아, 인도, 멕시코 등이 새로운 생산기지로 주목받고 있다.
북아프리카의 잊힌 나라이던 모로코에 중국, 한국 등 배터리 관련 기업의 투자가 갑자기 몰리고 있다. 20여년 전에 맺은 미국·모로코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해 모로코산이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국 경제의 위기로 촉발된 이 기회 요인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문할 때다. 특히 미국 정부의 핵심 기술 대중국 투자 금지 조치에 따라 떠오르는 아시아 시장에서의 투자처를 잃은 실리콘밸리의 사모펀드나 벤처투자가들이 상대적으로 한국의 스타트업과 혁신 기술에 눈을 돌릴 여유가 생긴 만큼 이 기회를 적극 활용해 한미 간 새로운 글로벌 혁신 기술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스라엘과 한국 두 나라 모두 스타트업이 강한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이스라엘 창업가들은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타깃으로, 한국 창업가들은 국내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데에 차이가 있다. 미국의 기술 수출 통제 정책 방향인 ‘좁은 마당, 높은 담장(small yard, high fence)’, 즉 국가안보에 관련되는 기술만 좁게, 그리고 강하게 통제한다는 정책은 최소 유지 또는 확대될 것이고, 중국도 서방의 기술에 의존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디리스킹(de-risking)’을 지속 강화할 것으로 여겨지는 만큼 우리 기업들도 첨단 기술 분야의 대중 리스크를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와 무관한 일반 분야는 지정학과는 분리(insulate)해 ‘중국에 특화(C4C·China for China)’하며 ‘중국 시장을 계속 공략’하는 이원화 전략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향후 거대한 중산층의 소비 위주 경제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중국 내수시장에서 유망한 헬스케어나 뷰티, 식료품 등 소비재와 브랜드 제품 분야에서는 시장의 기회를 최대한 살려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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