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김지훈, "장발머리? 필요하면 주저없이 삭발할 것"[TEN인터뷰]
[텐아시아=이하늘 기자]
한때, 주말드라마에서 '사람 냄새'나는 선한 얼굴로 대중 앞에 섰던 배우 김지훈은 지금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드라마 '악의 꽃'(2020)에서 눈을 가리는 길게 늘어뜨린 장발머리의 연쇄살인마 백희성 역을 맡으며 배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김지훈. 넷플릭스 영화 '발레리나'의 최프로 역시 혀를 내두를만한 나쁜 놈이지만, 김지훈의 섬뜩한 얼굴로 몰입감을 높였다.
그간 배우로서 꾸준히 걸어왔던 방향성에서 이탈해 새로운 길에 접어드는 것이 쉽지는 않은 선택이었을 터. 그렇기에 배우 김지훈의 얼굴에서 다른 매력을 더 찾아보고픈 마음이 든다. 다시 한번 첫걸음을 내딛고 차분히 걸어가겠다는 김지훈의 용기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바다.
'발레리나'는 경호원 출신 ‘옥주’(전종서)가 소중한 친구 '민희'(박유림)를 죽음으로 몰아간 '최프로'(김지훈)를 쫓으며 펼치는 아름답고 무자비한 감성 액션 복수극. 배우 김지훈은 '옥주'가 목숨 걸고 쫓는 복수의 대상 '최프로' 역을 맡았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한국영화의 오늘-스폐셜 프리미어' 부문에 공식 초청된 '발레리나'를 통해 처음으로 부국제를 방문했다는 김지훈. 그는 "부국제를 처음 가봤다. 어떻게 진행되는지 몰랐다.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과 마주하며 느끼는 에너지가 좋더라. 처음이었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라고 이야기했다.
극 중에서 김지훈이 연기하는 최프로는 용서해줄 수 없는 극악무도한 빌런이다. 용서하기 어려운 나쁜 놈을 연기하는 것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고. 김지훈은 "아무래도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였다. 회사에서는 신중하게 결정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감독님과 종서 배우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필모에 흑역사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핸디캡이 있는 역할이지만 사람들 앞에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주변에서 최프로 캐릭터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냐는 질문에 김지훈은 "캐릭터의 나쁜 부분을 나한테 이입시켜주시는 분은 없는 것 같다. 좋은 결과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아무래도 사람들이 혐오할 만한 악행을 벌이는 빌런이지 않나. 너무 끔찍하게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최프로를 조금은 멋있게 표현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이충현 감독과 최프로 캐릭터에 대해 따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없냐는 질문에 김지훈은 "시나리오상에서 너무 명확했다. 나쁜 짓을 한 것에 대한 응징을 제대로 받지 않나"라고 이야기했다.
'발레리나'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닌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이야기도 얹어져 있다. 여성 서사 안에서 악의 한 축을 담당하는 빌런을 맡은 김지훈은 평소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진 지점들을 설명했다. 김지훈은 "사회 문제는 아무래도 나이가 어느 정도 차면서 뉴스를 아저씨처럼 많이 보게 되더라. 이충현 감독님께서 익히 알고 있는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영화를 만드신 것도 알고 있었다. 떠올리는 인물들도 있어서 걱정되기는 했다. 100이면 100 다 싫어할 사람이니까. 영화적으로 감독님께 믿음이 있었다. 배우 김지훈을 망가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라고 덧붙였다.
'발레리나'를 통해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이충현 감독과 작품을 함께 한 소감에 관해 김지훈은 당시를 회상했다. 김지훈은 "(이충현 감독의 전작) '몸값' 같은 경우는 순간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감독님은) 종서 배우를 통해서 작품 하기 전에 뵀던 적이 있다. 처음에는 대학생 같은 느낌이 있었다. 보통 감독님이라고 하면, 심오한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연습생 커플 같은 느낌이었다. 풋풋하고 귀여운 느낌이 있더라"라고 말했다.
김지훈은 넷플릭스 '종이의 집'에 이어 '발레리나'에서 전종서와 또다시 호흡을 맞췄다. 김지훈은 "종서 배우는 늘 어려운 사람이다. 나랑 많이 다른 사람이다. 그걸 처음에는 이해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이해하지 말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너무 훌륭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사람은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타입이라면, 종서 씨 같은 경우는 예술가 같은 느낌이다"라고 이야기했다.
3년간 공개 연애를 하는 이충현 감독과 배우 전종서를 현장에서 보면서 너무 귀여웠다고 언급한 김지훈. 그는 "조심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연기를 할 때는 종서 배우와 있고, 연기를 안 할 때는 모니터 뒤에 감독님과 있지 않나. 하루는 둘이 가까이 안 있는 것 같은 날이 있더라. 감독님께 따로 여쭤봤더니, '싸워서 3일째 말을 안 하는 상태'라고 하더라. 사실 촬영장에서 이 부분이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귀여웠던 것 같다. 둘의 마음이 너무 애틋하게 느껴져서 부러움을 느낄 때도 있었다"라고 비하인드를 밝혔다.
기존에 젠틀하고 사람 좋은 미소로 대중들에게 친숙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보여주던 김지훈은 장발을 하면서 이미지 변신에 완벽 성공했다. 김지훈은 "사실 머리는 삭발도 주저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명분이 주어지면"이라고 말했다. 주변에서 장발 머리의 김지훈에게 '잘 어울린다'는 반응이 많은 상황. 이에 "처음에 머리가 길었을 때, 기를 생각이 없었다. 방치해서 기르게 된 것이다. '악의 꽃'에서 긴 캐릭터로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나게 돼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예상하지 않은 반응이었는데, 기분이 좋았다"라고 답했다.
'발레리나'의 최프로 역을 맡으며 비주얼적으로도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김지훈은 이번에도 장발에 파묻힌 섬뜩한 표정을 과감하게 보여준다. 김지훈은 "사실 몸을 노출하는 장면에서는 체지방을 무조건 10퍼센트 아래로 만들어야 한다. 다이어트의 경험치가 쌓이다 보니,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어렵지는 않은 부분이었다. 나는 입금 후와 입금 전이 다르지 않은 배우다. 일을 안 한다고 나태하지 않다"라며 이번 캐릭터를 위해서 준비한 지점을 설명했다.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드라마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영화와는 아직 크게 인연이 없던 김지훈은 "늘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 배우로서 전략이 없이 큰 계획이 없이 눈앞에 주어지는 것들에만 최선을 다한 것 같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나한테 그런 이미지가 씌워져 있더라.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방향을 수정하고 수정한다고 해서 갑자기 나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은 아니니까. 지금은 방향 전환에 성공해서 내가 가고 싶은 방향에 비슷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작품 활동의 전환점에 된 첫 번째 지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표면적으로는 '악의 꽃'인데 이전에 '바벨'이 있었다. 임팩트 줘야 하는 역할이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보니 일단 도전을 한 것이다. 그때부터가 첫걸음이었다. '악의 꽃'의 김철규 감독님과 '바벨'을 통해서 김지훈 배우의 모습을 접한 뒤에 맡겨보자는 생각을 하셨다고 말씀하셨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은 무엇이냐고 묻자 김지훈은 "뭘 정해놓은 것은 없다. 주어지는 작품 중에서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역할이라면 해보고 싶다"라고 답했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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