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존’ 한국 변하고 빗장 푸는 중국…아시아 블록체인 시장 활황[비트코인 A to Z]
아시아 최대 블록체인 콘퍼런스 코리아블록체인위크(KBW)와 토큰 2049가 지난 9월 각각 한국과 싱가포르에서 개최됐다. 현장에는 각국에서 온 창업자들과 개발자·대기업·투자사·미디어·규제 관계자 등이 자리를 채웠다.
본 행사 외에도 수십 가지의 사이드 이벤트와 파티가 열렸다. 블록체인업계 종사자들이 대체로 나이가 젊고 외부에 보여주는 것을 중요시해 그런 것일까. 블록체인업계는 콘퍼런스와 파티 만큼은 그 어떤 업계보다 화려하게 하는 듯하다.
필자는 본 행사는 가지 않았지만 다양한 사이드 이벤트와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업계 내 다양한 이해관계인들을 만나 그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필자는 5년 넘게 각종 블록체인 콘퍼런스에 참석했지만 이번 KBW와 토큰 2049만큼 글로벌 블록체인업계 관계자들이 아시아 시장에 대해 관심을 표방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에 대한 후기를 남겨본다.
크립토에 대한 한국 리테일의 관심은 유명하다. 스테이블 코인 시장이 거의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스테이블 코인 페어가 있지만 원화 대비 거래량은 미미한 수준이다) 업비트를 비롯한 한국 주요 거래소들의 거래량은 전 세계에서 높은 수준에 속한다.
또한 비트코인이나 이더가 아닌 다른 알트코인이나 가상자산공개(ICO)에 대한 관심 역시 남다르다. 이에 따라 코인을 발행하는 해외 블록체인 재단 등은 한국이 반드시 공략해야 하는 시장 중 하나다. 다만 한국의 크립토 경제 활동은 온체인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중앙화 거래소에서 발생하는 투기적 트레이딩이다. 한국이 ‘설거지 존(리테일을 대상으로 코인을 덤핑하는 것을 뜻함)’이라고 불리며 코인을 홍보하는 세력이나 사기꾼들이 활개를 치기 쉬운 환경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도 과거 대비 개선된 점이 있다면 한국 대기업들의 약진이다. 전 세계를 두고 비교해 봐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대기업이 이토록 적극적으로 블록체인 사업을 추진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 코인을 발행한 게임회사가 대표적이고 롯데·신세계 같은 소비재 회사들도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을 통해 블록체인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금융회사들은 토큰 증권 사업을 활발히 모색하며 신시장을 개척하려는 양상이다. 이러한 한국 대기업들과 대화하고 싶어하는 해외 블록체인 업체들이 상당히 많아졌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일본, 문호 여는 중국
일본 정부는 최근 정부 주도로 웹3·크립토 시장을 전면적으로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크립토 과세 조정, 벤처 투자 허용 등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게다가 오아시스·아스타 같은 로컬 블록체인과 소니·DMM·사이버에이전트·반다이남코 등 대기업들도 크립토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필자는 일본 스타트업에 대해서는 제한적인 글로벌 확작성의 문제를 이유로 그렇게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일본 대기업들이 보유한 지식재산권(IP)과 게임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 기업들의 움직임은 한국의 2~3년 전과 유사하다.
크립토에 대해 시종일관 부정적이었던 중국은 홍콩을 통해 우회적으로 이를 수용하고 있다. 그 결과 크립토 인프라를 개발하고 금융 투자 서비스를 제공하는 해시키그룹은 최근 홍콩에서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거래소 서비스를 개시했다. 또한 텐센트·알리바바와 같은 대형 인터넷 기업들도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파트너십·투자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크립토 시장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사실 글로벌 크립토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상은 상당한데 (표면적인 규제에도 불구하고) 주요 채굴자와 거래소 관계자들은 대체로 중국인이고 중국인들끼리의 이너서클 또한 상당한 편이다. 게다가 서비스와 인프라를 개발하는 역량 또한 뛰어난 편이다. 홍콩을 통해 거대 자본이 크립토에 유입된다면 크립토 자본 시장에서 홍콩과 중국이 차지하는 위상 또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싱가포르는 자본 시장의 총아다. 투자사들이 특히 많고 글로벌 금융 투자 서비스 업체들의 아시아 본사 또한 싱가포르에 있는 경우가 많다. 흥미로운 점은 멀티 자산군을 취급하는 패밀리 오피스에서도 크립토를 주요한 자산군으로 인정하고 관련 팀을 셋업하거나 분사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통 금융 기업에서도 크립토 투자에 관심을 가지고 공동 투자하거나 분사하는 곳도 있다. 대형 금융 그룹 UOB와 크립토 벤처캐피털(VC) 시그넘캐피털이 공동 투자하고 있는 것과 테마섹에서 분사한 크립토 VC 슈퍼스크립트가 해당 사례다.
사용자 가장 많은 곳은 동남아 시장
동남아는 유저들이 가장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베트남·태국·말레이시아·필리핀 등이 인상적이다. 과거에는 ‘액시인피니티’를 비롯한 P2E 게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요새는 버블이 꺼지고 다소 부진한 양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남아 지역의 특수성을 기반으로 크립토 전문 빌더·투자사·미디어 등이 계속 생기고 있는 양상이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시장이다. 코인98·카이로스그룹 같은 크립토 전문 기업뿐만 아니라 비나캐피털 등 전통 기업들도 해당 섹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행사 기간 동안 크립토에 투자하는 VC도 많이 만났다.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부분의 VC는 신규 투자를 줄이고 사후 관리와 펀드 조성에 집중하는 양상이었다. 둘째, 유한책임투자자(LP)의 투자금을 유치하려는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셋째, 발행 시장의 벤처 딜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유통 시장에서 싸게 거래되고 있는 토큰에 직접 투자하려는 시도가 많았다. 넷째, 대기업, 전통 PE·VC, 크립토 전문 VC가 협업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다섯째, 인프라에 관심을 보이는 VC가 상대적으로 많았고 소비자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관심은 놀라울 정도로 적었다.
한중섭 ‘어바웃 머니’, ‘비트코인 제국주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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