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과 롯데 모두 사랑한 '인싸'...만약 팔꿈치 안 아프고 AG 갔으면, 이별은 오지 않았을까
[OSEN=부산, 조형래 기자] '만약'이라는 가정은 부질 없다. 하지만 '만약'이라는 가정을 붙였을 때, 롯데와 안권수의 이별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롯데 자이언츠 외야수 안권수(30)와 작별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재일교포 3세 안권수는 일본에서 나고 자라며 일본 명문 와세다대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독립리그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 할아버지의 고국에서 야구를 하기 위해 2019년 트라이아웃에 참가했고 2020 신인드래프트 2차 10라운드 전체 99순위로 지명을 받고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한국 국적을 갖고 있었지만 안권수에게 한국 생활을 새로운 도전이었다. 하지만 안권수 특유의 '인싸' 기질과 밝은 미소, 그리고 큰 목소리로 외치는 파이팅은 모두를 웃게 만든 긍정의 바이러스였다. 두산에서 막역하게 지냈던 외야수 정수빈(33)은 안권수와 함께했던 지난 3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한국에 너무 빠르게 적응했다. 성격이 서글서글하게 좋아서 선수들 모두와 친하게 지냈다. 우리도 재밌게 야구했다. 팀 분위기를 워낙 밝게 만들었고 선후배들과 너무 잘 지냈다. 정이 많이 들었다"라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덕아웃에서 많이 시끄러운 편이었다"라고 웃었다.
하지만 안권수는 3년 간의 한국 생활을 마무리 할 위기에 처했다. 병역법이라는 관문이 남아 있었다. 한국에서 프로 선수 등 영리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군 문제를 이행해야 했다.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었고 두산은 지난해 안권수를 방출했다.
그러나 롯데의 생각은 달랐다. 롯데의 계산대로라면 안권수에게 1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롯데는 안권수에게 마지막 1년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했고 일본으로 돌아가서 야구선수 생활을 이어갈지 미지수였던 안권수는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 롯데에서 1년을 더 불태워보기로 했다.
스프링캠프부터 의지를 불태웠다. 롯데에는 친분 있는 선수들이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캠프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냈다. 실제로 안권수는 4월 롯데의 질주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활력소였다. 4월 한 달 동안 22경기 타율 3할1푼8리(85타수 27안타) 2홈런 12타점 10득점 OPS .815의 성적으로 공격 첨병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 예비 명단에도 뽑히는 등 롯데와 한국에서의 생활을 이어갈 길도 열렸다.
4월 마지막 날, 안권수와 롯데의 올 시즌을 좌우하는 터닝포인트가 생겼다. 안권수는 팔꿈치에 뼛조각에 돌아다니면서 통증이 생겼다. 결국 이 통증으로 안권수는 제대로 된 타격과 송구를 할 수 없게 됐고 6월 초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게 됐다.
예상 재활 기간은 3개월. 예상 복귀 시점은 9월 초였다. 빨라도 8월 말이었다. 하지만 안권수는 괴력의 페이스로 재활을 했고 1군에 복귀했다. 롯데도 급했지만 안권수 스스로도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시즌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다. 6월 8일 수술을 받은 안권수는 7월30일 1군 엔트리에 복귀했다. 비록 이전처럼 100%로 치고 송구할 수는 없었지만 안권수는 활력소 역할을 다시 해냈다. 하지만 팀을 수렁에서 구해내지는 못했다. 당연히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 합류도 부상과 함께 불발됐다.
그럼에도 안권수는 롯데에서 야구를 하면서 더 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그는 "일본에서 야구를 더 할 생각은 없다. 한국에서 야구를 더 하려면 군대를 가야 한다"라고 말하면서도 "9월 초부터 통증이 없어졌다. 이제 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 번만 기회를 주면 다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시즌이 다 끝나가니까 아쉽기도 하다. 또 야구를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라는 속내를 말하기도 했다.
자신을 제외한 가족들은 모두 일본에 머물고 있는 안권수에게는 현실적인 선택지가 거의 없다. 그는 "혼자라면 또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족들이 있다"라며 "시즌이 끝나고 또 가족들과 상의도 해봐야 할 것 같다"라면서 향후 계획은 미정이라고 전했다.
만약이라는 가정은 부질 없다. 하지만 안권수의 팔꿈치가 멀쩡했고 또 수술 없이 시즌을 치르면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발탁이 됐다면, 그리고 금메달을 함께 목에 걸었다면 안권수와 이별은 없지 않았을까.
안권수는 "스프링캠프 때 선수들의 실력들을 보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은 물론 우승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부상 선수도 많았고 저 역시도 부상이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많다"라면서 롯데 선수들과 빠르게 친해졌다. 좋은 기억을 안고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후배들도 잘 따라와줬다"라고 웃었다.
결국 11일 사직 두산전은 안권수의 사직구장 고별전이 됐다. 이날 롯데 구단은 안권수의 홈 고별전을 앞두고 석별의 정을 나눌 작은 행사들을 진행했다. 1번 좌익수로 선발 출장한 안권수의 3회 3번째 타석에 들어설 때 롯데는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라고 적힌 배너 광고로 안권수를 향한 마음을 전했다. 아울러 관중석에서는 부활의 ‘네버 엔딩 스토리’를 부르면서 다시 만날 그 날을 기약하기도 했다. ‘네버 엔딩 스토리’는 안권수의 요청이기도 했다. 만약 안권수의 안타가 더해졌다면 더할나위 없었겠지만 이날 안권수는 5타수 무안타로 물러났다.
구단보다 사실 팬들이 안권수와의 이별을 더 아쉬워했다. 경기가 끝나고 주장 안치홍, 이종운 감독대행 등이 홈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하지만 팬들은 안권수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어했다. 안권수의 이름을 연호했고 사회를 맡았던 조지훈 응원단장이 안권수를 불러냈다.
안권수는 마이크를 잡고 “한국어를 잘 못합니다”라고 운을 뗀 뒤 “응원해주셔서 감사하다”라고 마음을 전했다. 이어 롯데 팬들은 안권수의 응원가를 목청껏 불렀다. 결국 안권수는 끝내 눈물을 훔치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참고 있던 감정을 터뜨렸다. 결국 안권수는 목이 메인 채 “롯데 팬들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홈 최종전의 아쉬움을 서로 풀었다. 아직 광주와 대전 원정경기가 남았지만 홈 최종전, 그리고 안권수의 고별전은 특별한 듯 했다. 룸메이트 김민석은 안권수와 기념사진을 찍기전 결국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안권수는 "롯데 팬들의 열정은 진짜 대단했던 것 같다. 육성 응원 덕분에 힘도 많이 받았다. 솔직히 팔꿈치가 너무 아팠지만 계속 응원해주셔서 더 힘낼 수 있었다"라면서 롯데 팬들을 향해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jhra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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