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숲에서 '힐링', 제주 환상숲 곶자왈
새잎이 피어나는 봄에 낙엽이 떨어지고 흰 눈이 내리는 겨울에 새빨간 딸기가 열리는 숲이 있다. 신비로운 이 숲의 이름은 '환상숲 곶자왈'. 눈에 보이는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를 품은 환상숲에서는 모든 순간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제주 웰니스 관광지 중 하나인 이곳에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힐링 시간을 보내고 왔다.
척박한 땅에서 '환상숲'이 되기까지
환상숲은 이름 뒤에 따로 '곶자왈'이란 단어가 붙어 있다. 제주만의 독특한 생태 지형인 곶자왈은 화산 활동으로 생긴 돌투성이 지대에 형성된 숲으로 흙 한 줌 없는 환경에 나무들과 수풀이 뒤엉켜 있어 예전엔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졌었다. 밭을 일궈야 곡식을 거둘 있는데 경작이 어려울 정도로 환경이 척박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거의 버려지다시피 했던 곶자왈은 자연과 환경 보전이 중요해진 지금 '제주의 허파'로 불리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용암이 만든 신비한 숲에는 우리가 몰랐던 다양한 동식물이 살아가고 있으며, 상록수와 낙엽수, 한대와 난대림이 공존하는 놀라운 제주의 천연 원시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환상숲 곶자왈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탓에 숲은 오히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처럼 원초적인 숲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근처에 있는 도너리 오름에서 흘러내린 용암이 굳어지면서 쪼개진 돌 틈 사이에 한라산과 인근 수풀에서 날아든 씨앗들이 뿌리를 내리면서 숲을 이뤘다고 한다. 커다란 바위를 굵은 뿌리로 감싸 안은 나무들이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경이로운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원석도 가꾸어야 보석으로 거듭나듯이 황무지로만 여겨졌던 숲을 지금 같은 힐링 공간으로 탄생시킨 주역들이 있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돌밭인 곶자왈을 구입해 지금껏 가꿔가고 있는 이형철, 문은자 대표의 가족들이다. 뇌경색으로 인한 마비로 거동이 불편한 와중에도 나무들이 다칠라 중장비도 없이 홀로 가시덤불을 치우며 길을 낸 아버지와 곁에서 든든하게 힘이 되어 주었던 어머니, 부모님을 돕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딸과 숲을 통해 평생의 인연을 맺게 된 사위까지. 환상숲을 만든 가족들의 이야기는 KBS 인간극장을 통해 방영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숲이 들려주는 삶 이야기
환상숲은 매 시간 숲 해설을 통해 관람객들이 자연과 교감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날은 문은자 선생이 직접 해설에 나섰다.
"여기를 보세요. 바위틈 사이에서 바람이 흘러나오죠? 숨골이라고 부르는 곳인데요, 온도가 늘 일정해서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게 느껴져요. 이런 자연환경 덕분에 남방한계식물과 북방한계식물이 한 숲에서 사이좋게 살아가는 거랍니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서 한 줄기 바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지하 깊은 곳에서 올라온 차가운 공기가 숲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 주는 천연 냉온풍기인 셈이다. 한겨울에 폭설이 와도 숨골 주변에는 눈이 쌓이지 않는다고 하니 자연의 신비에 놀라울 뿐이다.
"제주에는 곶자왈 숲이 여러 곳이 있는데요, 환상숲도 그중 하나이죠. 곶자왈은 일반적인 숲들과는 다른 특징들이 몇 가지 있답니다. 바닥이 모두 돌투성이니 나무뿌리가 땅 위로 자라날 수밖에 없고요, 거친 환경을 견뎌야 하니 이렇게 단단한 근육질로 변했어요." 혹여 라도 뿌리를 밟을 까봐 앞선 사람들의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 대견하면서도 애처로운 마음도 든다.
1시간 남짓 동안 숲을 걸으며 문은자 선생은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겨울에도 나뭇잎을 떨구지 않아 봄철이 되면 새잎이 묵은 잎을 밀어내 낙엽이 진다는 것, 죽은 나무에서 다시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는 자연스러운 숲의 순환 구조 등 무엇 하나 허투루 흘러 들을 것이 없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남편인 이형철 대표가 한쪽 몸이 마비되었어도 매일 숲에서 살다시피 하며 지내는 사이에 오히려 건강이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숲이 그를 치유한 것일까. 숨을 크게 들이쉬며 숲이 내뿜는 건강한 에너지를 한껏 들여 마셨다.
힐링 에너지를 담은 발걸음
"갈등이란 말을 아시죠? 한자로 '칡나무 갈' 자와 '등나무 등' 자를 쓰는데요, 이 둘이 한 나무를 에워싸고 치열하게 생존 경쟁을 벌이는 모습에서 유래된 말이에요. 반대로 콩짜개 덩굴들은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주죠. 숲을 보면 우리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들도 이 숲에서 인생과 삶의 철학을 얻어 가시길 바랄게요."
자연과 조화를 이뤄나가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마지막 당부와 함께 해설을 마친 문은자 선생은 밝은 표정이었다. 숲에서 살면 누구나 이처럼 해맑은 얼굴이 되는 걸까. 문득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해설이 끝나면 자유롭게 숲을 더 둘러볼 수 있다. 나무를 타고 올라간 어른 팔뚝만 한 덩굴이 구렁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바위를 움켜쥔 나무뿌리가 거대한 매의 발톱에 걸린 먹잇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눈길이 닿는 어디든 예사로운 풍경이 없었다. 하늘을 가린 초록색 지붕 아래 세상은 현실에서 멀찌감치 비껴 있는 신비한 세계였다. 그 안에서 자연과 인생은 결국 하나였다. 따스하고 기분 좋은 기운이 몸 안에 가득 찬 기분. 숲을 나서는 발걸음이 전보다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네이버 예약(환상숲 곶자왈 공원) 및 전화 예약 필수. 사전 예약자 우선 입장이며 인원 미달 시 현장 매표 가능.
글·사진 정은주 트래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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