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악마였다"…가자지구 3km, 학살극 그 후 텅 빈 도시의 비극

유영규 기자 2023. 10. 12.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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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업트럭 4∼5대를 타고 나타난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어요. 경찰서에는 바주카(휴대용 로켓탄 발사기)를 쐈죠. 수십 명이 죽었어요. 그들은 그저 악마 같은 테러범일 뿐입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시작된 지 닷새째인 11일(현지 시간) 오전 예루살렘에서 차로 1시간 20분을 달려 도착한 이스라엘 남부 도시 스데로트는 적막했습니다.

가자지구에서 불과 약 3km 떨어진 스데로트는 지난 7일 분리 장벽을 넘어온 하마스 무장대원들의 공격을 받아 수십 명이 사망한 곳입니다.

이후 이스라엘군이 무장대원 소탕 작전을 벌이면서 주민들을 대피시킨 탓에 도로에는 차량이나 사람이 거의 없었고, 병원과 마트 등 상점들도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텅 빈'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사람들이 모여 있고 중장비 소음이 들리는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마스 대원들의 집중 표적이 된 스데로트 경찰서입니다.

하마스 대원들이 총기와 폭탄 공격으로 장악했던 경찰서 건물이 폐허가 되자 당국은 중장비를 동원해 철거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건물 잔해에는 불에 탄 자동차 등이 어지럽게 얽혀 있습니다.

철거 중인 건물 한쪽에서 불에 타다 만 남성의 주검 2구가 발견되자 인근에 대기하고 있던 보건 당국자들이 서둘러 시신을 수습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경찰서 앞 도로에는 테러범들이 쏜 것으로 추정되는 총탄의 탄피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도로변에는 경찰관들이 썼던 것으로 추정되는 방탄모와 방탄조끼, 탄창 등이 쌓여 있었습니다.

도로를 건너 주차장 쪽으로 다가가자 총격전 과정에서 유리창이 깨지거나 총탄이 박힌 수십 대의 차량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차 안쪽과 주차장 바닥에서는 핏자국도 심심찮게 보였습니다.

인근에서 철거 장면을 지켜보던 현지 주민 나심 바이츠만(72) 씨는 연합뉴스에게 "그들은 군인이나 경찰이 아니라 여성과 아이들을 죽였다. 이것이 바로 하마스의 본모습이다. 그들은 악마 같은 테러범이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서에서 불과 200m 떨어진 곳에 산다는 바이츠만 씨는 "그날 총성을 듣고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흰색 픽업트럭 4∼5대에 나눠 탄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사람들에게 닥치는 대로 총을 쐈고, 경찰서에는 바주카포도 쐈다"고 끔찍했던 당시의 악몽을 떠올렸습니다.

바이츠만 씨는 이어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지만 우리는 절대 지지 않고 이길 것"이라며 "나도 우리 아들도 하마스와 싸웠다. 이스라엘인 모두는 그들과 싸워서 이길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경찰서 건물 건너편 아파트 1층에 앉아있던 한 노인은 "그때는 무서워서 집 안에만 있었다. 나중에 그들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악마다"라고 분노했습니다.

스데로트 중심가를 벗어나 남쪽으로 이동하자 큰 사거리 인근 갓길에 여러 대의 차량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고, 인근 언덕의 나무와 풀도 새까맣게 타 있었습니다.

불에 타 바퀴까지 완전히 녹아내린 차량도 있었고 앞 유리와 운전석 쪽 문 등에 총탄 자국이 그득한 차량도 있었습니다.

앞 유리에 총탄 자국이 남아 있는 차량의 안쪽을 들여다보니 운전석 좌석과 센터패시아가 말라붙은 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인근에서 경비를 서던 경찰관에게 물으니 하마스 무장세력의 공격을 받은 차량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학살을 자행했다는 키부츠로 가기 위해 사거리 남쪽으로 차를 돌렸으나 경비를 서던 군인이 총구를 들이대고 차량을 막았습니다.

하마스 대원들이 음악 축제 현장을 습격한 뒤 260구의 시신이 발견된 레임 키부츠, 무장대원들이 여성과 아이들까지 무차별 살해했다는 크파르 아자 키부츠로 가는 우회로를 찾기 위해 인근 지역을 이 잡듯 뒤졌으나 허사였습니다.

인근 농업지대의 오렌지, 레몬 과수원 사이사이에는 가자지구를 향해 포신을 겨눈 이스라엘군 전차 등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가 테러범 소탕 완료 지역의 취재를 허용할 수 있다는 말에 내외신 기자들은 인근 알루밈-베에리 교차로에서 1시간가량을 기다렸으나 결국 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키부츠로 가는 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과수원 한가운데서 지축을 울리는 포성이 끊이지 않았고, 손에 잡힐 듯 보이는 가자지구 위로는 검은 연기가 끊임없이 올라왔습니다.

차를 돌려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점심을 먹기 위해 도로변 휴게소에 있는 유명 햄버거브랜드 코셔(유대 율법에 따라 만든 음식) 매장에 들렀는데, 문이 닫힌 채 직원들이 분주하게 음식을 포장하고 있었습니다.

이 가게의 직원은 음식을 살 수 있는지를 묻는 기자에게 "지금은 하마스와 싸우는 군인들을 위한 점심을 준비하고 있어 일반인에게 팔 수 없다. 긴급한 상황이니 이해해달라"고 답했습니다.

도로에서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태운 차량을 만나면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리거나 큰 목소리로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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