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소행성 베누 흙에 생명체 필수 성분 있다
”생명체 필수 성분인 탄소와 물 풍부”
무인(無人) 탐사선이 3년 만에 가져온 소행성(小行星) 시료에서 생명체에 필수적인 성분들이 발견됐다. 소행성이 태양계 형성 당시를 알려주는 타임 캡슐과 같은 존재라는 점에서 과학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 존슨우주센터는 11일(현지 시각) “탐사선 ‘오시리스-렉스(OSIRIS-REx)’가 소행성 베누(Bennu)에서 채취한 시료에 생명체에 필요한 성분인 탄소와 물이 가득 차 있었다”고 밝혔다.
◇발사 7년 만에 지구로 소행성 시료 보내
소행성은 태양 주변을 긴 타원 궤도를 따라 도는 작은 천체로, 45억년 전 태양계가 형성될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나사의 무인 탐사선 ‘오시리스-렉스(OSIRIS-REx)’는 발사 4년 만인 2020년 10월 20일 소행성 베누 표면에서 자갈과 먼지를 채취했다. 베누 토양 시료 250g이 담긴 캡슐은 지난달 24일 미국 유타주에 낙하했다. 탐사선 발사 7년 만의 성과였다.
당초 오시리스-렉스의 목표는 베누에서 토양 시료 60g을 채집하는 것이었다. 나사 존슨우주센터 연구진은 캡슐을 열어보고 실제 시료 양이 그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2주 동안 과학자들은 주사 전자 현미경, 적외선 측정, X선 회절, 화학 원소 분석을 통해 토양 시료를 분석했다. 또한 X선 컴퓨터 단층 촬영을 통해 입자 중 하나의 3D(입체) 컴퓨터 모델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토양 시료에 탄소와 물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오시리스-렉스의 수석 과학자인 미 애리조나대의 단테 로레타(Dante Lauretta) 교수는 “소행성 베누의 먼지와 암석 속에 보존된 오래전 비밀을 들여다보면서 태양계의 기원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타임캡슐을 열고 있다”며 “탄소가 풍부한 물질과 물을 함유한 점토 광물이 존재하는 것은 우주라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토양 시료에는 암석의 지질학적 변형에 핵심적인 유황도 들어 있었다. 로레타 교수는 “유황은 물질이 얼마나 빨리 녹는지 결정하며 생물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유기화학 반응 속도를 높이는 촉매가 될 수 있는 산화철 광물도 발견했다. 로레타 교수는 “베누에서 새로운 사실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우리는 우주 유산의 신비를 푸는 데 더 가까워진다”고 말했다.
소행성의 먼지와 암석에 담긴 비밀은 과거 태양계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알려줄 수 있다. 지구에 생명체를 탄생시킨 물질이 어디서 왔는지, 또 미래 닥칠지 모르는 지구와 소행성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어떤 예방 조치를 해야 하는지 통찰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나사는 밝혔다.
◇전 세계 과학자 200여명 분석 참여
빌 넬슨 나사 국장은 “오시리스-렉스의 토양 시료는 지금까지 지구로 보내온 소행성 시료 중 가장 탄소가 풍부했다”며 “과학자들이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지구 생명체의 기원을 조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99년 처음 발견된 베누는 탄소가 풍부한 소행성으로, 폭이 500m 정도인 다이아몬드 모양이다.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비슷한 크기다. 오시리스-렉스는 베누가 지구와 달 사이 거리만큼 근접했을 때인 2016년 9월 발사돼 2018년 12월에 베누 궤도에 도착했다. 탐사선은 지난 2020년 10월 21일 베누에 착륙해 토양 시료를 채집했다.
오시리스-렉스와 소행성의 조우는 착륙보다는 접촉에 가까웠다. 오시리스-렉스는 당시 16m 폭의 충돌구인 나이팅게일에 로봇팔을 지면에 대고 질소가스를 분사했다. 가스 힘으로 공중에 떠오른 동전 크기의 자갈들을 빨아들이고 바로 이륙했다. 로봇팔이 지면에 접촉한 시간은 5초 정도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앞으로 2년 동안 시료를 심층 분석할 예정이다. 미래 세대와 전 세계 과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도록 시료 중 최소 70%는 존슨우주센터에 보관하기로 했다. 오시리스-렉스의 과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미국 연구기관들과 나사 파트너인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캐나다우주국(CSA) 등 전 세계 과학자 200명 이상이 소행성 토양을 연구할 예정이다. 올해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과 휴스턴 우주 센터, 애리조나대에 토양 시료를 대여해 대중 전시도 진행한다.
◇한국 포기한 아포피스 소행성 탐사
8억 달러(한화 1조728억원)를 들여 개발한 오시리스-렉스는 미국의 아폴로 달탐사 이후 최대 규모의 우주 시료 채취 임무를 수행했다. 탐사선의 이름은 ‘기원과 스펙트럼 해석, 자원 식별 및 보안, 암석 탐사자’를 의미하는 영문 첫 글자를 땄다. 말 그대로 소행성의 암석을 분석해 기원을 추적하고 지구 충돌에 대비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오시리스-렉스 탐사선은 베누 시료를 무사히 지구로 보냈지만, 아직 임무가 끝났지 않았다. 탐사선은 캡슐을 지구로 방출한 후, 지구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방향을 틀었다. 다음 목표는 소행성 아포피스(Apophis)이다. 아포피스는 서울 여의도 63빌딩(높이 250m)보다 덩치가 큰 지름 370m짜리 소행성이다. 2029년 4월14일 지구에서 3만1600㎞ 떨어진 지점까지 접근한다.
오시리스-렉스는 아포피스에 근접하면 이름이 오시리스-아펙스(Osiris-Apex, ‘기원과 스펙트럼 해석, 자원 식별 및 보안 아포피스 탐사선’의 영문 약자)로 바뀐다. 오시리스-아펙스는 아포피스 궤도에 진입할 예정이다.
한국도 아포피스 탐사에 도전했지만 설계 단계에서 좌초됐다. 한국천문연구원은 소행성 아포피스 탐사를 위해 탐사선과 관련 시스템을 국산 우주발사체 누리호에 실어 발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예산 확보에 실패했다.
참고 자료
NASA(2023), https://www.nasa.gov/news-release/nasas-bennu-asteroid-sample-contains-carbon-water
University of Arizona News(2022), https://news.arizona.edu/story/nasa-gives-green-light-osiris-rex-spacecraft-visit-another-astero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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