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속에서 피어난 지성의 향연』 임병철 “르네상스는 혼돈 속에서 화려한 싹을 틔운 앙스트블뤼테” [김용출의 한권의책]
‘르네상스의 아버지’ 페트라르카는 그리하여 현실 정치에 뛰어든 능동적 시민의 전형이었던 단테와 달리, 마치 세파에 초연한 듯 아비뇽, 밀라노 등의 여러 도시를 오가며 ‘세계시민의 삶’을 추구한 방랑 지식인으로 살아갔다. 고독 속으로 침잠해 고전을 읽으면서 인간의 도덕성이 나락으로 떨어진 시대를 규탄하고 새 시대를 꿈꿨다. 역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가 말한, ‘근대 유럽의 첫 아이’로 불렀던 르네상스인의 탄생이었다.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기로에 놓이게 된 인간의 실존, 교황권과 황제권으로 대변하는 보편적 권력 질서의 붕괴와 정치사회적 혼란, 15세기 중반 콘스탄티노플의 함락과 기독교 세계의 불안.... 14세기 중반부터 15세기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 전역에 불어 닥친 혼란과 불안은 바로 르네상스의 묘판이 됐다. 르네상스는 불안 속에서 처연히 피어난 꽃이었고, 라틴 고전을 통해서 미래를 설계한 ‘역설의 문화운동’이었다.
『피렌체 시민사』 를 써서 공화국의 역사를 예찬하고 공동체에 대한 시민의 기여와 덕성을 강조한 ‘피렌체의 리비우스’ 브루니, 로마의 옛 모습을 복원하고 기록하는 데 일생을 바친 비온도, 유럽 언어 소문자체의 기원이 된 서체를 개발한 니콜니, 키케로주의자로서 고전에 기초한 청소년 교육을 강조한 베르제리오, 120여권을 저술하면서 15세기의 마키아벨리로 이름을 날린 데쳄브리오, 피렌체의 상인으로 ‘신이야말로 인간의 형상’이라고 주장한 마네티, 법률가의 위선을 벗겨낸 현실주의 정치인 스칼라....
이들 르네상스 지식인들이 과학적 형이상학적 앎의 문제에 천착하기보다는 인간의 삶과 사회 자체를 변화시켜서 시민들을 올바른 삶으로 이끌고자 했다. 즉, 인간과 사회를 인간답게 개선하려는 것이 그들의 지향점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인간과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정치사상적 논의, 인간 존재에 대한 본원적 질문, 역사의식의 성장 등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했던 것이다. 르네상스인들은 저마다 말하는 인간, ‘호모 나란스’가 돼 인간의 삶과 공동체에 대해 다양하고 도전적인 담론을 봇물 터뜨리듯 쏟아냈다.
또 당대의 실력자 메디치 가문과 대립하면서 모범적 시민의 덕의 정치를 주장한 피렐포의 세계시민론을 한번 들어보라. “현자라면 또 누구보다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그저 단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전 세계를 자신의 조국이라고 부릅니다. 외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만이 자기 삶의 주인이자 왕입니다.”(129쪽)
책에서 그려지는 르네상스의 모습은 무지몽매한 암흑의 중세를 끝내고 계몽의 빛을 비춘 출발점으로서 역사의 도정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화려한 시기로만 이해되지 않는다. 오히려 한편으론 모순적이고, 다른 한편으론 복잡다기한 사고실험의 흔적들을 쉽게 목격된다. 저자는 이에 대해 “긴장과 갈등”, “통일되지 못한 사고의 혼란”이야말로 르네상스답게 만드는 문화적 징후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르네상스가 현대적 의미의 인문주의가 아니라면, 르네상스와 르네상스인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다시 말해, 우리는 왜 르네상스와 르네상스인들의 사상과 고민을 알아야 하고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르네상스인들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인간과 사회의 개선이라는 주제를 사유의 화두로 던졌다. 이것이 그들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럼으로써 설령 고대의 거인들에게 기대고 있었지만 난쟁이 르네상스인들은 그들의 어깨 위에서 그들보다 더 멀리, 더 많이 볼 수 있었다.”(290쪽)
요컨대, 책은 르네상스와 르네상스인들을 쉽게, 그러면서도 다층적이고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는 고마운 교양서다. 세계시민적 교양을 쌓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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