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속에서 피어난 지성의 향연』 임병철 “르네상스는 혼돈 속에서 화려한 싹을 틔운 앙스트블뤼테” [김용출의 한권의책]

김용출 2023. 10. 12.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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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르카는 단테에게 의도적인 냉담이나 무관심 이상을 표현하지 않았다. 단테가 ‘선술집이나 저잣거리의 무지한 이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저속한 언어를 구사한 통속 작가에 지나지 않고, 그렇기에 그의 책들은 한낱 ‘생선 가게의 포장지’로나 쓰일 수 있을 뿐이라고 냉소할 정도였다.”(34쪽)
페트라르카
라틴어로 씌여진 고전의 가치에 주목한 첫 번째 르네상스인으로 꼽히는 페트라르카는, 중세 세계관의 문학적 결정판으로 평가되던 단테의 고전 『신곡』 을 냉소했고, 저속한 언어를 구사했던 단테를 비아냥거렸다. “라틴 전통에 기초한 새로운 문화의 선도자를 자임하던 페트라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단테가 고전에 무지한 구시대의 열등한 인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은 분명하다.”(35쪽)

‘르네상스의 아버지’ 페트라르카는 그리하여 현실 정치에 뛰어든 능동적 시민의 전형이었던 단테와 달리, 마치 세파에 초연한 듯 아비뇽, 밀라노 등의 여러 도시를 오가며 ‘세계시민의 삶’을 추구한 방랑 지식인으로 살아갔다. 고독 속으로 침잠해 고전을 읽으면서 인간의 도덕성이 나락으로 떨어진 시대를 규탄하고 새 시대를 꿈꿨다. 역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가 말한, ‘근대 유럽의 첫 아이’로 불렀던 르네상스인의 탄생이었다.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기로에 놓이게 된 인간의 실존, 교황권과 황제권으로 대변하는 보편적 권력 질서의 붕괴와 정치사회적 혼란, 15세기 중반 콘스탄티노플의 함락과 기독교 세계의 불안.... 14세기 중반부터 15세기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 전역에 불어 닥친 혼란과 불안은 바로 르네상스의 묘판이 됐다. 르네상스는 불안 속에서 처연히 피어난 꽃이었고, 라틴 고전을 통해서 미래를 설계한 ‘역설의 문화운동’이었다.

“르네상스는 고대를 지향하고 그 사라진 세계를 시선에 고정시키면서도 새 시대로 발걸음을 내디딘 역설의 문화운동이었다. 혼돈 속에서 화려한 싹을 틔운 앙스트블뤼테였던 셈이다.”(290쪽)
르네상스 연구자이자 한국교원대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책 『불안 속에서 피어난 지성의 향연』 에서 르네상스를 빛낸 이탈리아 지식인들의 백가쟁명식 지적 쟁투기를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다채롭게 풀어낸다.
책은 딱딱한 논문 형식이나 학술서 형식이 아닌, 르네상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페트라르카부터 시작해 ‘연기자 같은 인간’이라는 관념을 빚어낸 ‘궁정인’ 카스틸리오네까지 이탈리아 르네상스 지식인 열전 형식으로 풀어냈다. 아울러 기존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예술가 중심이 아니라 ‘말과 글을 통해 고 세계를 부활시키려 한 지적 운동’인 르네상스의 본질에 초점을 맞춰서 지성인 중심으로 구성했다는 점도 눈에 띤다.
마키아벨리
저자는 인간의 관점에서 변주된 새로운 창조신화를 내놓으며 새로운 르네상스 인간학 혹은 철학적 인간학의 뼈대를 세운 피코나 현대 정치학의 통찰을 담은 『군주론』 을 쓴 비운의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 등 익숙한 지식인만 소개하는 게 아니다.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르네상스 시대를 빛냈던 많은 지식인들을 소환한다.

『피렌체 시민사』 를 써서 공화국의 역사를 예찬하고 공동체에 대한 시민의 기여와 덕성을 강조한 ‘피렌체의 리비우스’ 브루니, 로마의 옛 모습을 복원하고 기록하는 데 일생을 바친 비온도, 유럽 언어 소문자체의 기원이 된 서체를 개발한 니콜니, 키케로주의자로서 고전에 기초한 청소년 교육을 강조한 베르제리오, 120여권을 저술하면서 15세기의 마키아벨리로 이름을 날린 데쳄브리오, 피렌체의 상인으로 ‘신이야말로 인간의 형상’이라고 주장한 마네티, 법률가의 위선을 벗겨낸 현실주의 정치인 스칼라....

이들 르네상스 지식인들이 과학적 형이상학적 앎의 문제에 천착하기보다는 인간의 삶과 사회 자체를 변화시켜서 시민들을 올바른 삶으로 이끌고자 했다. 즉, 인간과 사회를 인간답게 개선하려는 것이 그들의 지향점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인간과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정치사상적 논의, 인간 존재에 대한 본원적 질문, 역사의식의 성장 등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했던 것이다. 르네상스인들은 저마다 말하는 인간, ‘호모 나란스’가 돼 인간의 삶과 공동체에 대해 다양하고 도전적인 담론을 봇물 터뜨리듯 쏟아냈다.

이들 르네상스 지식인들의 이야기나 사고, 주장 가운데 지금 시대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것들도 적지 않다. 예를 들면, 르네상스가 꽃피는 데 가교 역할을 했던 살루타티는 패자인 키케로와 승자인 카이사르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뒤집고 키케로야말로 공화국의 진정한 수호자이고 카이사르는 공화국의 반역자라는 인식의 대선회를 이끌어냈다.
피코
“빛바랜 키케로의 편지들을 읽으면서 살루타티가 스토아주의 철학자가 아니라 정치가이자 시민으로서 낸 키케로의 목소리에 감화되었고, 결국 그 고대인이 대변하는 시민적 삶을 예찬하면서 카이사르를 공화국에 범죄를 저지른 독재자라고 비난하게 되었던 것이다.”(54쪽)

또 당대의 실력자 메디치 가문과 대립하면서 모범적 시민의 덕의 정치를 주장한 피렐포의 세계시민론을 한번 들어보라. “현자라면 또 누구보다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그저 단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전 세계를 자신의 조국이라고 부릅니다. 외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만이 자기 삶의 주인이자 왕입니다.”(129쪽)

책에서 그려지는 르네상스의 모습은 무지몽매한 암흑의 중세를 끝내고 계몽의 빛을 비춘 출발점으로서 역사의 도정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화려한 시기로만 이해되지 않는다. 오히려 한편으론 모순적이고, 다른 한편으론 복잡다기한 사고실험의 흔적들을 쉽게 목격된다. 저자는 이에 대해 “긴장과 갈등”, “통일되지 못한 사고의 혼란”이야말로 르네상스답게 만드는 문화적 징후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줄곧 휴머니즘과 휴머니스트를 ‘인문주의’나 ‘인문주의자’라는 번역어로 옮기지 않고 그대로 휴머니즘과 휴머니스트로 적었다. 그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카스틸리오네
“르네상스기의 휴머니즘은 오늘날의 인문주의라는 의미보다는 고전을 고전 그대로 읽고 고전적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지적 태도라는 뜻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공유하고 거기에 매진한 당대인들은 스스로를 웅변가나 수사가 혹은 문인 등으로 자리매김하곤 했다. 이를 고려할 때 본래 르네상스기의 휴머니즘은 라틴어에 기초한 학문이나 문학적 활동을 일컫는 것이었다. 따라서 휴머니즘에 경도된 당대의 지식인들은 오늘날의 인문주의자라기보다 오히려 라틴 고전주의자에 더 가깝다. 19세기 이후 인간에 대한 사랑과 박애 등의 의미를 담게 되는 인본주의나 박애주의 같은 보편적인 개념 역시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본질이 아니었다...이것이 바로 고전에 기초한 르네상스기의 지적 풍토를 휴머니즘으로, 그리고 그것을 강조하고 실천한 지식인을 휴머니스트로 적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10쪽)

그런데 르네상스가 현대적 의미의 인문주의가 아니라면, 르네상스와 르네상스인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다시 말해, 우리는 왜 르네상스와 르네상스인들의 사상과 고민을 알아야 하고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르네상스인들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인간과 사회의 개선이라는 주제를 사유의 화두로 던졌다. 이것이 그들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럼으로써 설령 고대의 거인들에게 기대고 있었지만 난쟁이 르네상스인들은 그들의 어깨 위에서 그들보다 더 멀리, 더 많이 볼 수 있었다.”(290쪽)

요컨대, 책은 르네상스와 르네상스인들을 쉽게, 그러면서도 다층적이고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는 고마운 교양서다. 세계시민적 교양을 쌓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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