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휴대전화 기록으로 러시아군 민간인 학살 밝히다
학살 의혹에 러시아 “사진 연출” 부인
마샤 프로리악 등 뉴욕타임스 취재팀
사망 뒤 휴대전화 통화기록 추적해
학살 자행한 러시아 부대 특정 보도
올해 퓰리처상 국제보도 부문 수상
“우리 작업이 범죄·전쟁 예방했으면”
지난해 4월 초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북서쪽에 있는 도시 부차의 거리에서 시신 수백구가 발견됐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해 8월 부차 지역에서 러시아군에 의해 발생한 민간인 사망자가 458명이었다고 밝혔다. 거리에 누워 있는 시신들이 그대로 담긴 위성 사진이 공개되면서 ‘부차 민간인 집단 학살’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지만, 러시아 정부는 “연출된 사진”이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마샤 프로리악을 비롯한 뉴욕타임스 취재팀은 러시아군과 부차 학살을 연결할 더 확실한 증거를 찾아 탐사보도에 나섰다. 8개월 동안 취재한 결과, 취재팀은 시시티브이(CCTV)와 위성 사진, 희생자들의 휴대전화 통화 기록을 통해 실제 학살에 가담한 러시아 부대를 특정하는 데 성공하고 이를 연속 보도했다. 이 보도는 올해 국제보도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프로리악은 이 취재 경험을 지난달 21일(현지시각)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글로벌 탐사보도 총회’(GIJC 2023)에서 ‘우크라이나: 전쟁범죄 탐사보도’ 세션 사례로 발표했다.
프로리악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뉴욕타임스 저널리스트다. 프로리악과 동료들은 지난해 4월 부차 학살 의혹이 제기된 직후 취재를 시작했다. 취재 초기에는 어려움 투성이였다. 그는 “러시아가 개입한 지 며칠 만에 부차의 마을 대부분에서 전기가 나갔다”며 “시시티브이가 없을 것 같았다. 또한 (처음에는) 거리의 희생자 명단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취재팀은 시각적 디지털 증거를 분석하고, 그 데이터 조각을 결합하는 방식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우선 거리의 사진을 촬영하고, 러시아 군인들이 남기고 간 물품과 문서를 찾는 데 주력했다. 그런 과정에서 일부 시시티브이의 영상을 찾았고, 목격자들도 확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부차 학살 책임자를 찾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휴대전화 기록 추적’이었다. 목격자들의 진술을 통해 군인들이 희생자들의 휴대전화를 가져가 사용하고 있다는 제보를 확보한 것이다. 이후 취재팀은 우크라이나 당국을 통해 희생자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각 이후 러시아로 발신된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확보했다. 아울러 해당 러시아 군인들이 연락한 연락처와 연동된 소셜 미디어 프로필을 밝혀내는 작업을 통해 신원을 특정했다. 프로리악은 “러시아군의 통화를 추적해 그들이 발신한 전화번호를 파악하고 그 전화번호와 연동된 소셜 미디어 프로필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을 식별하는 방식으로 추적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제234 공수연대.’ 취재팀은 이런 과정을 통해 부차 학살을 자행한 러시아 부대를 특정했다. 프로리악은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 도착한 벨라루스에서 있었던 부대의 군사훈련 영상과 (부차에서 촬영된 영상을) 대조했고, 그 결과 일치하는 것이 있었다”며 “러시아 뉴스 보도를 통해서도 234 공수연대의 표식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특히 프로리악은 러시아 부대원들이 희생자 6명의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234 공수연대에서 복무했던 병사 2명과 인터뷰를 하고, 해당 작전의 지휘관이 아르티움 고로딜로프 중령(현 대장)이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후 영상과 문서 기록을 바탕으로 부차 학살은 러시아군이 키이우로 가는 길을 확보하기 위한 작전 가운데 하나였고, 교전 상황이 아니라 민간인 학살이었다고 보도했다.
취재팀은 유가족의 동의를 얻어 사망자 명단도 일부 공개했다. 프로리악은 “유가족들은 궁극적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보도의) 목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이 증거는 국제 법정에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감사를 표했다”고 말했다.
프로리악은 전쟁 범죄에 맞서 진실을 밝히는 탐사보도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이 작업이 미래의 범죄와 전쟁을 예방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전쟁이 반복되고 있고 민간인 학살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때때로 실망스럽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사건을 조사해 기록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말했다.
예테보리/글·사진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KPF 디플로마 탐사보도’ 교육과정에 참여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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