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제의 먹거리 이야기] '바질 꽃이 보여준 작은 희망'
(서울=뉴스1) 전호제 셰프 = 종이 약봉지 안에는 검은색 바질 씨앗이 들어 있었다. 마침 베란다에 놀고 있는 화분 2개가 있어 나누어 심었다. 남은 씨앗은 휴지에 물을 적셔 올려놓았다. 별 기대 없이 심었지만 어느새 아침에 일어나면 화분 안을 뚫어지게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씨가 오래되어 발아가 어려워 보인다고 맘속으로 희망을 접었는데, 그렇게 포기할 무렵 스위트 바질은 녹색 점 같은 싹을 땅에서 내밀었다.
서울을 벗어나 보기로 하고 제주도에서 식당을 준비할 때도 1평 정도의 화단이 조성되어 있었다. 바질을 제주도에서 주문하려 하니 계절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소유주분이 바질 묘목을 빈 화단에 심어주셨다. 주위에선 바질이 민달팽이로 키우기 어렵다고 했지만 걱정했던 바질은 쑥쑥 커갔다. 덕분에 손쉽게 바질을 수확해서 음식 재료로 활용할 수 있었다.
바질의 꽃말은 작은 희망, 혹은 기대라고 한다. 작고 단단한 씨앗에서 싹이 나는 것처럼 바질 싹은 무거운 흙을 밀고 희망처럼 돋아나서 그런가 싶다.
식당 운영도 바질 농사를 닮았다. 작은 희망에서 시작하게 된다. 예기치 않은 때에 잘되기도 하다가 절망으로 바뀌곤 한다. 마치 농부처럼 비바람에 울고 햇살에 웃고를 반복하게 된다. 주위 상권의 변화에 잘되던 식당이 운영난에 빠지듯이 날씨가 나빠지면 바질은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고 주문하기가 겁나는 상황에 놓이곤 한다.
이런 이유로 10월 초순이 지나면 이탈리안 식당에서는 바질페스토를 준비할 것이다. 우리네 김장철처럼 봄이 오기 전까지 4-5개월동안 사용할 양 정도면 넉넉하다. 바질페스토 준비를 위해 충분한 양의 파마산 치즈, 마늘, 퓨어 올리브 오일, 잣을 준비해 둔다.
바질의 향을 최대한 놓치지 않는 것이 반복 작업의 포인트이다. 대량작업이니 간도 정확하게 맞추어 놓아야 후회가 없다. 갈아 놓은 바질은 비닐로 한번 쓸 만큼 포장해 두고 냉동한다. 냉동한 바질페스토는 한겨울에서 봄까지 신선한 바질의 정수를 담고 있어 토마토 스튜, 파스타, 피자, 그릴야채 등에 감칠맛과 풍부한 향을 더해준다. 바질 작업이 끝나면 냉동고를 채운 녹색 향주머니를 보며 잠시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 바질 가격이 올라도 우리에겐 준비된 바질페스토가 있다.
이렇게 이탈리안 음식에 사용되는 바질을 스위트 바질이라고도 한다. 스위트 바질과 비교되어 동양 음식에서 주로 사용되는 바질인 타이 바질도 요즘 많이 사용된다. 열에 약한 스위트 바질과 달리 타이 바질은 쌀국수 국물에 추가해서 먹거나 뜨겁게 팬에 넣고 볶는 요리에 사용할 만큼 강한 향이 살아 있다. 같은 부모에게서 나온 생판 다른 형제처럼 스위트 바질과 타이 바질은 차이점이 뚜렷하다.
두 바질은 향의 깊이와 강도가 다르다. 스위트 바질은 말 그대로 좀 더 미묘하고 부드러운 후추향이 있다. 보통 요리의 마지막에 넣는다. 반면에 타이 바질은 향이 강하면서 감초향을 낸다. 요리의 처음부터 넣어도 향이 살아있다.
타이 바질을 잘게 썰어 준비해 두고 다진 돼지고기, 양파 볶다가 어느 정도 익으면 타이 바질을 넣고 액젓, 굴소스, 약간의 간장, 다진 마늘, 고추를 넣는다. 여기에 준비된 찬밥을 넣고 잘 볶아준다. 태국식 바질 돼지 볶음밥은 이렇게 만든다.
뜨거운 쌀국수에도 숙주와 타이 바질 1-2줄기 넣어주면 야채의 향과 식감을 한층 올려준다. 김이 나는 국물 살짝 데쳐진 바질, 숙주와 고기 고명을 함께 먹으면 불꽃놀이처럼 다채로운 향이 입안에서 터진다. 타이 바질은 보라색 줄기가 있어 쌀국수 위에 고명으로 올려주면 색감도 살려준다.
바질의 용도는 요즘 들어 음식 외에 디저트나 음료로도 확장되고 있다. 바질과 레몬셔벗을 곁들인 에이드나 바질과 토마토를 살린 카페인 없는 음료가 메뉴 한편을 차지하게 되었다.
바질 음료의 기초 작업 중 하나는 바질로 시럽을 만드는 데 있다. 보통 시럽은 냄비에 설탕과 물을 1:1비율로 끓인다. 바질 시럽은 블랜더에 수확한 바질잎을 넣고 위의 뜨거운 시럽을 넣어 갈아 최대한 빨리 식혀주면 완성된다. 잔에 얼음을 넣고 준비된 바질시럽을 적당히 섞는다. 여기에 탄산수와 레몬을 넣고 기호에 맞춰 당도를 조절하면 향긋한 바질에이드가 완성된다.
추석 긴 연휴가 지나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5월에 심었던 스위트 바질은 10월이 되니 풍성하던 잎도 어느새 줄어들고 얇고 동그란 잎은 이제 고추잎 마냥 폭이 좁아졌다. 향도 점점 진하고 강해졌다. 그러더니 줄기 위로 바질 꽃대를 밀어 올렸다. 꽃대 옆에 붙은 꽃봉오리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모래알만 한 하얀 꽃을 살짝 움켜쥐고 있다.
우연히 바질을 검색하다 보니 10월15일의 탄생화가 스위트 바질이었다. 기상이변이 많았던 올해지만 바질은 신기하게도 딱 맞게 꽃을 피울 준비를 마친 것 같다. 바질의 꽃말이 작은 희망이라고 하듯 꽉 움켜쥔 하얀 희망을 기대해 본다. 희망과 더불어 작은 욕심도 내어 본다. 내년에는 꼭 스위트 바질과 함께 타이 바질도 심어보리라.
shef7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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