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야비야] 고달픈 비명계

나병배 기자 2023. 10. 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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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내 주류의 '공공의 적'이지만
30명 안팎 세력화 땐 무서워져
총선과 맞물려 볕들 날 올 수도
나병배 논설위원

민주당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이 고달프다. 이들의 현재 당내 포지션은 제한적이고 수세적 지위다. 당 지도부 눈밖에 나는 언행을 서슴지 않아온 데 따른 필연적 응보일 것이다. 당내 비주류 소수파로서 정치적 갈굼 당하고 있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비명계는 민주당 강성파 논리대로라면 징치나 축출 대상이다. 이런 험악한 분위기는 이 대표 체포안이 가결 정족수를 넘겼을 때 임계점을 찍었다. 여당과 정의당 표 등에 민주당 비명계 표가 합쳐진 게 체포안 통과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까닭이다. 당시 2표만 찬성하지 않았어도 단식중인 이 대표 구속영장은 자동 기각되는 수순이었다. 민주당 지도부로서는 분기탱천할 노릇이었다.

이는 그러나 반전의 서막이었다. 이후 진행된 영장심사에서 이 대표 범죄 협의에 대해 영장판사의 기각 결정이 나온 것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 주류세력 입장에서는 큰 고비 하나를 넘긴 것이고 반면에 비명계는 벼랑 끝에 몰리는 신세가 더 강화되는 빌미를 준 셈이 됐다. 결과론적으로 비명계의 체포안 찬성이 없었으면 민주당 방탄 이미지는 더 강고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 멍에의 일부라도 희석되도록 하는 데 역할을 한게 비명계였다. 아들에게 다짜고짜 돌부터 던지고 보는 게 능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다.

민주당은 원내 1당으로 거대 정당이다. 지난 대선에서 행정권력을 잃었음에도, 의회권력을 독과점하고 있는 탓에 무소불위 정당으로 각인된 지 오래다. 원내 의석의 과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어 거칠 게 없는 것이다. 우호 정당과 개인 문제로 탈당한 숫자까지 합치면 180석에 육박한다. 역대급 공룡정당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런데다 이 대표의 당 장악력은 범접불가라 할 만하다. 당내 다수가 이 대표를 옹위하는 구도이고 밖에서는 강성 지지층인 '개딸들'의 조직된 화력이 활성화돼 있어 이들 눈 밖에 나면 경을 치는 현실이다.

그런 민주당에서 비명계 길을 고수하는 것은 가시밭길을 자초하는 것이다. 그만큼 강심장의 소유자여야 하며 멘탈도 남다르지 않으면 배겨내기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자기 소신과 가치·철학이 쉽게 꺾임을 당하지 않는 듯한 비명계다. 일정한 연대체로 다져진 것은 아니나 이심전심 한배를 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비명계 의원 숫자가 족히 30명은 웃도는 것으로 보이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만일 30명이 행동을 같이한다고 가정하면 원내교섭단체로도 거듭날 수 있는 세력이어서다.

말은 그러하지만 결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지금은 그럴 계제도 못 된다. 비명계 스스로 떨어져 나오면 민주당 주류 입장에서는 힘 안들이고 체중 감량하는 셈이다. 지역구가 비는 만큼의 내년 총선 공천에 여력도 생긴다. 그것을 알면서 결별을 택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보다 비명계는 당내에서 당당하게 할말 하고 행동으로 옮길 때 빛이 날 수 있다. 이 대표 체포안 표결 당시 찬성 표를 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최소 29명 의원이 증명한다. 가결파 의원으로 몰려 곤경을 겪고 있지만, 대신 비명계 숫자의 힘을 증명하는 정치적 소득도 얻었기 때문이다. 한두 표로 특별한 안건 가부가 갈리는 사정을 감안할 때 비명계 누구라도 그 한두 표가 될 수 있는 만큼 주류세력도 비명계를 함부로 대할 수만은 없는 법이다.

내년 총선 정국과 맞물려서 비명계가 의미 있는 세력으로 주목될 것인지도 관전포인트다. 개연성은 열려 있다. 공천 배제 등으로 인해 당에서 분화되는 상황이 오면 정치적 공간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 단계에 이르면 정치결사체로 전열을 가다듬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런 가운데 거대 민주당에 대한 중도층 여론의 피로도를 받아 안을 수록 파괴력은 커지게 된다. 비명계에 볕들 날이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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