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빌라 세입자, 월세 선호 기조… "전세사기 불안 원인"

정영희 기자 2023. 10. 12.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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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KB경영연구소가 발표한 '전세의 월세 전환 가능성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된 수도권 빌라시장은 당분간 월세 전환이 지속될 전망이나 보증금 규모가 큰 중대형 아파트의 경우 월세 전환 시 주거비 부담이 세입자의 소득 수준에서 감당하기 어려워 전세제도 유지가 불가피한 것으로 드러났다./사진=뉴스1
지난해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에서 시작된 조직적 전세사기가 올 들어 전국적으로 확대되며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고금리가 지속되면 주택가격 하락 시 전세보증금 미반환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세입자들의 두려움이 커지며 월세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다. 전세사기의 주요 대상이 된 수도권 빌라시장에선 이 같은 월세 선호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나 보증금이 고가인 중대형 아파트 세입자들은 높은 주거비 부담으로 월세 전환을 주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KB경영연구소는 '전세의 월세 전환 가능성 점검' 보고서에서 이 같이 밝혔다.

지난해 불거진 전세사기와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 등으로 전세시장이 불안한 가운데 주택 매매시장도 위축세가 지속되면서 전세제도 폐지론과 소멸론 등이 부상했다. 일각에서는 공공 차원에서 전세제도를 폐지하고 월세제도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전세시장 불안으로 전세 대신 월세를 선택하는 세입자가 증가하고 주택가격 하락으로 매매시장이 위축되면서 임대차시장에서 월세가 주된 임대차 형태로 대두될 가능성도 존재하는 상황이다.

2021년 통계청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가구의 약 42.7%는 임대 주택에 거주 중이며 이 중 월세는 54.4%, 전세는 40.3%다. 금리 급등으로 전월세전환율보다 전세자금 대출금리가 높아지면서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이자를 내는 것보다 전세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전환하는 것이 유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월세전환율이란 전세금을 매달 내야 하는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되는 연간 이자율이다. 예컨대 전세보증금이 1억원인 주택을 월세로 전환할 때 전월세전환율이 5%라고 가정하면 월세는 42만원이 된다. 지난 7월 기준 서울의 전월세전환율은 5.2%였다.

최근 전세사기나 깡통 전세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면서 빌라, 다가구주택, 오피스텔 등 비(非) 아파트를 중심으로 월세 선호 현상이 심화됐다. 월세가 전세를 대체할 수 있을지 여부는 통상 세입자와 집주인의 수요 변화뿐 아니라 임차인의 월세 부담 능력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된다.

KB경영연구소는 수도권 빌라시장에선 당분간 월세 전환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세입자 입장에서 전세보증금으로 맡기는 목돈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빌라는 다른 비 아파트 유형에 비해 전세보증금 규모가 큰 편이며 거주 면적이 넓어 그동안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 비중이 70%대로 높았으나 올 6월 50%대까지 감소했다.

서울 지역 빌라의 평균 전세보증금 규모는 2억2000만원으로 이를 월세로 전환 시 매달 86만원을 내야 한다. 빌라 거주자의 상당수에 해당하는 20대와 1인 가구(소득3분위 기준)의 월평균 소득에 비교하면 각각 20%, 17%이므로 월평균 소득 100~120만원가량인 소득1분위를 제외하고 대부분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는 분석이다.

보증금 규모가 큰 중대형 아파트의 경우 월세 전환 시 주거비 부담이 세입자의 소득 수준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탓에 전세제도 유지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에서 임차로 거주하는 30-40대의 50~63%는 전세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전용면적 84㎡ 기준 전세보증금 평균은 7억원으로 월세 전환 시 매달 280만원을 지불하게 된다.

손은경 KB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상대적으로 보증금 규모가 작은 소형 아파트의 경우 이미 월세가 임대차 계약의 50%를 차지하는 등 월세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반면 중대형 아파트의 경우 월세는 전세의 대체재로서 한계가 존재하는데 전세제도가 목돈을 맡기고 향후 돌려받을 수 있어 자가 주택 마련의 디딤돌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전세 수요는 지속될 수밖에 없으며 집주인도 월세로 전환할 경우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부담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월세 전환이 확대되며 커지는 임차료 부담은 향후 주택 구매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통상 소득 대비 월세 비율(RTI, Rent to Income ratio)이 30% 이상이면 '월세 과부담'으로 정의하는데,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다방'에 따르면 1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출 항목은 주거비(48%)로 조사됐다. 월평균 소득 대비 주거비 지출 비중이 20~30%를 차지하는 가구는 38%에 달했으며 소
득의 10~20%를 주거비로 지출하는 가구도 39%를 기록했다.

전세에서 자가로 이동을 원하는 수요층을 위한 주거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 KB경영연구소의 입장이다. 2021년 주거실태조사에서 전·월세 가구의 각각 84%와 73%가 '자가 보유를 희망한다'고 답변한 만큼 상당수가 향후 자가 주택 매도 의지가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임대차시장에서 월세 전환이 확대되면 매월 지출되는 주거비가 높아지면서 목돈 마련이 어려워짐에 따라 내 집 마련 시기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

손 연구원은 "최근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양도형 임대주택은 장기 임대차 계약을 맺고 월세를 납부하면 계약 종료 시 세입자에게 주택을 양도하는 구조로 세입자는 월세를 계속 납부하면 향후 자기 집이 된다는 점에서 월세를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공공기관의 임대주택 사업이나 기업형 임대주택 사업 추진 시 월세 가구를 위한 임대주택 지원 방안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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