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이 달라지면 전화위복, 아니면 설상가상

조선일보 2023. 10. 12.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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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진교훈 후보가 예상보다 큰 표 차이로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이듬해 대선, 지방선거에서 연승했던 국민의힘은 집권 후 처음으로 선거에 참패했다. 강서구는 원래 민주당 세가 강한 곳이다. 지난 총선은 민주당이 갑·을·병 세 지역구를 모두 크게 이겼고, 대선에서도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를 앞섰다.

하지만 정부와 국민의힘이 민주당 강세 지역에서 민주당이 이겼으니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크게 잘못된 일이다. 김 후보는 지난 지방선거에선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지만 이번에는 완패했다. 이번 선거는 정부와 국민의힘의 실책이 누적된 상태에서 치러졌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 때문에 생긴 보궐선거에 김 후보를 또 공천했다. 문재인 정부 비리를 내부 고발한 김 후보를 형식 논리에 따라 공무상 비밀누설죄를 적용해 구청장직을 박탈한 법원 판결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김 후보 때문에 생긴 선거에 김 후보를 재공천한 국민의힘도 국민적 공감을 사기는 어려웠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 석 달 만에 그를 사면해 출마의 길을 열어줬다. 국민의힘은 ‘당 소속 선출직의 귀책 사유가 있을 경우 무공천한다’는 당규도 무시했다. 민주당이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낸 것을 비판해놓고 그와 똑같은 일을 한 것이다. 김 후보는 보궐선거 비용 40억원에 대해 “수수료 정도로 애교 있게 봐달라”고 했다. 이런 김 후보와 국민의힘, 윤 대통령의 모습은 오만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하루 앞두고 진교훈(왼쪽)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가 10일 서울 강서구 한 아파트 앞에서 유세 차량에 올라 유권자들에게 지지 호소를 하고 있다. 2023.10.10/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이번 선거는 기초단체장 1곳에 불과하지만, 총선을 6개월 앞두고 서울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 여야 지도부가 날마다 총출동한 것도 이번 선거에 정치적 상징성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거 승패는 계속 바뀐다. 문제는 이긴 쪽과 패한 쪽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이다. 잘 받아들이면 전화위복이 되고 잘못 받아들이면 설상가상이 된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이번 결과를 ‘고작 구청장 하나의 선거 결과일 뿐’이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내년 총선에선 더욱 엄중한 국민의 심판이 내려질 것이다. 반면 그동안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경고 신호로 받아들인다면 국민은 다시 기회를 부여할 것이다. 무엇보다 취임 이후 지금까지 이어진 윤 대통령의 국정 스타일에 대한 피로와 반감이 적지 않게 쌓였다. 이는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국민 앞에 겸허해야 한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로 그간의 온갖 입법 폭주와 괴담 선동, 가짜 뉴스 유포 등에도 면죄부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대표의 헤아리기도 힘든 각종 불법 비리 혐의에 대한 재판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여야 어느 쪽이든 선거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쪽이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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