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칼럼] “죄송한데,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거든요”
한반도라는 美 전문가
굴종하느니 싸우겠다
결의 가지면 전쟁 막고
‘전쟁이냐, 평화냐’ 구호에
휘둘리면 전쟁 못 막아
우크라이나에 이어 이스라엘 전쟁이 터지는 것을 보고 전쟁 날 만한 곳을 찾아다니는 ‘전쟁의 눈’은 정말 놓치는 곳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을 질병이 찾아가듯 전쟁은 터질만한 곳을 어김없이 찾아간다. 공격을 당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모두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근래 우크라이나는 친서방과 친러시아로 분열돼 지독한 내분 상태에 있었다. 분열된 국민이 전쟁을 두려워해 러시아가 영토를 침략해 병합하는데도 보고만 있었다. 극심한 내분은 정치 코미디 주연 배우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코미디 제작사 간부들이 국가 요직을 맡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들이 예상외로 전쟁을 잘 지휘하고는 있지만 전쟁의 눈이 보기에 이곳은 명백한 먹잇감이었다.
이스라엘 역시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 파동으로 전례 없는 국민 분열을 겪고 있었다. 군과 경찰의 현역 간부들이 정부에 공개적 반기를 들고 국방 주력인 예비군의 복무 거부 사태까지 일어났다. 도저히 이스라엘답지 않은 일이 연이어 일어나더니 결국 전쟁의 눈에 띄고 말았다. 군 최전방 초소가 테러리스트 수준의 무장대에게 털려 여군들이 줄줄이 붙잡혀 끌려가고 아기들이 떼로 참수당했다.
전쟁의 눈이 지구본을 돌릴 때 한반도에 눈길이 가지 않을 리가 없다. 조셉 보스코 전 미 국방부 중국 담당 국장은 이스라엘 전쟁이 터지자 다음 순서는 중국·대만이고 그다음이 한반도라고 했다. 그중에서 북한이 가장 악성이라고 했다. 북한 정권은 주민들 삶은 원시 수준으로 팽개친 채 온갖 핵무기 개발에만 혈안이 돼 있다. 공예품이라며 미사일 도자기를 만드는 집단이다. 김정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만 비정상 권력의 비정상 행태는 영원할 수 없으며 그 끝은 대부분 폭력적이었다. 전쟁을 막아야 할 한국은 국민이 심각하게 분열돼 있고 국가 수호의 ‘결의’도 흐트러져 있다.
지금 한국에선 북의 도발을 응징한다고 하면 ‘전쟁광’이라는 비난을 듣는다. 우리가 당해도 전쟁 날지 모르니 그냥 넘어가자는 주장이 인기를 얻어 선거에서 승리한다. 북한 공격에 천안함이 폭침당해 우리 군인과 국민 56명이 떼죽음을 당했을 때 민주당은 대북 반격은 물론이고 경제 제재도 반대하며 ‘전쟁이냐, 평화냐’는 선거 구호를 내걸었다. 그 선거에서 민주당은 승리했다고 한다. 당시 군에 간 자식들이 부모에게 ‘정부가 전쟁을 하려는데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전화했다. 이런데 북이 도발할 유혹을 느끼지 않겠나. 한반도는 전쟁의 눈이 보기에 전쟁 터지기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민주당은 2007년 정권을 잃고 80여 석 소수당으로 전락했을 때 광우병 괴담으로 대성공을 거둔 사례를 잊지 못하고 끊임없이 괴담에 매달리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전쟁이냐, 평화냐’ 슬로건 성공 사례도 잊지 못하고 있다. ‘전쟁이냐, 평화냐’는 어떤 양보를 해서라도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전쟁을 사실상 포기한 나라가 조선이다. 그 결과 전쟁도 못 해보고 나라를 뺏겼다. 그때 이완용은 ‘그래도 전쟁한 것보다는 낫지 않으냐’고 했다.
전쟁 나면 사람이 죽으니 무조건 양보해서 피해야 한다는 단순 논리로 대중을 겁주고 현혹하는 것은 전 세계 정상배들이 하는 일이다. 이들은 국민과 국가를 병들게 해 결국 전쟁으로 이끈다. 책임 있는 지도자는 ‘전쟁은 막겠지만 주권과 독립이 위협받는다면 피하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나라를 나라답게 하고 국민을 국민답게 해야 전쟁을 막는다. 주권과 자존을 지키는 일에 공짜는 없다. 용병을 쓴 나라는 예외 없이 다 망했다.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의 일상이 한순간에 파괴되는 것을 보면서 소중한 지금의 일상을 모두가 지키고 싶어 한다. 깡패가 횡행하는 세계에서 일상을 지킬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국민, 대통령, 정당, 기업, 사회가 어떤 경우에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된다. 그런 나라는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다.
세상에 전쟁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외적에게 굴종하며 살고 싶은 사람도 없다. 둘이 충돌할 때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때 굴종을 택하면 전쟁이 나고,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하면 전쟁을 막는다. 더 이상 ‘전쟁이냐, 평화냐’는 없어야 하고 휘둘리지도 말아야 한다. 그게 자신과 가족과 나라를 진정으로 지키는 길이다. 누구나 두렵다. 그 두려움을 부추기고 구차함을 유혹해 표를 얻으려는 것은 정상배 행태다. 지도자는 국민의 본능적 두려움을 넘어서서 결의를 모아가야 하는 사람이다.
전쟁의 역사는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그 명언 중에서도 정수는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가 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세계대전의 끔찍한 재앙 속에서 유럽이 신음하고 지식인 사회에 반전주의가 퍼질 때 트로츠키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에 관심이 없으시다고요? 그런데 죄송하지만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거든요.” 전쟁의 본질적 속성이 이 말에 담겨 있다. 전쟁은 자신을 반대하고 평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찾아간다. 올 테면 오라고 하는 사람들은 피한다. “이기는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고 한 이재명 대표가 깊이 새겨야 할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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