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기본과 변화

경기일보 2023. 10. 1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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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민 인천산업디자인협회 회장·인하대 디자인융합학과 교수

IMF 시대, 1997년 필자가 미술대학에서 졸업전을 마치고 교수님들을 모시는 식사 자리에서 은사께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이제는 전통적인 아날로그의 시대에서 컴퓨터로 대변되는 디지털의 시대가 열렸고 너희들은 그러한 변화에 적극적으로 편승하라.’ 그 당시에는 우리들을 위한 정성의 말씀으로는 생각됐어도 가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다만 ‘위기는 곧 기회’ 정도의 말 풀이로 생각하며 조금은 가볍게 넘겼던 기억이 남는다.

이제는 문자의 시대를 넘어 이미지의 시대로, 그 이미지의 시대는 동영상의 시대로 변화하며 유저(User)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변화에 대한 적응 능력치를 시험하고 그에 뒤처지면 큰일나고 시대의 모든 정보를 놓치는 것처럼 모든 사회시스템과 의식의 흐름들이 따라가는 것 같다. 특히 보다 세부적인 교육 영역으로 들어오면 디지털 환경이 얼마나 크고 다양하게 기존의 개념들을 뒤바꿔 놓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일차적이지만 연필은 마우스가, 포스터컬러는 프로그램 도구창이, 소통은 이메일을 넘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 화상미팅 등으로 빠르게 대치돼 변화했다. 무엇보다 전례 없는 코로나 팬데믹의 광풍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공간으로 은폐, 엄폐했고 자신의 자유 선택 의지와 상관없이 물리적 단절을 시행하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과 의미 전달을 위해 디지털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게 돼 디지털 환경의 적응과 적용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고 포스트 팬데믹 시대가 열린 현 시점에서도 우리는 물리적인 단절을 디지털 환경과 디지털 수단을 통한 변화로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며 살게 됐다. 며칠 전 수업내용의 전달을 위해 교안을 제작하고 있을 때 팬데믹 시대의 교육 수혜자인 중학생 아들이 나의 교안이 시대에 뒤떨어진 ‘글’ 중심의 재미없는 것임을 지적하고 과감히 ‘동영상’ 중심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놀리듯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물리적인 공간에서, 물리적인 사람들인 가족, 이웃들과 살아간다. 디자인의 기본적인 존재 의미도 유니버설 디자인의 거목인 빅터파파넥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타이틀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인간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변화라는 흐름의 시대에 호흡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기본적인 것을 지키며 사람다움과 아날로그다움을 확인하고 돌아봐야 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필자인 유홍준 선생의 말씀 중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정보를 모으고 판단할 수 있는 본인만의 노하우가 필요하며 그중 하나가 ‘신문 읽기’와 ‘스크랩’이라고 하신 말씀을 생각해 본다. 비록 오래 걸리고, 비효율적이며 전혀 디지털적인 흐름으로 보이지 않는 신문 읽기와 물리적 스크랩 활동을 통해 우리는 어쩌면 이 시대, 방대한 디지털 정보의 나열 속에서 나만의 의식으로 조망할 수 있는 정보를 펼쳐보고 나만의 정보 찾기와 정보 정렬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동영상의 속도감과 임팩트는 강하고 매력적으로 보이겠지만 내가 기억해야 할 정보의 습득은 보다 느리고 덜 자극적인 수단인 글(문자)들로 담아지는 것은 아닐까. 학생들과 실기수업을 진행하며 새로움에 대해 논하고 실험적인 시각방법론을 찾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자칫 우리는 기본적인 것들을 변화라는 이름 속에서 소홀히 다루며 더 큰 영감의 뿌리를 놓치고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생각이 비단 필자가 학생들과의 수업에서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 나아가 국가의 주요 순간들에서 ‘변화가 기본과 원칙을 덮음’으로 나타날 수 있는 오류와 손실이 될 수 있음으로 해석하면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사은회에 이어진 자리에서 은사님의 마무리 말씀이 귓가에 되살려진다. ‘변화에 반응하더라도 자기 자신은 유지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이며 그것은 어떠한 변화나 위기가 오더라도 자신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힘이야’라는 말씀은 비단 90년대 말의 나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2023년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더욱 중요한 말씀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앞으로 전개될 다양한 미래의 키워드들 속에서 ‘나다움과 기본’에 대해 아날로그적으로 생각해 볼 기회이자 위기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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