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45주년 김수철…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와 신명나는 놀이 한판

윤수정 기자 2023. 10. 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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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 10억 들여 두 차례 공연 펼쳐
김덕수와 연주한 ‘기타산조’ 압권
11일 데뷔 45주년 기념 공연에서 국악인 김덕수(왼쪽)와 협연하고 있는 ‘작은 거인’ 김수철. /세종문화회관

“어휴, 낯설어 죽겠네.”

11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데뷔 45주년 무대에 선 가수 김수철(66)의 첫마디에 3000여 명 관객이 까르르 웃음을 쏟아냈다. 관객에게도 이날 김수철은 낯선 모습이었다. 하의는 그가 즐겨 입던 발목 짧은 검은색 통바지인데, 상의는 연미복 차림. 뜻밖의 조화를 이룬 그의 상·하반신처럼 무대 위에는 국악기와 서양 악기, 그리고 대중가요 밴드가 뒤섞인 ‘동서양 오케스트라 100인조’가 앉아 있었다.

김수철은 이날 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자신이 지난 40여 년간 국악과 대중가요를 접목해온 곡들의 초연과 지휘에 처음 도전했다. “15년 전부터 하고 싶었지만, 기업 후원을 계속 거절당해 결국 자비로 일을 벌였다”고 했다. 이날 오후 3시와 7시, 총 두 차례 6000여 석 규모로 공연을 선보였고, 앞 공연은 전석을 소방관, 경찰, 환경미화원 등 무료 초대 관객으로 채웠다. “여러분이 제 음악을 들어 주셔서 제가 돈도 벌고, 밥도 먹고, 공부도 하고 국악 실험 녹음도 할 수 있었다. 그 은혜를 갚는 것”이라고 했다.

김수철의 전성기를 “나도야 간다~”를 외치며 폴짝폴짝 뛰던 모습으로 기억하는 이들은 “왜 45주년에 국악?”이라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수철은 1977년 데뷔 후 낸 음반 40여 장 중 25장이 국악 주제였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단편영화 ‘탈’의 주제가를 만들다 국악에 빠졌고 이후 ‘국악 대중화’를 외쳐왔다.

다만 김수철은 이날 ‘45년 무대 경력’에선 보이지 않던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88서울올림픽 주제곡으로 쓰인 ‘도약’, 영화 서편제 주제가로 쓰였던 ‘소리길’과 ‘천년학’, 2002년 한일 월드컵 주제곡으로 쓰였던 ‘소통’ 등 국악에 기반한 자작곡 총 7곡을 선보였는데, 전부 무대 공연은 첫 데뷔였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 연주 박자가 자주 어긋나고, 가야금·아쟁 등 일부 국악기의 활약 부분이 손에 꼽게 적은 것도 아쉬운 지점이었다.

그럼에도 6인분(작곡, 편곡, 지휘, 연주, 가창, 공연기획) 역할을 톡톡히 혼자 해내는 김수철의 모습은 보는 이들을 충분히 흥분시켰다. 그는 공연 중간중간 “관객 지루함을 덜겠다”며 지휘대에서 폴짝 내려와 ‘치키치키 차카차카(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 주제곡)’ ‘못다 핀 꽃 한 송이’ ‘젊은 그대’ 등을 열창했다. 그때마다 장내가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 일부 히트곡은 동료 가수의 가창으로 선보였는데 출연진 면면이 인상적이었다. ‘내일’(성시경), ‘정녕 그대를’(화사), ‘나도야 간다’(이적), ‘왜 모르시나’(백지영), ‘정신 차려’(양희은) 등 한데 모으기 어려운 이들이 그의 부름에 성큼 달려와 목소리를 보탰다. 가장 압권은 김수철이 직접 기타를 메고 국악인 김덕수의 장구에 맞춰 ‘기타산조(전자기타로 우리 가락을 연주하는 장르)’를 연주했을 때. 시작부터 기타 소리에 잡음이 섞이는 음향 사고가 났지만, 거문고를 뜯듯이 국악 리듬을 능숙하게 쫓는 김수철의 기타 연주가 관객 넋을 빼놓았다.

‘기타산조’는 김수철이 국내 최초로 만든 장르이기도 하다. 그는 이날 공연 막바지 “여러분이 우리 소리에 재미를 느꼈으면 했다. 이런 공연을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대부분 사비로 털어넣은 이 공연 제작비만 10억원. 축하만 받아도 충분했을 활동 45주년 기념일에 누구도 시키지 않은 새 도전을 택한 것이다. 이 작은 거인의 다음 도전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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