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아시안게임 ‘동상이몽’
며칠 전 다녀온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강제로 중국 국가(國歌)를 외우게 됐다. 경기장에서 하루에 많게는 7번 들었다. 체류한 19일 동안 총 100번은 들은 것 같다. 이것은 아시안게임인가 중국체전인가.
중국은 그동안 아시안게임 등 스포츠 무대를 줄곧 ‘대국굴기(大國崛起)’의 현장으로 애용해 왔다. 안방에서 치른 이번 대회에서도 그야말로 ‘초격차’를 과시했다. 각 종목 대표 선수들이 출격해 금메달 201개, 은메달 111개, 동메달 71개 등 총 383개의 메달을 쓸어 담았다.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자국이 작성한 종전 최다 금메달 기록(199개)을 경신하는 등 왕성한 먹성을 자랑했다. 1982년 뉴델리 대회에서 메달 종합 순위 1위에 오른 이래 41년간 정상을 놓치지 않고 있다. 2위 일본(금 52, 은 67, 동 69)과 3위 한국(금 42, 은 59, 동 89)을 합쳐도 중국에 안 된다. 아시안게임은 사실상 한·중·일의 3파전이지만, 중국은 이 중에서도 ‘공룡’이다.
그럼 일본에 아시안게임은 무엇일까. 스포츠 강국이지만 일본은 아시안게임을 ‘홀대’한 지 제법 됐다. 정확하게는 ‘선택과 집중’에 가깝다. 일본은 내년 파리 올림픽을 위해 젊은 2진급 선수를 주로 내보냈다. 축구, 배구, 야구 등 인기 구기 종목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차피 세계를 상대할 것이기에, 점차 아시안게임을 경쟁보단 경험의 공간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다음 2026년 아이치·나고야 대회 개최국이니 중국 집안 잔치에서 굳이 힘 빼지 않겠다는 의도도 엿보였다.
반면 우리에게 아시안게임이란 어떤가. 순수한 열정의 장이기보단 대회 1위 입상자에게 주어지는 병역특례 때문에 ‘이번엔 어느 유명 선수가 면제를 받을까’ 같은 잿밥에 더 관심이 쏠린 지 오래다. 이를 노리고 고액 연봉의 인기 프로 남자 선수들도 대거 출동한다. 규정이 있고, 그걸 활용하겠다는 이들은 죄가 없다. 다만 이로 인해 묵묵히 땀 흘린 타 종목 챔피언들의 스포츠 정신마저 희화화된다. 군 복무는 귀찮고 방해되는 행위라는 인식도 은연중에 퍼지고, ‘왜 남자만 갖고 그러냐. 여자도 군대 가라’는 성(性) 대결로까지 번진다.
아시안게임은 계속될 것이고, 계속되어야만 한다. 평소엔 으르렁거리다가도 스포츠로 하나 된 한·중·일을 바로 옆에서 보며 ‘한·중·일이 정치·사회적으로도 연합되면 얼마나 강력할까’라는 상상을 해보곤 했다. 하지만 1973년, 정확히 50년 전 한국의 위상과 스포츠 경쟁력이 취약했을 때 만든 병역 특례 제도는 이대로 지속될 순 없다. 병역 특례를 전면 면제보단 특정 연령까지 늦추게 해주는 개념 등 변화가 필요하다. 아니면 3년 뒤 우리는 “이번엔 누구 차례야? 그 선수가 면제됐어?”라며 또 손가락질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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