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휘의 시네필] 영화와 현실이 교차하는 메타시네마…자본 검열시대에 던진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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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의 '거미집'(2023)은 영화촬영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이것은 원하던 구상대로 작품를 매듭짓지 못한 감독의 좌절감인가, 성공에 대한 안도인 것인가? 권력 대신 자본이 사실상 영화를 검열하고, 극장의 쇠락으로 다들 영화의 위기를 논하는 지금, '거미집'은 창작자로서 김지운이 던지는 이 시대에 대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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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의 ‘거미집’(2023)은 영화촬영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김열 감독(송강호)은 꿈을 꾸고는 결말을 바꿔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제작자는 반대하고 바뀐 각본은 퇴폐적·반체제적이라는 이유로 문공부의 결재를 받지 못하지만, 감독은 이틀의 말미를 벌어 기습적인 재촬영을 감행한다. 순조로운 듯했던 촬영은 배우들 저마다의 잡다한 사생활, 검열을 위해 제작사를 방문하는 문공부 관료와 엮이면서 현장은 수습하기 어려운 아수라장으로 치달아간다.
영화는 흑백과 컬러를 교차시키며 두 개 작품이 한 편 안에 공존하는 액자식 구성을 취한다. 촬영 진행 중인 치정극과 그 영화를 찍는 현장에 관한 영화라는 이중의 포개짐. 신성필름이라는 제작사의 스튜디오에서 인공 세트를 이용해 찍는 흑백영화 ‘거미집’은 서슬 퍼런 검열이 작동하는 와중에도 굴욕과 수모를 감수하고 애써 자기 색을 지켜내려 한 한국영화 고전기 감독들에 대한 향수의 산물이다.
산통을 깨듯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이민자(임수정)의 칼날부터 비오는 와중에 창문 밖에서 안을 엿보는 시선, 피아노 교사인 남성과 불륜관계로 중산층 가정의 질서를 교란하는 여공의 관계는 김기영의 ‘하녀’(1960)를, 나선형의 계단을 통한 상승과 추락의 대비 등은 이만희의 ‘마의 계단’(1964)을 상기시킨다. 이 작품에서 김지운 감독은 그 시대의 거장과 자신을 동일시하기에 이른 모양이다. 이러한 동일시는 영화의 중요한 함의를 포함한다.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와 실제 현실을 아우르는 메타시네마적 통합은 점차 극중극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음이 드러나면서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한유림(정수정)에게 치근덕대는 강호세(오정세)의 바람기부터 해서, 금고가 있는 윗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재촬영에 필요한 시간과 제작비를 부탁하고자 사무실로 오르는 계단과 등치되고, ‘쁠랑세캉스’(원신-원쇼트)로 찍겠다는 결말의 화재 장면은 김열의 스승인 신감독(정우성)이 화재로 죽었다던 과거사와 연결된다. 트뤼포의 ‘아메리카의 밤’(1973)처럼 ‘거미집’은 영화와 삶의 연관 관계에 대한 드라마이자 상호침투성에 대한 탐구로 읽힌다.
‘조용한 가족’(1998)과 ‘반칙왕’(2000)에서처럼 김지운 영화에서 소통 단절과 통제 불가능 상황은 희극적 웃음의 원천이 된다. 그 중심에 주인공 김열이 있다. 그가 사랑하는 건 오직 영화일 뿐인데, 모두 기피하고 반대하며 방해한다. 그런 가운데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미도(전여빈)는 세트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배경으로 등장하고, 김열과 미도의 대화는 고해성사하는 고해소에서 이뤄지는데 영화에 대한 그의 집념이 종교적인 수준임이 암시된다.
걸작을 완성하겠다는 김열 감독의 열망이 성공한 걸로는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괴기스러운 엔딩으로 뒤바뀐 채 개봉하고, 주변은 환호하는 가운데 김열은 혼자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이것은 원하던 구상대로 작품를 매듭짓지 못한 감독의 좌절감인가, 성공에 대한 안도인 것인가? 권력 대신 자본이 사실상 영화를 검열하고, 극장의 쇠락으로 다들 영화의 위기를 논하는 지금, ‘거미집’은 창작자로서 김지운이 던지는 이 시대에 대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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