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간신열전] [205] 인물(因物)
물(物)을 흔히들 사물이나 물건(thing)으로 한정해서 번역한다. 그러나 사전을 찾아보면 사물 외에도 일,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심지어 동사로 ‘살피다’ ‘헤아리다’는 뜻도 있다.
선(善) 또한 마찬가지이다. 기존 번역서들은 대부분 善자만 나오며 무조건 ‘착한’으로 옮긴다. 그래서 유능한 사람을 뜻하는 선인(善人)도 기계적으로 ‘착한 사람’으로 옮긴다. 선(善)이란 ‘잘(good, able)’을 뜻한다.
인(因)은 ‘원인’이라는 뜻 외에 ‘~를 바탕으로 삼다[據]’는 동사로 많이 쓰인다. 그래서 공자건 노자건 학파를 가리지 않고 모두 인물(因物)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그런데 기존 번역서들을 보면 잘해야 ‘물에 근거해’ 정도로 옮기니 일반 독자들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인물(因物)은 크게 보면 ‘외부 사물을 바탕으로 삼아’ ‘일을 바탕으로 삼아’ ‘백성들을 바탕으로 삼아’ 등으로 옮길 수 있다. 이 중에서 뒤의 둘은 다름 아닌 ‘사를 버리고 공을 높이는[去私貴公]’ 마음가짐을 향한 출발점이다.
‘노자’와 ‘주역’ 풀이로 유명한 왕필(王弼)은 특히 이 표현을 자주 썼다. 예를 들어 ‘노자’ 풀이에서 왕필이 말한 ‘인물이용(因物而用)’이란 백성들이 원하는 바에 바탕을 두고서 권력을 써야 한다는 말이고 ‘인물이언(因物而言)’이란 백성들이 듣고자 하는 바에 바탕을 두고서 말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도적의 우두머리가 아니라 적어도 공적인 조직의 지도자라면 인물(因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민주 국가 국민들은 인물(因物)하는지 여부로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사서삼경 중 하나인 ‘대학’에 나오는 친민(親民) 또한 인물(因物)과 다르지 않다. 흔히 “백성과 친해야 한다”고 옮기니 그 뜻이 전달될 수가 없다. 친(親)이란 제 몸과 같이 여긴다는 뜻이다. 애(愛)보다 훨씬 강한 뜻이다. 수확의 계절이라는 가을에 국민들 마음이 더 헛헛한 것은 인물(因物), 친민(親民)하는 지도자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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