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멀티플렉스를 넘어 영화제의 가능성
여름에 이어 추석 극장가도 영화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싶었다. 관객이 예년보다 극장을 적게 찾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난해보다 못했다. 코로나19 엔데믹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올 연말에도 극장가의 상황은 그렇게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 원인으로 티켓가격 상승과 고물가, 여기에 동영상 플랫폼의 확장에다 코로나19로 한국영화의 투자경쟁력이 약화한 점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본다면 이는 영화의 위기가 아니라 영화관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단관 개봉관이 아니라 멀티플렉스영화관의 위기다. 한때 한국영화의 성장지표가 멀티플렉스였지만 그것이 달라진 미디어환경에서 K콘텐츠의 발목을 잡는 셈이 됐기 때문이다.
멀티플렉스는 대량생산에 대량소비라는 20세기 포드시스템에 더 알맞았다.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영화관에서 동시에 영화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꼭 봐야 하는 영화라면 관객들에게 유효했지만 그렇지 않다면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전 국민이 같은 영화를 동일한 관람환경에서 접하는 것은 영화적 다양성을 위축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더 나가 문화적 획일성의 조장을 의미했다. 관객 수로 박스오피스 순위를 정하는 프랑스에서도 한국의 1000만 관객 동원 영화에 우려를 표하고는 했다. 여하간 멀티플렉스를 중심으로 1년 관객 2억명을 돌파하던 극장가는 이제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맞게 됐다.
이런 가운데 영화제가 부각되고 있다. 희소성과 한정판의 심리관점에서 대단히 매력적인 속성이 있어 멀티플렉스는 물론 OTT와도 완전히 차별화해서다. 원래 사람은 희소한 대상에 가치를 더 부여하고 소유하거나 누리려는 마음이 강해진다. 더구나 시간제한이 있게 되면 그 열망은 더욱 솟구치게 된다. 민디 와인스타인은 '한정판의 심리학'에서 "다른 사람들의 선망과 존경 그리고 남들과 다른 독특함을 추구하는 이들은 희소성에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이러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영화에 적용해볼 수 있다. 영화제에 출품한 영화들 자체도 희소하지만 각 프로그램은 물론 영화인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관심을 자극한다. 더구나 국제영화제라면 평소 더욱 보기 힘든 해외 영화인들을 접할 수 있어 가치가 배가된다. 여기에 단 며칠에 한정된다고 한다면 꼭 가야 하는 곳이 된다.
어려운 상황에서 출발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관의 위기시대에 영화의 가능성을 새롭게 확인해주고 있다. 강력한 경쟁자로 등극한 OTT의 부상 속에 특히 커뮤니티비프(BIFF)가 당연한 대안으로 부각됐는데 이것에는 대면성과 참여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관객이 주도하는 점이 매우 바람직하다. 감독과 배우, 작가 등이 상영공간에 찾아가 직접 대면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관객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주도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수동적인 관객으로 머무르는 영화관 문화와 달리 영화인들도 새로운 자극이 된다.
아울러 동네방네비프는 찾아가는 동네 곳곳에서 주민의 일상공간으로 영화관 서비스를 통해 영화관의 불편한 권위주의를 해소하고 있다. 멀티플렉스에서는 볼 수 없는 영화를 다양하게 골라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포인트인 데다 사람과 사람이 같이 영화를 매개로 거주지에서 다양하게 격의 없이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이런 대면과 참여감, 그리고 주도적 만족감이 주는 효과가 큰데 안타깝게도 영화제 관련 예산이 축소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그것은 영화산업은 물론 국민의 문화향유 열망과 반대로 가는 것이다. OTT는 시대적 대세 흐름에 따라 번창할 것이다. 이미 번창한 곳보다 번창해야 할 곳에 정책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비대면 서비스가 창궐할수록 대면의 소통과 협력의 주체적 문화가 오히려 희소한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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