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이 키운 선거'에서 국민의힘 참패…'김기현 체제' 흔들릴까?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내년 총선 전초전으로 평가받은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낙승을 거뒀다. 민주당에서는 이재명 대표 체제가 공고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국민의힘은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이 점찍은 후보를 내세웠다 돌아선 수도권 민심을 마주하게 됨으로써 현 지도체제나 당정관계에서 변화를 마주하게 될지 주목된다.
진교훈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1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최종 개표 결과 56.5%의 득표율로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39.4%)를 17.1%포인트(P)차로 따돌리고 강서구청장에 당선됐다. 최근 강서구 선거결과를 보면 지난해 대선에서는 민주당이 2.2%P 앞섰고, 같은 해 구청장 선거에서는 국민의힘이 2.61%P 앞섰다.
이재명 대표는 승리 확정 후 페이스북에 "국민의 위대한 승리이자 국정실패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라며 "민주당의 승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의 각성과 민생 회복을 명하는 국민의 매서운 회초리"라고 의미를 기렸다.
국민의힘은 유상범 수석대변인 명의로 발표한 입장문에서 "강서구민 여러분의 엄중한 선택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더 고개를 숙이고, 더 겸손한 자세로 국민 여러분께 먼저 다가가는 국민의힘이 되겠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오직 '민생'만 바라보며 비정상의 정상화, 자유 민주주의 복원, 민생 경제의 회복을 앞당기기 위해 앞으로 더욱 정진하겠다"며 "따끔한 질책을 무겁게 받아들여 개혁 과제를 신속히 이행하고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했다.
결과를 예감하기라도 한 듯 개표 전부터 서울 강서구에 각각 마련된 양당 선거캠프의 분위기는 극명하게 갈렸다. 진 후보 캠프에는 홍익표 원내대표, 정청래 최고위원 등 민주당 지도부가 대거 참석한 반면 김 후보 캠프에 나타난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철규 사무총장뿐이었다.
이번 보궐선거는 김 후보가 지난 5월 대법원에서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확정 판결을 받아 직을 상실하며 발생했다. 기초자치단체장 한 자리를 놓고 벌어진 선거의 판을 키운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국민의힘이 불리한 것으로 여겨지는 지역에서 치러지는 선거, 그것도 여당 소속 단체장의 직위 상실로 치러지는 보궐선거의 공천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고민에 빠진 가운데 윤 대통령은 김 후보를 광복절 특사로 전격 사면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인 지난달 17일, 국민의힘은 경선을 거쳐 김 후보 공천을 확정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정우택‧정진석 의원을 선대위원장에 임명하고, 권영세‧안철수 의원, 나경원 전 의원을 상임고문에 위촉해 '메머드급 선대위'를 꾸리며 선거전에 전력을 다했다. 자당 의원을 동별로 분산배치하며 '총동원령'도 내렸다.
민주당도 홍익표 원내대표, 정청래 최고위원 등 지도부가 선대위에 직접 참여하고, 의원들을 상임위 기준 20개 조로 나눠 선거운동에 투입하며 맞불을 놨다. 단식으로 입원했던 이재명 대표도 퇴원 후 첫 일정으로 지난 9일 진 후보 지원유세에 나서 "압도적으로 당선시켜 국민의 무서움을, 이 나라의 주인이 진정 국민임을 여러분께서 증명해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정권 심판을 강조했다.
이런 구도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이번 선거에 '총선 전초전'이라는 꼬리표까지 붙였다. 패배한 당의 지도부가 책임론에 휩싸이며 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패배 책임론? '대통령이 잘못했다'는 말이라 나오기 어렵다"
이번 선거 결과와 관련해 먼저 눈이 가는 곳은 패배한 국민의힘이다. 앞서 당 안팎에서 두 자릿수 이상 참패로 싸늘하게 식은 수도권 민심을 확인하게 될 경우, 현 '김기현 지도부' 대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총선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기 때문.
그러나 일단 당내 중론은 '현 지도부 유지' 쪽으로 보인다. 친윤계 중진으로 윤석열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권영세 의원은 전날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보궐선거 하나를 갖고 이 당이든 저쪽 당이든 흔들리는 것은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라며 "지도체제가 자주 바뀌는 정당 중에 제대로 되는 정당이 없다"고 말했다.
나경원 전 의원도 지난 5일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강서구는 전통적으로 현재 현역 의원이 모두 민주당이고, 16년 동안 사실상 민주당 구청장이었다. 사실은 좀 어려운 곳"이라며 "이걸 총선의 바로미터로 바로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고 이번 선거 의미를 축소했다.
그럼에도 지난 8월 국민의힘 연찬회에서부터 일찌감치 '수도권 위기론'을 주장하며 지도부에 압박을 가했던 의원들의 목소리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 안철수 의원은 "수도권에서 승리하려면 인재 영입과 함께 제대로 된 경제 정책, 특히 산업 정책이 필요하다"고, 윤상현 의원은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찍겠다는 여론이 훨씬 더 높다. 좀 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당내 분위기와 관련, 국민의힘 한 의원은 이날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책임론이 일어날 정당이 아니다. 책임론이 일 정당이었으면 애초부터 선거에 (후보) 공천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책임론은 당 외곽에 있는 사람들만 꺼낸다. 그걸 띄우고 싶어 하지만 호응이 없다"고 전했다.
이 의원은 특히 "김 대표를 보호하자는 것이 아니다. 책임론이 일면 '대통령이 잘못했다'는 말이 된다. 삼척동자도 다 알지 않나"라며 "책임론이 나오면 당이 총선에서 이길 확률이 높아지겠지만 당분간은 어렵다"고 했다. 다만 그는 "총선 직전까지도 지지율이 안 오르면 그때 가서는 모른다"고 여지를 남겼다.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도 "우려스러운 상황에 대한 인식 공유 정도만 나올 것 같다. 문제를 제기할 만한 수도권 의원이 몇 명 없다"며 "김 대표도 책임론을 빠져나가기 위해 중진을 대규모로 투입하고 총력전을 한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당정관계에 대해서도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갑자기 '대통령님 안 돼요'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더 우려스럽다"고 했다.
장 소장은 나아가 "공천이나 선거운동을 다 용산이 주도한 것 아닌가"라며 "당에서 위기감을 느끼기보다는 대통령실에서 위기감을 느껴서 국정기조를 바꿔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국정기조를 바꾸려면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며 "그게 국정기조를 바꾸느냐 안 바꾸느냐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선거 패배에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대통령 책임론이다. 여론이 어떻게 형성될지 모르지만 이 선거가 결국 대통령 얼굴로 치른 선거"라며 "대통령에 대한 책임이나 비판이 형성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김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가 책임을 떠안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여지를 뒀다.
한편 낙승을 거둔 민주당에서는 검찰의 구속영장이 기각돼 활동 반경이 넓어진 상황에서 단식 투쟁을 마치고 당무 복귀를 앞둔 이 대표의 입지가 한층 더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당 일각에서는 오히려 이번 승리의 축배가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비명계 인사인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선거 당일 아침 불교방송(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승리한다면) 당장 지도부 권한을 강화하는데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겠지만, 이기는 당은 페니실린 주사를 맞은 격이 돼서 오히려 당의 변화를 선택하지 않고 현재의 체제에 안주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래서 오히려 총선에 악재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인다"고 경고했다.
이재명 대표는 다만 보선 승리 확정 후 SNS에 쓴 글에서 "한때 집권당이던 저희 민주당의 안일했음과, 더 치열하지 못했음과, 여전히 부족함을 다시한번 성찰한다"며 "우리 안의 작은 차이를 넘어 단합하고, 갈등과 분열을 넘어 국민의 저력을 하나로 모아,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와 국민의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해 가겠다"고 당의 혁신과 단결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냈다.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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