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대통령 리스크’, 국힘은 말 못하는 선거 후유증
이상하고 유별난 강서구청장 보선
총선 승패는 대통령 지지율 따라 출렁
지금처럼 지지층만 보다간 민심 놓칠 것
그런 말이 이번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은밀히, 그러나 끈덕지게 나왔다. 물론 표면적으론 윤석열 정권 심판론 대 이재명 거야(巨野) 심판론, 막판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명수 대법원’ 심판론까지 맞붙은 선거였다. 말 잘하는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국민의힘 강서구청장) 후보가 김태우인가, 사실상 윤석열인가” 외쳤다. 대통령이 김태우를 사면해 공천에 이르게 했다는 의미였을 터다.
민주당은 웃어도 마음놓고 웃을 수 없다. 친명(친이재명)계를 빼놓고는 오히려 이게 아닌데 싶은 눈치다. 국민의힘도 겉보기와 달리 진심으로 낙담한 것 같지 않다. 이겼다고 하늘을 쓰고 도리질하는 저 당이 저대로 저렇게 폭주하면 내년 총선에선 필패할 공산이 크다. 우리 국민은 여당이건 야당이건 오만한 정치를 반드시 심판하기 때문이다.
국힘이 여당답게 거듭나려면 이번에 패한 게 백번 다행이다. 당과 대통령실의 기울어진 관계부터 바로 세우는 게 최우선이다. ‘깜’도 안 되는 장관 후보자, ‘용산 출마자’를 내려 보내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비상지도체제로 바짝 정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났으니 남들 안 보는 데선 되레 만세를 부를 일이다.
그러나 이런 예상은 상식적 전망일 뿐이다. 이기든 지든, 이 당이나 저 당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을 듯하다는 점에서 우리 정치는 이미 일반 국민의 상식을 벗어났다. 바뀌기는커녕 지금까지 해 온 대로, 심지어 더욱 가열찬 직진을 할 것 같다. 그게 국힘의 사실상 당수인 윤 대통령의 스타일이고, ‘나는 겁이 없다’고 자서전에 썼던 이재명 스타일이다.
이재명은 ‘개딸 전체주의’를 이용해 사사건건 정부의 발목을 잡으면서 당을 친명 일색으로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윤 대통령에게 ‘윤빠’는 없지만 ‘정치 고관여층’이라는 강성 지지자들이 있다. 지난달 22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9월 국정수행 지지율은 32%였다. 하지만 “평소 정치에 관심 많다”는 고관여층 응답만 보면 긍정 평가는 43%까지 올라간다.
윤 대통령이 ‘법과 원칙의 권위주의’를 밀어붙이는 것도 이들 지지층을 믿기 때문일 터다. 검경과 사정기관을 동원해 지난 정권의 파행을 파헤치고, 공산 전체주의를 비난하며 난데없는 이념전을 펼쳐도 정치 고관여층은 윤 대통령의 국정 방향이 옳다며 애국적으로 지지한다.
그럼에도 개딸이 전체 국민으로 보면 한줌이듯, 정치 고관여층도 다수라 할 수 없다. 이번 보선의 의미는 애써 깎아내려도 어쩔 수 없지만 내년 총선은 나라의 명운을 가를 수 있다. 여당이 또 질 경우, 윤 대통령은 바로 레임덕에 들어설 공산이 크다.
총선 승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경제보다 대통령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하면 야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떨어진다는 것이다(문우진 아주대 교수 2022년 논문). 집권 기간이 길어질수록 여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줄고 야당 후보의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지지율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않는 한, 시간이 갈수록 여당의 총선 승리 가능성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심리적 주기가 짧아지면서 정권 피로도 역시 가속적으로 높아지는 현실에선 더욱 그렇다.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는 세상이 다 안다. 그러나 국힘에 ‘대통령 리스크’가 있다는 사실을 대통령에게 말할 사람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민심을 살피고 인사검증을 꼼꼼히 해낼 민정수석은 없앴으면서 대통령 친인척을 감시하는 특별감찰관은 두지도 않고, 참모가 무슨 말을 하면 화부터 버럭 내는 것으로 유명한 윤 대통령에게 김건희 여사 말고 누가 감히 할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통령 지지율을 높이는 방법은 있다. 쉽게 올리자면 대통령이 ‘민족주의 카드’를 휘두르거나 반대세력이 이념적 정체성으로 정부에 맞설 때 강하게 맞대응하는 것이다.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사퇴시키는 등 민감한 정치현안에 민심을 반영하거나, 더 바람직하게는 대통령 자신이 정적을 포용하고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해 국민에게 감동을 줄 때 지지도는 올라간다. 지금처럼 돌진만 하다가는 ‘무도한 전(前) 정권 심판’ 마무리도 못한 채 대통령이 된 뜻 한번 펼쳐 보지 못하고 임기를 마칠 수도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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