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매너리즘 가득한 재탕 사골국

홍수민 기자 2023. 10. 11.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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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회귀가 아닌 퇴보 수준으로 전작을 답습한 후속작
- 유비소프트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유비소프트 간판 타이틀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라 하면 많은 게이머가 '신뢰의 도약'이나 '목격자가 없으면 암살' 등 유명한 밈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높은 곳에서 완충재 위로 뛰어내리는 암살단의 의식이 에지오가 부활시킨 우아한 고전미라면, 있던 목격자를 없애버리는 호쾌한 대량 학살은 오리진부터 시작하는 신화 3부작의 트렌디함이 묻어난다.

두 가지의 밈이 상징하듯 어쌔신 크리드의 팬층은 크게 둘로 나뉜다. 에지오, 켄웨이 사가에서 그러했듯 기존의 잠입과 암살 액션에 향수를 느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신화 3부작의 시원시원한 오픈 월드 RPG를 사랑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둘 모두 나름의 재미가 있으니 맛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중도파도 존재한다.

암살자보다는 전사에 가까워졌지만 신화 3부작은 시리즈 인기를 크게 견인했다.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은 부진하던 시리즈에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으며,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는 시리즈 역사상 발매 첫 주 최다 판매 기록을 경신하며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근본은 어쨌든 어쌔신, 혹은 하사신이라 불리는 암살자 집단 아닌가.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가 "초심 회귀", "암살을 보여주겠다"를 선언하자 많은 이들이 열광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정식 출시일을 일주일 가량 앞당긴 것도 자신감의 발로로 보였다.

 

장르: 잠입 액션 어드벤처



출시일: 10월 5일



개발사: 유비소프트



플랫폼: PC, 콘솔



■ 명백히 퇴화한 전투 시스템

- 전투 정말 이게 최선이었니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뚜껑을 열어 본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는 실망스러웠다. 게임이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다. 실망은 개발사의 게으름 탓이다. 

애초에 스텔스 액션으로의 회귀를 천명했으니 잠입과 암살 위주의 플레이를 유도할 것은 충분히 예상했다. 기자는 중도파다. 무쌍 플레이도, 무소음 암습 플레이도 모두 좋아한다. 그러나 이전 시리즈에서 전투 요소만을 삭제한다는 안일한 방식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분명 출시 전 발표했던 대로 레벨이나 스킬 등 RPG 요소를 없애긴 했다. 그런데 모든 전투 스킬이 삭제된 상태로 어설픈 소울라이크식 패링과 회피를 반복하게 될 줄은 몰랐다. 마치 정면 전투 하지 말라고 칼 들고 협박하는 듯, 휘적휘적한 전투 모션은 처참하고 타격감은 지루했다.

- 단조로운 암살 모션

정면 전투의 재미를 삭제한 것은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암살이라도 성의껏 만들어야 할 것이 아닌가.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의 암살은 마치 그래픽이 업그레이드된 어쌔신 크리드 1을 연상시킨다. 신화 3부작이야 방향성이 다르다고 해도 기껏 시리즈를 쌓아가며 발전해 온 암살 시스템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

피니시 액션 등 암살 모션에 집중하거나, 암살 도구 선택지를 늘리거나, 반격 살해나 연속 살해 등 소위 뽕을 차오르게 하는 요소를 투입하는 등 개발사에게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다. 하고 많은 선택지 중 고른 것이 고작 1의 답습이라니, 그 당시야 혁신이었고 참신함이었지만 지금 와서는 재탕, 삼탕 끓인 사골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구작조차 이렇게 모션을 대충 뭉개지는 않았다. 모든 동작이 암살단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느릿느릿하다. 동작 입력에도 곧장 반응하지 않아 적에게 들키는 황당함을 연출한다. 특징이라던 파쿠르 모션은 유니티만도 못하다. 대체 어디서 찾아 온 근본이란 말인가.

 

■ 근본이 실종된 스토리

- 바심과 꿈 속 지니(?)

자유를 추구하는 암살단과 통제를 추구하는 기사단, 두 집단의 대립 속에서 인간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주인공과 그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았다. 환상적인 고증의 배경과 맞물려 말도 안 되지만 현실 어디엔가는 등장 인물들이 직접 살아 숨 쉴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생각해 보면 "에지오 죽고 나서는 정으로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기 있는 에지오를 비롯해 어쌔신 크리드에는 참 매력적인 주인공들이 많았다. 이 시리즈의 오랜 팬이라면 엄청난 게임성과 전략성에 욕심부리진 않더라도, 통통 튀는 인간적인 주인공과 몰입감 있는 내러티브 정도는 기대했을 것이다.

심지어 전작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던 바심이 주인공이라 더욱 그랬다. 전작에서의 비호감을 뒤엎을 정도로 매력적으로 묘사되거나, 적어도 유저가 감정이입할 정도의 캐릭터성과 서사는 챙겨줄 줄 알았다.

- 선형적이고 전형적인 메인 스토리

플레이한 소감은 "전작과 스토리라인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전작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발버둥친다"였다. 물론 전작을 플레이한 유저라면 의도적으로 모호하고 흐리게 표현한 연출과 대사를 보며 어떤 식으로 상황이 돌아가는지 대강 유추할 수는 있다. 바심이 계속 시달리던 꿈 속 지니의 정체라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이 게임의 유저가 모두 전작을 플레이 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아무리 전작 DLC로 개발을 시작한 작품이라고 해도 그렇지, 단독으로 이해는커녕 이 인물이 왜 이러고 있는지 상황 파악조차 힘든데 재미가 있을 리 없다.

시리즈 전통이었던 현대 파트가 아예 사라진 것도 당황스럽다. 애초에 애니머스를 통해 현대와 과거가 교차하는 것이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특징 아니었던가. 오프닝에 등장하는 윌리엄 마일즈를 제외하면 현대에 대한 언급이나 스토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작을 플레이한 사람조차 의문이 드는 구성이다.

 

■ 재미는 있는데 발전은 없다

- 고증은 여전히 훌륭하다

재미가 없는 건 아니다. 구구절절 까놓고 대체 이게 무슨 말이냐고 하겠지만, 어쌔신 크리드의 스텔스 액션에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또한 그냥저냥 나쁘지 않게 즐길 수 있다. 신화 3부작이 취향이라면 아쉬울 수는 있겠다.

바심 특유의 소매치기 시스템도 나름 괜찮은 재미였다. 소매치기 실패 후 도망치고 있으면 현자 타임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짤짤이 소매치기만으로도 충분한 재화를 파밍할 수 있다. 벽 너머를 투시해 중요 오브젝트와 적을 볼 수 있는 '독수리의 눈' 능력도 쏠쏠하게 사용했다.

다만 한정적인 크기에도 텅텅 빈 바그다드 맵, 쓸데 없이 흩어 놓은 동기화 지점, 반복적이고 의미 없는 퀘스트, 번거롭고 리턴이 부족한 아이템 파밍, 유명무실한 악명 시스템 등이 장점을 깎아 먹는다. 시리즈에 익숙하다면 메인 퀘스트가 대략 10시간 정도인데, 사이드 퀘스트마저 빈약하니 이조차 아쉽게 느껴졌다.

- 파쿠르는 모션도 그렇고 반응 속도 자체가 느리다

조금 더 암살 모션이나 도구에 공을 들였다면, 단순히 전투 요소를 삭제하지 않고 유저에게 선택권을 줬다면, 그게 불가능해서 파쿠르라도 멋지게 보여줬다면, 하다 못해 스토리와 컷신을 섬세하게 깎아 냈다면, 스태미나처럼 불쾌감만 주는 요소를 없애버렸다면… 조금만 더 신경 썼다면 훨씬 괜찮은 게임이었을텐데.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를 사랑하는 유저라면 '만약의 만약'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형편 없는 게임이라서가 아니라, 더 이상의 발전이나 새로운 시도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굉장히 슬픈 후속작이었다. 의무감에 플레이했지만 다음 시리즈를 향한 기대는 커녕 일종의 절망감마저 느껴진다. 제발 다음 시리즈에서는 발전한 모습을 보길 바란다.

장점

1. 검증된 스텔스 액션의 맛



2. 생생한 고증으로 구현된 9세기 바그다드



3. 준수한 그래픽과 컷신



단점

1. 매력 없는 주인공과 지루한 서사



2. 전작 플레이 없이는 이해 힘든 전개



3. 발전 없이 퇴보한 전투 및 암살 시스템



 

suminh@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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