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젖과 꿀이 흐른다던 ‘가자’

김태훈 논설위원 2023. 10. 11.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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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팔레스타인 자치 구역 가자(Gaza)에서 벌어지는 피의 분쟁 역사는 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경에서 ‘젖과 꿀이 흐른다’고 했던 가나안의 주인 자리를 놓고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과 에게해를 통해 들어온 해양 민족 블레셋인이 맞붙었다. 가자는 블레셋인들이 가나안에 세운 도시였다. 구약의 유대인 판관 삼손을 죽음으로 내몬 델릴라는 가자에 살던 블레셋 사람이다. 사울왕은 블레셋과 싸우다 전사했고 다윗은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무릎 꿇린 전쟁 영웅이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때문에 2000년간 살던 땅에서 쫓겨났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딱 맞지 않는다. 용맹한 블레셋인은 기원전 4세기 동방 원정에 나선 알렉산더에게 저항하다가 패퇴한 뒤 역사에서 사라졌다. 지금의 팔레스타인 민족은 블레셋의 후예가 아니란 뜻이다. 그 땅에 팔레스타인이란 이름을 붙인 이는 2세기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였다. 유대인 반란을 평정한 뒤 징벌로 그들을 고향에서 내쫓고 팔레스타인(블레셋의 땅이란 뜻)이라 부르게 한 게 시초다.

▶가자 분쟁의 불씨는 1948년 신생국 이스라엘과 아랍연합의 1차 중동전쟁에서 다시 타올랐다. 이 전쟁으로 서안 지구(West Bank)는 요르단 차지가 됐고 가자는 이집트 수중에 떨어졌다. 이스라엘이 1967년 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승리한 뒤 이 두 곳을 전리품으로 챙기고 여기에 이스라엘 정착촌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인 인티파다(봉기)가 불붙었다.

▶하지만 가자와 서안 지구는 그 후 다른 길을 갔다. 인티파다로 자치권을 갖게 된 팔레스타인은 파타와 하마스로 분열했다.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무장 정파 하마스가 승리하고 파타가 불복하면서 가자는 하마스가 지배하고 서안 지구는 파타가 통치하는 이중 권력 상태에 들어갔다. 이스라엘도 하마스 수중에 떨어진 가자에서 정착촌을 철수하고 물과 전기를 제외한 모든 물품 공급을 중단하는 봉쇄를 시작했다. 가로 5~8㎞, 세로 50㎞인 거제도 크기 도시가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이란 별명을 갖게 됐다.

▶팔레스타인은 자기 나라를 가진 적이 한 번도 없다. 맘루크 왕조, 오스만 제국 등 이민족의 지배를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유대인이 새 운명을 개척하겠다며 팔레스타인에 처음 돌아온 해가 1882년이다. 이후 유대인이 텔아비브처럼 현대적 도시를 세우는 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구경만 했다. 일부는 유대인들이 땅을 팔라고 하면 비싼 값 받을 궁리만 했다. 이제는 가자에서마저 내쫓길 처지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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