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새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
어린 시절 제비는 흔히 볼 수 있는 새였다. 친구들과 골목에서 놀다 보면 제비가 낮게 날 때가 있었다. 비가 올지 모르니 빨리 집에 가라는 동네 어른 말씀에 뜀박질을 시작하면 정말로 곧 소나기가 쏟아지고는 했다. 새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는 것은 오랫동안 누적된 경험으로 우리 선조가 파악한 상관관계다. 하지만 새가 낮게 날기 ‘때문에’ 비가 오는 것은 아니다. 상관관계가 사실이라고 해서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인 인과관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한 나라의 노벨상 수상자 숫자와 초콜릿 소비량 사이에 상당히 강한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그래프를 본 적이 있다. 물론 이것도 인과관계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아직 없는 이유가 한국인이 초콜릿을 적게 먹기 때문일 리는 없다. 새가 낮게 날아 비가 온 것도 아니고, 초콜릿 많이 먹어 노벨상 타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관관계 자체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명확히 관찰된 상관관계의 배후에는 이를 만들어내는 합리적인 근거를 찾을 수 있을 때가 많다.
우리 눈에 투명해 보여도 지구의 대기 안에는 수많은 기체 분자가 있다. 이들 기체 분자들도 질량이 있어 손에서 놓은 돌멩이처럼 지구 중심 방향으로 중력을 받는다. 기체분자들은 마치 양파 껍질처럼 둥근 지구를 둘러싸 켜켜이 쌓이고, 대기의 압력은 지면으로부터 위로 오를수록 줄어든다.
한편 지구의 기상현상으로 한 지역의 대기압이 주변 지역의 대기압보다 낮을 수 있다. 주변의 사방에서 지면을 따라 수평방향으로 저기압 지역으로 유입된 공기는 옆 방향으로는 어디 갈 데가 없으니 지면의 수직방향으로 위로 솟아오른다. 저기압 지역에서는 기압이 낮다는 바로 그 이유로 대기가 위로 상승하고, 위로 오르면서 대기의 온도가 낮아진다. 온도가 낮아지는 새벽에 이슬방울이 맺히고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과 같은 이유로, 상승하며 온도가 낮아진 대기는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의 양이 줄어 액체상태의 작은 물방울들이 형성된다. 고기압이 아닌 저기압 지역의 상공에 비구름이 형성되는 이유다. 결국 저기압지역에서 강수 확률이 더 높다.
달에서는 드론을 날리지 못하지만 화성에서는 가능하다. 하지만 지구에서 잘 나는 드론도 화성에서는 잘 날지 못한다. 지구, 화성, 달에서 드론이 다르게 나는 이유는 대기의 압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기가 없는 달에서는 드론을 띄울 수 없고, 화성에서는 중력이 지구보다 작지만 대기가 무척 희박해 날개의 회전속도가 상당히 빨라야 드론이 난다. 헬리콥터형 화성탐사 드론인 인제뉴어티의 날개 회전속도가 무려 분당 2400번인 이유다. 곤충과 새도 하늘을 비행하기 위해서 공기를 이용한다. 드론이 화성에서 날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유로, 곤충과 새도 저기압에서는 날기 어려워진다. 결국, 저기압 지역의 곤충과 새는 가능한 지면 근처에서 날게 된다. 높은 곳으로 오르면 안 그래도 낮은 기압이 더 낮아져 나는 것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결국 한 지역이 저기압이 되면 그곳에서는 곤충과 새들이 낮게 날고, 그곳에서 비구름도 더 쉽게 형성된다. 저기압과 새의 저공비행, 저기압과 높은 강수확률은 각각 짝을 지어 인과관계로 연결되고, 새의 저공비행과 높은 강수확률은 저기압을 매개로 해서 강한 상관관계를 보이게 된다. 새의 저공비행이 비를 내리는 원인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새를 줄에 매달아 억지로 높이 날지 못하게 해 비를 내릴 수는 없다.
노벨상 수상자 수와 초콜릿 소비량 사이의 상관관계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경제수준이 높은 나라가 아무래도 기초과학 발전에 더 큰 예산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 분명하고, 초콜릿처럼 안 먹어도 그만인 기호 식품의 소비도 그 나라의 경제수준과 양의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결국, 초콜릿 많이 먹어서 노벨상을 타는 것은 아니지만, 둘 사이의 강한 상관관계를 경제 발전 수준을 매개로 해서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새가 낮게 날면 비가 오지만, 초콜릿 많이 먹는 과학자가 노벨상 타는 것은 아니다. 초콜릿 소비 진작보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훨씬 더 나은 방법이 있다. 바로, 기초과학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다. 기초과학에 대한 긴 안목의 장기적 지원이 줄어들면 노벨상 수상이 더 어려워진다는 것은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는 명확한 인과관계다. 지원이 줄면 미래의 과학자가 줄고, 과학자가 사라지면 과학은 없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해를 품은 달’ 배우 송재림 숨진 채 발견
- 한동훈 대표와 가족 명의로 수백건…윤 대통령 부부 비판 글의 정체는?
- [스경X이슈] 반성문 소용無, ‘3아웃’ 박상민도 집유인데 김호중은 실형··· ‘괘씸죄’ 통했다
- ‘훼손 시신’ 북한강 유기범은 ‘양광준’···경찰, 신상정보 공개
- [속보]‘뺑소니’ 김호중, 1심서 징역 2년6개월 선고···“죄책감 가졌나 의문”
- 안철수 “한동훈 특검 일언반구가 없어···입장 밝혀야”
- [단독] 법률전문가들, ‘윤 대통령 의혹 불기소’ 유엔에 긴급개입 요청
- 트럼프, CIA 국장에 ‘충성파’ 존 랫클리프 전 DNI 국장 발탁
- [영상]“유성 아니다”…스타링크 위성 추정 물체 추락에 ‘웅성웅성’
- 가장 ‘작은 아기’가 쓴 가장 ‘큰 기적’…지난 4월 ‘국내 최소’ 260g으로 태어난 ‘예랑이’